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다미 Mar 07. 2024

마흔의 해고

창문 위에 서다

저녁 6시, 어두운 방구석에 앉았다. 불을 켤 힘도 없이 주저앉은 채 헐떡거리는 내 영혼. 육신을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을 이성이라는 끈이 겨우겨우 막아섰다. 고개를 가랑이 사이로 처박았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고, 그 무엇도 보기 싫었다. 불안했는지 오른손은 가방끈을 꽉 쥐었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손바닥엔 땀이 흥건하다. 몸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살아야 한다는 몸의 얘기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왜? 이유가 없잖아. 세상은 나를 밀어내는데 발 디딜 곳이 없는데.’     


고개를 들면 창문이 있다. 힘든 순간마다 보아온 창문이다. 내게 창문은 환기하는 통로가 아니라 남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같았다. 심한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창문이 생각났다. 한없이 자상하다가도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내 숨통을 옥죄는 남편. 술 마신 날이면 쉴 새없이 낮은 목소리로 괴롭혔다. 

“아까 왜 그 자리에 앉았어?” 

“자리가 없어서.”

자전거 동호회에서 막내라는 이유로 총무가 되었다. 간식을 사 온 뒤 앉을자리는 남자 회원 옆밖에 없어서 생각 없이 앉았다. 내 대답에 알 수 없는 말을 하염없이 늘어놓는 남편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바람난 여자가 된 듯했다. 한 시간 넘도록 들리는 낮은 잔소리는 모기가 귀에서 웽웽거리는 소리처럼 거슬리고 불편했다. 제발 자자고 애원해도 이어지는 잔소리는 그가 잠들어야 끝났다. 그때마다 창문 위에 오르고 싶었는데…. 이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정규직 전환은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 ‘이제 나도 엄마 노릇 제대로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만 하면 인정해 주는 일터에 평생을 바치고 싶었다. 먹고사는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어 9개월 동안 노력했는데. 결과는 ‘해고’였다.     

“나 해고됐어.”

“근데?”

“뭐라고?”

“그냥 살어!”

위로받고 싶었는데 상처가 얹어졌다. 아무리 말을 예쁘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차라리 침묵이 나을 것 같은데. “괜찮아! 그냥 살면 돼.” 미안했는지 덧붙이는 말이 더 갑갑하게 만들었다. 그냥 살면 된다는 말은 무책임이었다. 그동안에도 남편은 한 달 생활비가 얼마가 드는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입을 닫았다.     


“당연히 안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자신만만하더니.” 딸이 던지는 말은 더 충격이었다. 딸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해져 도대체 그동안 무얼 하고 살았는지 자책이 몰려왔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남매 키우면서 최선을 다했는데. 간식비라도 벌기 위해 1원짜리 부업을 시작으로 아르바이트하며 애쓴 결혼 생활이 허무해졌다.

     

회사에서도 반응은 비슷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내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냥 여기 있어!” 그나마 가장 힘이 되는 위로였다. 내 해고 통보에 이어 직영점이 대리점으로 전환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대리점이 되면? 개인 사장이 오면? 그래, 더 근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존심은 이미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대리점 전환은 확실하지 않은 상태인데 김칫국부터 마실 수도 없다.     


남편이 내 명의로 사업을 시작한 뒤였다.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는 터라 막막하기만 했다. 틈만 나면 온갖 구인 사이트를 모두 뒤져도 짧은 내 경력으로 이력서를 낼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온종일 모니터에 집중한 눈은 퀭했고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회사에서 5분이면 가는 집이 천릿길처럼 느껴졌다. 찬바람은 쓸쓸한 내 어깨를 더 굽히며 초라함을 보탰다. 반쯤 넋이 나간 채 집에 들어오니 남편은 술 마시러 간듯하고 아이들 방은 굳게 닫혀있다. 평소라면 아이들 방을 노크하며 퇴근을 보고했을 텐데 곧장 방으로 들어와 주저앉았다. 방문을 두드린다고 반겨주지도 않을 것이었다.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혼자 있을 때면 쉴 새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자꾸 신세 한탄이 되고 나도 모르게 "엄마"를 하염없이 불러댔다. 몇 해 전 마지막 주말일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갔을 때 엄마는 내 손을 붙잡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막둥아! 엄마 간다.'하고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언니들과 한 번씩 눈 맞춘 뒤 다시 나를 향한 시선은 따뜻하고 편안했다. 엄마의 눈빛이 기억나는 순간 벌떡 일어나서 침대 위에 올라 벌컥 창문을 열었다. 방충망까지 열자 찬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찬바람에 몸을 맡기기로 마음먹고 창문턱 위로 올랐다. ‘엄마 나 좀 데리러 와줘’      


먼 산을 바라봤다. 처음 이사 오던 날의 해맑은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부푼 희망과 확 트인 시야 따라 한껏 넓어진 마음까지. 그때는 노력만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는데. 한때의 꿈과 희망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어둑해지는 하늘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아이들이 졸업한 초등학교다. 학교 앞으로 이사 간다고 좋아하던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10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 낮은 높이. 떨어져도 죽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한 번에 죽는 방법을 고민할 때 저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다가왔다. ‘엄마다!’ 나를 데리러 오는 불빛. 자동차 앞으로 떨어지면 엄마를 만난다. 차가 가까이 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엄마!’ 

갑자기 들려오는 아이들 목소리에 몸이 휘청거렸다. 깜짝 놀라 창문을 꼭 붙잡으며 또다시 오열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었는지. 내 절망에 갇혀 아이들을 외면했다. 내가 떨어진 뒤 아이들의 상처가 느껴졌다. 엄마가 된 순간부터 내 목숨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는데. 내 안에 딸이 살고 아들이 사는데. 그런 나를 포기한다는 건 생때같은 아이의 삶마저 내려놓는 일이었다. 살아보자!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