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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Apr 04. 2024

안개 속을 걷는 용기

한숨 이전에는 심호흡이 있다

창문을 열었다. 3월의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답답함이 느껴졌다. 내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는 듯한 안개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어른들은 한숨 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한숨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벼워졌다. 깊은 숨을 들어쉰 뒤 한숨을 뱉으면 몸속 찌꺼기가 모두 빠져나간 느낌이다. 한숨이라도 쉬지 않았다면 안개의 답답함과 삶의 무게가 겹쳐 나를 더 짓눌렀을 테니까.  


텀블러를 챙겨 출근길에 나섰다. 편의점에서 내리는 커피 한잔, 나에게는 휴식이다. 원두 기계에 텀블러를 놓고 아메리카노 단추를 누르자 분쇄기가 바빠졌다. ‘주문은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구나.’ 그때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해고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주문이었을까? 변화를 가져야 한다는 주문. 그러고 보니 해고 뒤 일 년 동안 나는 움직였고 내 삶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수동이 아닌 능동적인 삶, 말 그대로 미움받을 용기를 얻고 매일 변화를 만들어냈다. 잘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피던 습관을 멈추고 책상 앞에 앉은 시간. 독서를 시작했고, 글을 쓰며 그동안 접어두었던 내 마음을 읽었다. 글은 갑자기 다가왔다. 차곡차곡 쌓인 답답함이 종이 위에 풀어졌다.     


어느 날 오후, 멍하게 앉아 있을 때 갑자기 손이 움직였다. 가슴에 묻힌 욕구와 불평불만이 두서없이 종이 위로 쏟아졌다. ‘답답하다, 짜증 난다, 불안하다.’ 찌꺼기 같은 감정을 더는 삼켜두지 않고 쏟아낸 글이 시초가 되었다. 한 줄 한 줄 쓰다 보면 손가락을 딴 듯, 삶의 체기가 내려갔다. 엉클어진 번뇌가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삶이 조금씩 정돈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삶이 변화했다기보다 삶을 보는 시선이 변해갔다. 한탄에서 응시로. 쓰면서 내 감정을 나에게 읽어주었다.     


‘삐삐’

기계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향긋한 향을 깊게 들이마시며 회사로 향했다. 대리점이 되면서 좀 더 다닐 수 있게 된 회사. 일 년만 더 다니기로 계획한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퇴사한 뒤 내 삶은 자욱한 안개만큼이나 불투명하고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을 멈추고 싶지 않다. ‘살아야겠다, 내 모습을 되찾고 싶다, 가족을 지켜야겠다.’ 그간 고통을 통과할 때마다 일련의 결심을 붙잡으며 나는 조금씩 자기 연민의 우물에서 걸어 나왔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던 내겐 기적이었다.    

 

일 년 만에 눈빛이 바뀌었다. 거울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날, 그날 이후 새벽 기상을 시작했고 살고 싶은 오늘을 생각하며 나를 들여다보았다. 어둠이 짙게 물든 새벽 차가운 거실 바닥에 앉아서 아픔의 원인을 들여다보았다. 내 말을 잔소리로 듣고 날카로움으로 답하는 딸과 남편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말을 멈췄다. 각자를 위해 최소한의 거리를 둔 셈이다. 책과 글을 만나며 일상을 바꾸자 변화가 생겼다. 살이 빠지고 고혈압과 고지혈도 완치되었다. 감사하다. 흐뭇한 기분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크레마가 사라지기 전 마시는 커피의 부드러움에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일었다.     


고개를 들었다. 꽉 막힌 안개 입자가 내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다. ‘벽인 줄 알았는데.’ 그렇다. 안개는 눈으로 볼 때만 답답하다. 움직이지 못하게 막고 있는 벽이 아니었다. 안갯속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안갯속에서도 길이 보였다. 뚫린 내 미래가. 답답한 안갯속을 걷자 실체 없는 불안이 흩어져 버렸다.    

  

마음으로 보라!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빠른 판단과 여유로움이 아닐는지. 눈으로만 보면 바로 판단이 일어난다. 꽃을 보았을 때 꽃이라고 말하고 생각은 멈춘다. 마음으로 본다는 건 조금 더 깊이 보는 것이다. 꽃이 피는 모습을 지켜보고, 향기를 맡으며, 잎맥을 살피는. 한 마디로 시선이 머무를 때 마음으로 볼 수 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을 뜻하는 시각화. 영어로는 ‘visualize’ 마음속에 그려보다, 상상하다는 뜻이다. 퇴사 뒤 미래를 마음으로 그렸다. 이끌리는 삶이 아닌 이끄는 삶을 사는 나를 그려봤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웃는 내 모습을.      


안개를 만난 덕분에 불안한 미래로 한 발씩 걸어갈 용기를 얻었다.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계속 걸어갈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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