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따오 미니 화로대

by M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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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건들은 그 생김에 비해 더 많은 일을 해주는 경우가 있다. 젓가락으로 땅을 판다거나 수건으로 많은 물건을 감싸 들고 가는 경우. 이런 경우 목적을 띄고 탄생한 물건에게 과한 짐을 맡기는게 아닌가 싶을때가 있다. 오늘 이야기 할 미니 화로대에게는 앞선 사례처럼 본 목적을 넘어선 다른 일을 수행시키지는 않았지만 태어난 수명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하였다. 이런 경우도 나의 심리적 과한 짐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 이 물건을 기특하다 말한다.


화로대를 얻게 된 것은 불 멍을 하고 싶어서 였다. 화로대 하나 만 구매하기에는 몇 만원 하는 돈이 아까웠다. 어렸을 때 부터 큰 고추장 통이나 주변에 굴러다니는 여러 통들에 불을 피우는 경우를 봐왔어서 화로대 라는 물건에 투자를 함이 선뜻 행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돈을 주고 화로대를 사는것보다 굴러다니는 고추장 통을 구하는게 몇 십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장 저렴하고 몇 번 사용하고 버릴 화로대를 찾다가 칭따오 맥주 패키지를 사면 번들로 주는 화로대 구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편의점에 예약을 하고 물건을 받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화로대를 받아보고 처음 받은 인상은 너무 날 것 이라는 것이다. 측면 마감이 되어있지 않아 스테인레스는 날카로웠고, 그 면을 덮고 있는 비닐은 이상하리만치 아주 꼼꼼하게 모든 면을 감싸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감싸져 있는건지 투덜거리며 모두 제거하고, 나일론 가방에 넣어 캠핑가기 전까지 구석에 박아 두었다. 그만큼의 값을 지불하고 얻은 별볼일 없는 무언가였기 때문에.


캠핑을 가던 날 짐을 싸들고 화로대를 들고 가며 '이건 뭐 이리 무거워' 라고 생각했다. 크지도 않은게 무게는 나가서 한 손으로 들면 약간의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 우리는 고성으로 향했다. 차박하기에, 이제 조금 더 차박을 위한 물건을 가지게 된 이 때 적합한 장소라 생각하고 한적한 곳을 골랐다.


고성의 도로변은 아주 조용했지만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처음 불을 피우는 우리는 아주 안전해 보이는 곳에 화로대를 펴고 그 안에 장작과 불을 피운 신문지를 넣고 열심히 부채질을 하였다. 그러나 눈이 내리고 있는 그곳에서 불은 무리였다. 그렇게 첫 번의 시도 실패. 맥없이 화로대를 접어 구석에 던져 놓고 다른 장비들로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 고성 바다 앞에서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게 머물렀다. 그렇게 화로대에 대한 기대가 식었다.


두 번째 차박을 갔다. 이번에는 조금 다를 거라 생각하고 다시 화로대를 챙겼다. 차박지에 도착해 화로대를 펴고 그 안에 나무를 채우고 이번에는 착화제까지 많이 넣어가며 불을 피웠다. 불이 잘 피어올랐다. 화로대가 없는 불 피우기는 생각해본적이 없는 우리에게 그 작은 화로대 만이 불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차박이 완성되었다. 비로소 화로대는 그 쓰임을 다하게 되었다.


그 후로 몇번의 불 피우기를 행했다. 그 때마다 화로대는 접혔다, 펴졌다, 모래위에서 돌 위에서 그 본래의 목적대로 펼쳐지고 불을 담았다. 겁쟁이인 우리는 가장 안전할 것 같은 곳, 누군가에게 지적당하지 않을 곳에서만 불을 피웠다. 때로는 너무 많은 장작으로 인해 화로대 위로 불이 활활 타오르기도 하고 안에 쌓인 나무 짜투리들이 은근하게 불을 띄고 있어 꺼지지 않은채로 미세하게 익어가기도 했다. 빨리 식히고 돌아가야 해서 화로대에 물을 뿌린 적도 있다. 그렇게 화로대는 그을려갔고 본래의 밝은 은색에서 거뭍한 색이 되어갔다.


우리는 언제쯤 화로대가 고장날지 생각했다. 마감과 재질 때문에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역할을 다하는 화로대는 가끔 한쪽면을 지지하는 쇠 막대가 슬쩍 빠지긴 했어도 불을 담는 그릇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 잘 수행한 정도가 아닌 기대에 넘치게 수행하였다. 불 피우기를 마치고 그 면이 약간 뒤틀려 있는 것 같아 '망가졌나?'라고 생각했던 때에도 잘 접히며 다음 나들이를 위해 보관되었다. 아직 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처럼. 비로소 이 물건에 기특함을 느끼게 되었다.


화로대에게서 어떤 진심을 느꼈다. 물건이기에 마음을 낼 수 없는 것을 알지만, 내가 화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진심을 담게 되었나 보다. 그 애씀을 느꼈다. 기대 없이 구했던 이 것이 캠핑을 풍성하게 하고 추억이 담길 불을 선사했다. 뜨겁고 강렬한 불을 담아도 망가가지 않고 계속 함께 했다. 본래 혹은 보이는 것에 비해 누군가를 위해 그 능력보다 큰 일을 묵묵히 해내는 모습, 그걸 기특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쓰임을 계속 주어야 겠지. 약해진 것 같아도 기대를 잃지 말고 자신의 몫을 해나갈 수 있게 해줘야지.


우리 또한, 쓰임이 있어 의미를 찾는다.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일을 해낼 때면 기특함을 발현하게 된다. 그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전달될 수 있다. 화로대 처럼 약하게 만들어진 물건에도 큰 불을 맡기고 그 역할을 열심히 해낼 수 있게 기회를 주었을 때 의미있게 뜨거워질 수 있다. 그 열기에 화로대의 스테인레스 본체가 조금은 더 단단해졌을 수도 있다. 마치 열처리 과정처럼. 화로대에 마음이 있다면 불을 준 우리에게 감사할까? 목적을 다 할 수 있게 해줘서?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안다. 화로대가 기특하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도 기특하다는 것을.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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