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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Mar 30. 2023

소금빵이 뭐길래

알 듯 말 듯 모르는 맛

절친이 레어템을 먹었다며 레시피를 보내줬다.


"하도 인기래서 뭔지 먹어는 봐야지 하고 빵 나오는 시간 맞춰서 기다리다 사 왔다.

원래 그런 짓 잘 안 하는데ㅋㅋ"


어? 니가? 줄 서서 기다려서 빵 나오는 시간에 맞춰 사 왔다고?
평소 내게 제발 요리 좀 그만하고 돈이 되는 일을 좀 하라고 성화인 친구다. 그런 친구가 나한테 만들어보라고 레시피를 보냈다고?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 레어템은 한국에서 사러 갔다 하면 품절이라는 소금빵(시오빵) 레시피였다.


소금빵이 뭐길래?

일본말로 '소금'이라는 뜻의 시오빵은 일본의 작은 어촌 마을에 있는 빵 메종이라는 빵집에서 2014년에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금을 얹은 프랑스빵에 대해 아들에게 들은 제빵사가 여름에도 잘 팔릴 만한 메뉴를 고민하다가 짭짤한 소금을 얹고, 대신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폭신폭신한 식감으로 만들려고 빵에 버터를 많이 넣어서 개발한 빵이라고 한다. 히트작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입소문이 나고 유행하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오호라. 스토리가 재미있는 빵이네? 흥미가 생겼지만, 또 그때뿐이었다. 레시피를 받고 두 달을 흘려보냈다. 요리를 좀 자중하자는 마음으로 이스트로 만드는 빵은 물론이거니와 사워도우로도 빵을 잘 안 만들던 시기였다.



소금빵을 만든 건 레시피를 받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냉장고에 처박아 두었던 발효종에 밥을 줘야 하니 꺼냈고, 발효종에 밥을 줄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오랜만에 빵이나 좀 만들까?' 할 때만 해도 평소 자주 만드는 생크림 사워도우빵(이 레시피는 2020년, 사워도우에 한참 빠졌을 때 미니 유료 강좌를 듣고 얻은 레시피라 공개하기가 곤란하다. 저자가 남겨놓은 유튜브 프리뷰 참고.) 반죽을 만들었다. 이 빵은 사워도우 함량이 높아서 발효가 빠른 편이다. 그나마 좀 빨리 끝나고, 생크림이 들어가서 보들보들하니 식빵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자주 만든다. 어떻게 성형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나는 신기한 레시피다.

1차 발효가 끝났다. 보통은 둥그렇고 크게 성형해서 무쇠솥이나 무쇠팬에 굽곤 하는데, 그날은 캠핑에 가져가도록 하나씩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모닝롤로 만들 요량이었다. 이번에는 좀 예쁘게 모닝롤 위에 계란물을 발라볼까? 계란을 찾아 냉장고를 여는데 코스트코 세일 아이템으로 쟁여둔 아이리쉬 가염 버터가 보였다.

맞다. 버터가 있었지? 그래, 이번엔 소금빵이다!


소금빵 레시피를 검색하니 대략 55g 반죽에 5g 버터를 넣으란다. 2kg가량 되는 큰 반죽을 툭툭 떼서 저울에 단다. 55g씩 덩어리를 만드니 35개가 나왔다. 동글동글 빚어두고 잠시 휴지시키는 동안 버터를 자른다. 5g씩 자른 버터를 냉장고에 넣어둔다.

동글동글 반죽을 물방울 모양으로 길게 말아둔다. (과정샷은 잘 안 찍는데 이건 찍어놨네?)

밀대로 얇게 밀고 안에 버터를 넣어서 소라빵처럼 돌돌 말아준다.


소금은 베이킹용 굵은소금을 썼으면 더 좋았을 텐데, 즉흥적으로 한 거라 그냥 집에 있던 굵은 천일염을 썼다. 가뜩이나 사워도우는 발효 시간을 더 길게 줘야 하는데 아이 픽업 시간이 다가왔다. 미진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냥 냅다 구워버렸다. 그렇게 해서 짜잔~~


다행히 소금은 다 녹지 않고 위에 남아 있었다. 발효나 오븐 스프링은 실패... 한눈에 봐도 덜 부푼 게 보인다. 한 입 베문 샷은 더 처참하다.


덜 구워진 것 같은 느낌도 조금 있었다. 폭신폭신한 결은 대체 어디에? 버터가 녹아서 나간 자리에 구멍만 덩그러니 보인다. 좀 더 놔뒀다 아이 픽업을 일단 하고 나중에 제대로 구울 걸 그랬나? 후회해 봐야 어쩔 것인가. 이미 구워진 빵을.

그래서 맛이 있었냐고? 글쎄. 프로페셔널 제빵사가 만드는 소금빵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비교가 불가능하다. 모르는 맛이다 보니 그냥 이 맛이 그 맛이려니 하고 먹었다. 발효종에 밥을 준 시간부터 계산하면 꼬박 20시간은 넘게 걸렸는데, 휴. 썩 그리 마음에 드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녹은 버터에 지글지글 구워진 빵 아래 부분은 그래도 바삭바삭하고 맛있다... 고 주문을 외면서 먹었다. (갓 구운 빵 is 뭔들...)

내가 워낙 망했다고 기대를 낮춰놔서 그런가? 빵순이 우리 딸은 언제나처럼 호들갑을 떨며 와구와구 먹었고, 역시나 빵돌이지만 조금 냉정한 남편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래도' 맛있다고 했다.

집에 놀러 온 지인이 맛보고 괜찮다는 말을 전했으니 아주 실패작은 아니었을 거다. 사실 그거보다 맛있었어도 큰일이다. 생크림이 들어간 반죽에 버터 함량도 많고 소금까지 있으니 건강에 좋을 리는 없다. 분명 지인들과 나눠먹을 생각으로 35개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없어졌다. 일단 당일에 몇 개 먹고 캠핑에 몇 개 가져가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어놨는데, 바쁜 아침에 데워 먹다 보니 시나브로 사라지고 없었다.


며칠 뒤, 마침 맛있는 굵은소금을 세일한다는 말에 혹해서 얼른 사놨다. 다음번에는 더 잘 만들어야겠다고 훗날을 기약했다. 그 훗날은 소금빵을 구운 지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아직 오지 않았다. 베이킹에 진심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진심은 아니었나 보다. 들이는 시간과 수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하일 엔데의 소설 주인공 모모처럼 살고 싶었던 나는 어느새 회색 신사의 추종자가 되어버렸다. 째깍째깍째깍 시간을 저축하려 애를 쓴다. 좋아하는 베이킹도 시간을 절약한다는 명목으로 버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빨리빨리빨리 우리 시간이 없어."라고 아이를 닦달하기 일쑤다. 현대인의 가장 귀중하고도 희소한 자원은 시간. 시간에 유념하는 것은 물론 여러 분야에서 1인분을 해야 하는 어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나를 닦달하며 "저축한" 시간을 정말 제대로 쓰긴 하나? 회색 연기로 흘려보내는 건 아니고?


어젯밤, 2주 만에 발효종에 밥을 줬다. 솔직히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드는 소금빵은 아직도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두 달이나 지나야 버터를 자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시간을 더 넉넉하게 잡아야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금빵의 맛은 어떤 맛이려나. 모든 레시피의 숨은 재료는 시간이다. 시간은 여전히 알 듯 말 듯 모르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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