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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Mar 14. 2024

거울 속 낯선 눈동자

누구세요?

찬바람을 맞으며 눈물을 쏟아내자 한기가 느껴졌다. 침대로 내려온 뒤 창문을 닫았다. 따뜻한 공기가 느끼자 덜덜 떨리던 몸이 안정되면서 현실로 돌아왔다. ‘저녁 챙겨줘야 하는데.’ 죽음을 고민한 뒤에도 가족들의 끼니가 신경 쓰였다. 어쩔 수 없는 주부의 삶. ‘그래! 삶이 별거냐.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해 살아보자.’ 다짐한 뒤 퉁퉁 부은 눈을 감추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누구세요?’ 나를 보는 거울 속 낯선 눈동자. 생선 눈알처럼 흐리멍덩한 회갈색 눈동자 안에 내 얼굴이 비쳤다. 사람 얼굴이 아닌 듯 느껴진다. 그동안 저 텅 빈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믿고 판단하며 행동한 내가 부끄러웠다.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생기 없는 볼, 축 처진 입꼬리, 찡그린 미간. 삶에는 희로애락,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이 있다는데, 내 얼굴엔 분노와 슬픔만 밴 듯했다. 맙소사. 억지 미소라도 지으려는데 입꼬리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거울 속 나는 찰흙 인간처럼 굳어버린 존재였다.     


고개를 떨군 뒤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콸콸 쏟아지는, 뜨거운 물이 뿜어내는 열기에 화장실은 금세 뿌옇게 변했다. 거울 속의 낯선 내가 가려지자 힘이 풀렸다.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나는 언제부터 변해갔을까. 무표정한 얼굴처럼 내 영혼도 굳어갔을까? 웃는 얼굴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려 보인다는 말도 자주 들었는데. 거울 속의 나는 웃는 법을 잊어버린 그저 나이 든 아줌마일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눈동자를 다시 바라보고 싶어졌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던 터라 다리가 뻣뻣했다. 세면대를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울에 비친 나는 여전히 낯설다. 그런데 조금 전과 다른 기운이 조금씩 스쳤다. 흐리멍덩한 눈동자 속에 담긴 작은 호기심. 호기심을 보자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겼다. 무언가가 궁금하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갈 힘이 그래도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어린 나는 지나가는 바람에도 물음을 던지는 아이였다. 

“구름은 왜 흘러가?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 거야?” 

부모님도 친구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내 질문들. 답을 기다리다 내 입은 절로 닫혀 버렸다. 질문할 때마다 들리는 엉뚱하다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차라리 무색무취의 투명인간처럼 존재감 없이 사는 게 나았다.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 시기는 언제부터였을까?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 아니면 결혼하고 책임감이 부여되면서? 나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 생각에 맞추기 시작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굳은 표정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 같았다.     


‘나’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삶에 주연과 조연이 있다면 나는 조연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뒤로 물러서는 것,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내로서 엄마로서 해야 하는 당연한 역할인 줄 알았다. 온갖 집안일을 참고 감수했다. 그것이 여자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도, 주변을 둘러봐도 그랬다. 자기주장을 하는 여자는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수긍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착하다고 칭찬받았다.      


생활고에 시달릴 때 남편은 내 사회생활을 반대했고 시어머니는 논다고 대놓고 눈치를 주셨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도 내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 수도 없이 나를 포기한 세월이었다.     


나는 왜 정규직이 되고 싶었을까? 남에게 인정받고픈 마음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 몫을 거뜬히 하며 ‘일 잘한다’, ‘능력 있다’라는 말을 들을 때 기분 좋았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로 나를 보려 했다.      


긴 생각 끝에 다시 거울을 봤다.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왜 나는 참고, 억눌린 채 살아왔을까.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 어둡고 일그러진 얼굴에 잘못 걸어온 세월의 흔적이 드리워져 있을 뿐.      


지천명이 되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는데. 앞으로 남은 몇 년을 이대로 산다면 무책임한 얼굴이 될 것 같았다. 평온하고 인자한 얼굴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분노가 쌓인 굳은 표정과 의욕을 잃어버린 눈동자는 탈피하고 싶었다. 잃어버린 내 얼굴, 바람을 만지며 편안해하던 나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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