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다미 Apr 11. 2024

5분 만에 바뀐 그녀의 인생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한가한 오후 중년의 여성이 대리점에 찾아왔다.

“저 혹시 일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마침, 사람이 간절하던 때라서 버선발로 뛰어가서 반갑게 맞았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맑은 미소 사이사이 쓸쓸함이 간간이 비추는 얼굴. ‘무슨 사연이 있을까?’ 머뭇거리는 그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3층 상가 건물 담벼락, 전봇대 앞에 비추는 오월의 햇볕은 따뜻했다.      


짧은 침묵 뒤 그녀가 용기를 내었다.

“저기, 제가 우울증 걸려 방에만 있었어요. 그래도 일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나를 보는 눈빛이 하염없이 흔들린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힘을 주어 대답했다. 밖이 무서워서 집에만 있다가 겨우 나왔다는 50대 주부,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나라고 좋은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병을 남에게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용기이니까.      


“밖으로 나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한 달이요.”

“아~ 네”

“많이 힘드셨겠어요. 우울증 극복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상해 보이지 않아요?”

“뭐가요?”

“아줌마가 세상을 무서워한다는 것이요.”

“저도 그랬는걸요. 해고돼서 죽으려고 창문 위에 섰는데 아이들 덕분에 용기 냈어요.”

동병상련이랄까. 처음 만났는데도 우리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녀의 우울증 얘기와 내 해고가 한참을 섞였다. 먼 산 보고 말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린 빙그레 웃었다. 짧은 시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며 뒤돌아서는 그녀의 등 뒤로 꼭 다시 오라는 간절한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 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내 눈을 마주치는 그녀의 눈빛에서 어떤 확신이 보였다.

“저 일 시작해 볼래요.”

“잘 결정하셨어요.”

다행이었다. 내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일을 서둘렀다.

“잠시만요, 서류 작성을 먼저 하셔야 해요.”

“..........”

“아~ 제가 좀 급했죠. 우리 차부터 마실까요?”

대답 대신 침묵이 흘렀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일까?’ 또다시 흔들리는 눈빛을 봤다. 초점을 잃고 헤매는 그녀에게 차부터 한잔하자며 아무도 없는 휴게실로 갔다.     


“어떤 차 드릴까요?”

“믹스 주세요.”

종이컵 두 개를 뽑아 나란히 두고 믹스 두 봉을 뜯었다. 한 봉지씩 부을 때마다 알맹이가 떨어지고 가루가 쏟아진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을까. 그날따라 커피 알갱이와 프림, 설탕을 눈여겨보았다. 색도 모양도 다른 가루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뜨거운 물을 붓자 설탕은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프림이 덩어리가 되어 커피와 함께 떠오른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어느새 하나가 되어 향을 내는 커피. ‘어우러짐은 같은 성격끼리 섞이는 것이 아니구나.’ 다름이 만나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커피 타는 동안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심호흡하며 커피의 향긋한 향을 단전 밑까지 들이밀었다.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말아야겠다는 심정으로.

“나, 사실은 글을 못 써요.”

“네”

그녀의 고백보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내 대답에 더 놀랐다. 맞는 답이었는지 속으로 한참을 생각했다.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눈알만 굴리고 있을 때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일 할 수 없겠죠? 마음 써줘서 고마웠어요.” 

순식간에 머리가 엉켰다. 조금 전에 놀라지 않겠다고 한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급하게 그녀를 붙잡았다.

“아니, 잠시만요. 그럼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실 거예요?”

“.........”

“그냥 시작해 봐요. 방법이 있겠죠. 제가 도와 드릴 테니 우리 해봐요.” 

“진짜요?”

“저도 죽고 싶은 마음 이겨냈잖아요.”

무슨 배짱이었을까. 맑은 미소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억지로 버티는 시기를 약간 넘어가고 있었던 듯하다. 당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며 내 손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일을 시작했다. 우리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로.     


휴일 오후, 멍하니 앉아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 잠깐 사무실 들르는데 나올 수 있어?”

“무슨 일이신데요?”

“보고 싶기도 하고, 주고 싶은 것도 있고.”

“네! 알겠어요.”

이제는 물어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약속한 뒤 회사로 향했다.     


“안녕”

오른손을 들어 나를 반겨준다. 누군가가 반겨준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에 뭉클해졌다. 나만 보면 싱글 생글 웃는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질문 있어요.”

“응? 뭔데?”

“언제부터예요?”

“뭐가?”

“글을 못 쓰는 거요.”

“나도 몰라. 어느 날 갑자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아이들 가르치는 방식이 떠올랐다.     


“여기 앉아봐요.” 

“응, 알았어.”

내가 하라면 죽는시늉도 할 것 같은 그녀. 의자에 앉으라는 내 말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앉는다. 나는 비장한 각오라도 한 듯한 눈빛과 몸짓으로 그녀의 손에 볼펜을 끼웠다. 돌하르방처럼 단단해지는 어깨 그리고 부르르 떨리는 손. 급히 내 오른손을 그녀의 오른손 위에 포개었다.      


“손에 힘 빼요.”

미동도 없는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저를 믿어요. 볼펜 놓으세요.”

왼손으로 그녀의 단단해진 어깨를 감싸며 다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르륵’ 손이 풀렸다. 그녀의 손을 덮은 채 오로지 내 힘으로만 글을 썼다. ‘가나다라’ 무심히 썼다. 스무자 남짓 썼을까. 잠시 뒤. 

“손 놔봐.”

내 손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나 그녀의 오른손은 계속 움직였다. 그렇다. 힘이 문제였다. 무섭다는 마음에 두렵다는 마음에 볼펜 잡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것이 문제였다. 그녀의 두 눈이 빙그레 웃고 있다. 내 눈도 같이 웃는다. 우린 얼싸안고 겅중겅중 뛰었다.     


마음이 굳으면 인생도 굳어버리는가 보다. 아마 그녀는 그랬을 것이다. 무기력증에 빠진 어느 날 만사가 귀찮을 때, 정수기 필터 교체하러 와서 사인해 달라는 요청을 들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글 못 쓰는 사람이라고 주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다시 펜을 들고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자신도 모르는 과거 속에 갇힌 여자. 이제는 한 발 한 발 세상 밖으로 나오겠지. 내가 벼랑 끝에서 용기를 내었던 것처럼. 그녀의 삶에도 환한 빛이 들것을 기대한다. 맑은 미소와 어울리는 그녀의 맑은 눈빛을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