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품은 빵
한국에 곰표 밀가루가 있다면, 미국에는 킹 아더 밀가루가 있다. 킹아더 밀가루 홈페이지에는 좋은 레시피가 많이 있다. 그중 눈여겨보았던 사워도우 포카치아 레시피를 처음 만든 건 3주 전쯤이다.
미리 반죽을 해뒀던 빵을 성형하고 굽는 날, 공교롭게도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못 갔다. 시간도 많은데 같이 포카치아 장식이나 해보자 싶었는데 너무 열심히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아스파라거스 몇 개를 자리를 잡아주니까 시아가 자기가 한다고 나섰다. '그림'을 그리는 기분으로 꾸며댄 포카치아 캔버스.
그렇게 완성한 포카치아 그림 (굽기 전). 아스파라거스로 줄기를, 노란색 파프리카와 썬드라이드 토마토로 꽃을 올렸다.
왼쪽 상단에 보이는 건 하트 풍선이란다.
다 구워진 후. 썬드라이드 토마토가 거의 탄 것 같은 비주얼이라 아쉽지만... 맛은 정말 맛있었다.
아이가 너무 좋아하며 아침점심으로 먹고도 뽀까치아~ 뽀까치아~라고 외치는 통에 그동안 벌써 포카치아를 3번 넘게 구웠다. 킹 아더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버전은 이스트를 넣길래 나중에는 다른 버전으로 이스트 없이 발효종만으로 만들어 보았다.
아래는 사촌동생네 선물로 가져간 포카치아. 정사각형 판에다가 아스파라거스와 올리브로 장식을 올렸다.
완성샷도 한 장.
혹시라도 원하는 사람을 위해 이스트를 쓰지 않는 버전의 레시피를 남겨 본다. (The Perfect Sourdough 레시피 참조)
재료: (9인치 * 13인치 사각팬 하나 분량)
중력분 423g
강력분 181g
12g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
459g 물
11g 소금
115g 먹이를 주어 잘 부푼 발효종 (사워도우 스타터)
+ 팬에 바르고 반죽 윗면에 뿌려줄 올리브 오일, 위에 장식할 채소/허브 등
1. 계량한 재료를 다 넣어 반죽을 한다. 좀 질지만 엉긴 것 없이 일정하게 반죽됐으면 멈춘다.
(원 레시피에는 스탠드 믹서에서 반죽하는 법이 나온다. 올리브 오일은 반죽이 조금 뭉쳐진 후 힘이 생겼을 때 나중에 넣으라고 하는데 나는 다 한 번에 넣고 손으로 반죽했다. 반죽이 매우 질긴 하지만, 그래도 별 무리 없이 잘 됐다. 손으로 반죽하면 어린 시절 찰흙 놀이 같은 것도 생각나고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진다.)
2. 1차 발효 시작. 30분 정도는 반죽을 그대로 쉬게 둔다.
이 휴지 과정을 오토리즈(autolyse)라고 부른다고 한다. 반죽이 수화(hydrate)하면서 밀가루에 있는 효소가 전분과 단백질을 분해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3. 반죽의 네 귀퉁이를 늘여서 접기를 30분 간격으로 4번 정도 해준다. 반죽이 점점 매끄러워지고 윤기가 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 레시피에는 1차 발효를 2시간 정도로 잡았는데 시간보다는 반죽의 상태로 판단하는 게 낫다. 온도, 습도, 날씨, 발효종 상태 등 환경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빵은 부피가 약 2배 정도로 빵빵하게 늘어나고 반죽을 찔러보았을 때 반죽 구멍이 바로 다시 올라오지 않으면 1차 발효 완료로 보는데 포카치아는 그 정도로 많이 부풀진 않았다. 나는 발효종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바로 써서 1차 발효가 더 오래 걸렸다.
4. 1차 발효를 끝내고는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팬으로 옮긴다. 2차 발효를 하는 동안, 30분 간격으로 팬의 크기에 맞게 젖은 손으로 반죽을 부드럽게 눌러서 늘인다. 이 역시 발효 완료 지점은 반죽의 상태로 판단한다. 이때는 2배로 늘어난다! 원 레시피에는 4시간이라 나와 있는데, 날씨가 추워서 발효가 잘 되지 않았는데 밤이 되어 반죽을 냉장고에 넣어둔 채 하룻밤을 보내고 그다음 날 꺼내 놓고 추가로 발효시킨 다음 구운 적도 있다. 부풀어 오른 포카치아를 보고 아이가 왕비눗방울이라고 할 정도로 발효시켰던 적도 있다. 베이킹에서는 과발효도 별로 좋지 않은데, 포카치아는 어느 정도는 과발효에도 너그러운 듯하다.
5. 오븐을 화씨 450도 (섭씨 230도)로 예열한다. 예열하는 중에 반죽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찔러서 뽕뽕 자국을 만들어주고 오일을 충분히 발라준다. 이때 위에 사진에 보이듯이 허브나 올리브, 토마토, 채소 등으로 장식을 올려도 좋다. 미술 시간 같은 느낌으로 즐기는 건 덤!
6. 충분히 예열된 오븐에 팬을 넣어 먹음직스러운 갈색빛이 돌 때까지 30분 정도 굽는다.
발효종으로 빵을 만든 지 이제 3년 정도 되었다.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발효종은 다 다르다. 빵을 발효시키는 곳의 온도, 습도 등 각자의 환경도 다 다르다. 이스트빵은 비교적 공식에 딱딱 맞출 수 있었는데, 발효종으로 만드는 빵은 레시피에 나온 시간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다. 적절한 타이밍에 멈추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시간과 경험이다. 많이 굽다 보니 어느 순간, "그래, 이거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여전히 쉽지는 않다. 빵이 보내는 신호를 포착하지 못하고 미적대면 결국 빵은 과발효된다. 그나마 발효종으로 만드는 빵은 이스트 빵보다는 과발효에 조금 더 관대한 것 같다. 태생적으로 오랜 시간을 품어서일까? 발효빵 한 덩이에도 시간이 들어 있다. 일주일 넘게 열심히 발효종을 만들어 키우고, 3년 동안 꾸준히 계속 먹이를 주며 유지했던 시간. 반죽을 하고 발효를 하며 기다리는 시간. 그 시간의 힘을 믿으며 오늘도 빵을 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