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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Apr 18. 2024

자전거 타면서 배운 인생

힘 빼는 방법

가뿐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올랐다. 오전 9시, 8월의 태양은 일찍부터 이글거렸다. 헬멧 아래로 굵은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헉헉거리는 숨소리는 ‘그만 타! 더는 무리야.’라고 들렸다. 어떻게든 끝까지 오르고 싶지만, 허벅지도 풀려 자꾸 엇박자다. 습도가 높아 고글도 부해져서 앞이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페달에서 발을 뺐다. 수리산 언덕을 오르는 길, 나와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산악자전거 입문 2개월, 아직 실력을 욕심낼 단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머릿속이 복잡해서 몸을 괴롭히고 싶었다. 중학생 딸의 사춘기도 남편의 딸을 향한 잔소리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의 잔소리는 집 안 구석구석 퍼지지만 딸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눈빛은 딸 앞에서 더 날카로웠다. 귀찮음과 짜증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비난부터 했다. 자신은 잘되라고 하는 말이고 행동이겠지만, 누가 봐도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매일 예민한 딸과 뾰족한 남편 사이에서 새우 등 터지는 고통을 겪어냈다.     


실수로 작은 물건을 떨어뜨려도 아랫집 시끄럽다고 지적하는 남편.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목소리가 살짝만 올라가도 가르친다며 삐질 때면 답답하다 못해 천불이 솟았다.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고 짜증을 낸 것도 아닌 “실수잖아”라는 한마디에도 집안에 냉기가 흘렀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고드름처럼 뾰족하게. 벗어나고 싶었지만 나 혼자서 무엇도 해본 적이 없던 때였다. 어쩔 수 없이 남편과 같이 산악자전거를 시작했다. 우리가 밖으로 나가면 아이들은 숨통이 트이길 바라며.     


울퉁불퉁 바퀴의 엠티비는 로드와 느낌이 아주 달랐다. 로드는 부드럽고 빠르다. 단점이라면 얇은 바퀴는 작은 충격에도 펑크가 나기 쉽다. 엠티비는 정반대였다. 핸들바는 남자 어깨보다 더 넓어 팔을 쩍 벌려야 했고, 바퀴는 울퉁불퉁 사나웠다. 홈이 깊게 패어 바람의 저항도 심했다. 첫인상은 낯설었다. 너무 넓은 핸들의 손잡이를 잡으려면 가슴을 쫙 펴야 한다. 그땐 가슴 펴는 일이 왜 그리 힘들었는지. 쪼그라짐이 익숙할 때였다.  

   

적응이 어려웠지만, 덩치 큰 산악자전거는 압도적인 매력이 있었다. 날카로운 돌길도 우습게 차고 나가는 힘, 강렬하다. 나도 그런 힘을 기르고 싶었다.     


그날도 힘이 없는 나를 자책하며 자전거에 올랐다. 마음이 아프다는 딸에게 다가가다 한 소리 듣고 멈춰 선 뒤였다. 언제나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는데 나는 늘 방법을 몰랐다. 발만 동동 구르다 못난 내 모습에 화가 나서 못 본 척하기 일쑤였다. 남편하고 의논하고 싶어도 비난만 돌아오니 내 입을 닫는 것이 가장 현명했다. 내 고민은 오로지 자전거 위에서 펼쳐지고 접혔다. 해결되는 것 없어도, 고민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안장 위가 편안했다.     


'언덕을 오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다른 건 몰라도 자전거만큼은 남들보다 잘 타고 싶다. 나도 무엇 하나라도 잘한다고 내세울 것이 있길 바랐다. 아이들 교육도, 경제력도, 외모도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초라한 나. 비참한 현실을 뒤로하고 다시 핸들을 붙잡았다. 잠깐의 휴식으로 다리에 힘이 다시 붙었다. 복잡한 정신 부여잡고 속으로 하나둘 외며 가파른 언덕에서 핸들이 들리지 않게 상체를 구부려 눌렀다. 꾸~~욱.     


그때였다. 상체에 힘이 들어가면 갈수록 허벅지가 무거워 짐을 느꼈다. 상체를 살짝 들었다. 페달을 돌리는 발도 허벅지도 가벼워졌다. 안전을 위해 상체로 핸들을 누른 동작이 체력 소모를 가져왔구나! 힘을 빼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티> 영화 속 주인공도 아니고 가파른 언덕에서 상체를 온전히 들 수 없었다. 천천히 페달을 굴리면서 내 자세를 상상했다. 바짝 엎드린 상체와 핸들을 꽉 부여잡은 손, 핏줄까지 튀어나올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 팔. 게다가 팔꿈치는 심하게 벌어져 있었다. 옆으로 벌린 팔꿈치를 안으로 조금 오므렸다. 신기하다. 상체가 들리고 다리는 자연스럽게 힘이 빠졌다.


목적지에 올라서 생각에 잠겼다. 힘이 들어간 원인이 뭘까. 잘 타고 싶은 마음과 두려움이었다. 잘 타고 싶은 마음은 허벅지에, 두려운 마음은 어깨에 힘을 준 것이다. 힘은 무겁다. 어떻게 힘을 뺄까 고민했고, 고민 끝에 방법이 떠올랐다.  다시 언덕을 오르던 날. 어깨에도 다리에도 힘을 주지 않았다. 대신 배에 힘을 주었다. 생각을 배에 집중하니 상체가 세워지고 허벅지는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때 자전거에서 배운 힘점의 이동 덕분에 해고 이후 유연한 생각이 가능했음을 알았다. 정해진 답이 아닌 나만의 답을 찾는 유연함. 힘을 빼면서 나를 놓아주면서 조금씩 언덕 같은 시간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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