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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Dec 11. 2022

4월의 봄밤

2022년을 돌아보며


UVAS CANYON PARK에서 맞이했던 4월의 고요한 봄밤을 기억해 본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는 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젖히면 별이 가득 보였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지만, 담요를 덮고 불을 쬐면 꽤나 훈훈했다. 아이는 텐트 안에 들어가 자고, 남편과 나는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캠핑에 대한 오랜 로망이 있었다. 텐트를 치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장작에 불을 피워 캠프 파이어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란도란 수다를 떨다 별구경도 하고 텐트로 들어가 잠드는 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을지도 모른다.


굳이 불편한데 왜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자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는 남편을 설득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기가 다 준비할 테니 그냥 몸만 따라와도 된다고 같이 캠핑 가자고 했던 친구의 제안을 거절한 게 거의 10년 전 일이니 말이다.


그동안에는 남편의 반대로 장비를 사지 못 했고, 장비가 하나도 없으니 캠핑을 가려고 해도 여의치 않았다. 이사 오기 전, 캠핑을 좋아하는 지인 가족과 벙크 베드가 있는 통나무 캐빈에서 하루 묵으면서 놀았던 게 첫 캠핑 체험이었다. 장작불에 구운 마시멜로를 먹으며 좋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지인 가족은 우리에게 텐트를 사서 같이 캠핑을 다니자고 꼬셨지만, 남편은 영 탐탁지 않아했다. (마시멜로는 집에서도 충분히 구워 먹을 수 있다나....) 그러고는 얼마 후, 우리가 이사를 와버려서 캠핑 이야기를 더 꺼내기도 힘들었다.


산호세에 이사 오고 알게 된 지인 중에 캠핑 마니아가 꽤 있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 캠핑할 때 낮에만 놀러 갔다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했다. 아이는 아쉬워하면서 우리도 자고 오자고 노래 노래를 불렀다. 그러기를 서너 번... 드디어 우리도 텐트를 사고 캠핑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남편에게서 어렵사리 끌어냈다. 작년 블랙프라이데이에 텐트를 사고 몇 가지 캠핑 도구를 야금야금 장만했다.

4월 초, 남편이 겨울에 미리 캠핑사이트를 예약했다고 다녀오자고 했다. 우리가 주도해서, 그것도 텐트를 치고 자고 오는 첫 캠핑이라니! 그것도 남편이 예약을 했다니! 캠프 초심자인 우리를 인도해줄 사람을 물색했다. 2박 3일의 일정 중, 캠핑 고수인 남편 친구네가 하루 와서 자기로 하고, 같이 아는 다른 친구네가 한 나절 놀러 왔다가 돌아가고 이틀째는 우리끼리 자기로 했다.

심기일전할 좋은 기회였다. 3월 말에 남편이 H1b 비자 추첨에서 떨어지고, 작년 여름에 변호사를 선임하고부터 진행하기로 했던 영주권은 거의 아무런 진척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남편을 향한 분노가 폭발하다 못해 꺼져버린 즈음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화를 내서 뭐하나. 달라질 것도 없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남편 친구들은 캠핑장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팩폭을 날렸다. “야 인마, 여태까지 안 하고 대체 뭐 했냐? 작년에 한다며! 벌써 나왔겠다!” 그러면서도 나한테는 남편을 두둔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자식에게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회사에서 O1 해주면 금세 나올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잘 되겠죠.”

그 뒤로 남편은 서둘러 준비해 O1 비자를 신청했고, 다행히 5월 말 전에 비자가 나왔다. 여전히 나는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신분은 아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변호사와 의논하며 서류 준비를 마치고 이민국에 영주권 신청을 접수한 게 8월 중순이다. 얼마 전에는 서류 요청이 오자마자 보내려고 신체검사도 다 완료했다. 남편이 미적댄다 싶을 때는 그냥 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모든 행정적인 일을 다 도맡아 했다. 울화가 치밀어 오른 날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럴 때면 그 봄밤의 불멍과 나눴던 이야기를 기억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그래도 여기서 떠나지 않게 된 게 어디야.'


우리는 그 뒤로 여름에 캠핑을 3번 더 다녀왔다. 2주 간격으로 가서 침낭과 이불을 아예 빨지도 않고 그냥 처박아 뒀다가 다시 그대로 가져간 적도 있다. 이제 아예 캠핑 박스를 만들어 차고에 놔두었다.


내년에도 4월에 캠핑을 가기로 했다. 이번엔 텐트가 아니고 Yurt(천막식 집)에서 묵는다. 그때는 또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며 불멍을 하게 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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