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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Mar 21. 2024

피 흘리듯 떨어진 장미 꽃잎

아픔은 주관적이다

피부에 닿는 5월의 햇볕은 따뜻했다. 해고 이후 직영점이 대리점으로 바뀌고 계속 일하게 되면서 매일 지나던 익숙한 길을 느린 걸음으로 걸어볼 수 있게 되었다. 뭐든 빠른 것을 좋아해서 집 근처에 가면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동네 풍경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이런 가게가 있었네’ 낯선 가게 창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분명 다르지 않은 공간이지만, 바람의 향과 햇볕의 맛은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팔을 뻗어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손바닥을 훑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가느다란 바람이 느껴졌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 심장이 콩닥거렸다.     


출근길, 학교 담벼락에 핀 장미가 나를 세웠다. 선홍빛의 꽃송이가 황홀하다. 손을 뻗었다. 5월에도 난로를 켜야 하는 내 자리. 거리 두기로 인해 대화가 단절된 스산한 내 책상, 그곳에 두고 싶었다. 장미를 통해 사랑을 느끼고 싶었다. 여린 꽃잎 다칠까 조심스레 줄기를 돌렸다. 너무 질기다. 장미를 꺾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봤다. 시선이 느껴져 창피하지만 포기하기 싫었다. 왼손으로 줄기를 잡고 이를 악물었다. ‘툭!’ 한참 만에 내 것이 된 장미. 보드라운 꽃잎을 만지며 만족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경악했다. 말끔했던 인도 위에 피 흘리듯 떨어진 장미잎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아차 했다.     


‘나도 이렇게 떨어졌구나!’

바닥에 떨어진 생생한 꽃잎은 몇 달 전 내 모습이었다. 활짝 피기를 꿈꿀 때 강제 낙하의 처참함을 당했다. 해고는 나를 추락시켰고, 나는 짓밟혔다. 떨어진 꽃잎처럼. 누가 나를 짓밟았는지 모른다. 스쳐 가는 행인이기도 했고 살을 비비며 사는 가족이기도 했다. 일상적인 말 한마디, 바라보는 시선에 초라함을 느끼며 나 스스로 짓밟혔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다.     


나를 짓밟았다고 누구를 지목할 수도 화낼 수도 없다. 거리에 떨어진 꽃잎을 밟은 행인에게 왜 밟고 지나가냐고 따져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길을 지나가려면 밟아야 한다.    

 

아픔은 주관적이다. 기분이 괜찮을 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힘들 때는 상처로 다가온다. 고민이 많을 때는 친한 친구의 가벼운 장난도 받아주지 못하는, 그것이 마음이다. 마음은 주변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을 보며 혼자 아파하며 오해를 쌓고 스스로 피해자라고 느끼는 감정 바로 ‘피해의식’을 낳는다. 이때는 누가 밀어내지 않아도 어울릴 수 없다. 내가 그랬다. 누구도 나를 밀어내지 않았는데도 나는 어울릴 수 없었다. 장미를 회상하며 글을 썼다.           




아픔

아픔은 나쁘다고 생각했다
살을 찢고 스쳐 지나간다고만 생각했다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 중 하나였다     

무엇이든 세상에 존재한다면 이유가 있겠지
잘 이겨내면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줄 텐데 

아픔은 시선과 촉이
나에게 집중되어 생기는 감정이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맞는 행동이다
이해하지 않으려는 내 욕심으로
느낀 감정이다

결국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였다      



    

떨어진 꽃잎에 대한 미안함을 쓰다가 내 이기심을 봤다. 나 혼자 힘들다고 우는 동안 주변 사람들도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였다” 맞다! 내가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가두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이제라도 웃고 싶어졌다. 어떻게든 웃는 방법을 찾고 싶어졌다. 홀쭉해져버린 마음이란 여린 인형에게 솜을 채워주고 예쁜 옷도 입혀서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넝쿨이 질기다며 원망할 땐 몰랐다. 장미꽃을 지키기 위함인 줄. 종이를 펼치고 연필을 들었다. 내 상처로 인해 일방적으로 입을 닫아 버린 미안함을 썼다. 그러자 나를 지켜주려는 분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내 눈치를 보며 조심하던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구나!’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피의자도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졌다. 눈시울이 따갑고 가슴이 아렸다. 갑자기 돌변한 나를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다시 마음을 열고 싶어졌다. 서서히 다가가기로 했다. 아주 천천히.     


나는 이렇게 힘든 과거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 해고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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