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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아뜰리에 ⑨] 蛇脫故皮(사탈고피)-원명환 선생

by 데일리아트

부와 명예도 뒤로하고 글씨 하나로 30여 년 외길 인생을 가는 서예가를 만나다


새해가 밝았다.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던 2024년이었다. 연도가 바뀌었다고 무슨 대단한 일이 있겠는가만, 그래도 한 해가 저물고 새 해가 왔으니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려 보고자 하는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더 팍팍하고 힘겨운 세상에서 마음이라도 새롭게 바꿔야 그나마 현실을 타계할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과거의 힘겨운 일들이 손을 내밀어서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과거는 지나간 일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새로운 해 새로운 마음에 맞는 덕담이라도 구하고자 오늘은 서예가를 만났다. 원명환 선생님, 30년간 작은 서실을 열어 이웃들에게 붓글씨를 전수하고 있다. 서실 이름은 '석오서실', 언덕 위에 있는 돌멩이라는 뜻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굴러떨어지는 돌을 밀어올리느라고 평생을 바치는 것처럼 꾸준히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않더라도 한 걸음씩 걸어가라는 의미로 스승이 지어준 이름이다. 약게 살아야 성공한다는 요즈음, 언덕 위에서 내려오는 돌멩이를 다시 올리는 마음으로 살아보자. 묵묵하게…. 남이 알아주면 좋고 알아주지 않더라도 어쩌겠는가? 젊은 서예가 원명환 선생을 만났다.

2225_5737_1816.jpg 새해 독자들에게 '사탈고피'를 써 주었다.


2225_5724_5820.jpg 원명환 선생의 서실에 걸린 액자, 석오서실. 언덕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이라는 의미이다.


- 서예를 시작 하게 된 동기와 과정은?


유년시절 고향(충남 당진)에 조그마한 서당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방학만 되면 한문 공부를 하러 다녔다. 『천자문』에서 『명심보감』까지. 서당에서는 모든 것을 붓으로 써야 해서 남들보다 쉽게 붓을 잡았다. 서당 선생님은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보듯 두루마기를 입었고 글을 배우려면 돈이 아니라 쌀이나 콩을 갖다 드렸다. 때때로 종아리도 맞으며 한문과 붓글씨 쓰는 법을 익혔다.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지금의 선생님(일중 김충현 선생 막내 제자인 죽림 정웅표 선생)을 만나 지금까지 서예의 연을 맺게 되었다. 군대 가기 전 한강성심병원에서 자원봉사로 서예를 환우에게 가르쳐주다가 입대해서 상벌계에서 붓으로 상장 같은 글을 썼다. 복학하고 죽림 정웅표 선생을 사사하다가 졸업하자 마자 역곡에 서예학원을 냈었고 이곳으로 옮겨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사회복지를 공부해서 진로 결정에는 문제가 없었고 선생님도 서예는 고달픈 길이니까 전공을 살리라 했지만 하고 싶은 서예가 좋아 자연스럽게 이 길에 입문하게 되었다. 아마도 대학교 1학년 때 전국대학미술대전에서 수상하면서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 대학시절 서예반인 연서회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했고 지금도 연서회에서 후배들을 지도한다고 들었다. 대학시절 이야기 부탁한다.


숭실대 연서회는 1974년 동아리 인가를 받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2024년에 50주년이 되었다. 그래서 과천문화재단 내에 있는 갤러리 마루에서 50주년 기념 서예전을 성대히 치뤘다. 연서회는 봄, 가을로 전시회를 하는데, 4학년 졸업 후에는 숭예림이라는 졸업생 서예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숭예림 회원 중에 대한민국미술대전(예전의 국전) 초대작가도 많이 배출되고 왕성한 작품을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중 한 사람이고,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이 있어 서로에게 많은 격려와 힘이 된다.

2225_5738_193.png 대학시절 연서회 멤버들, 40년 가까운 세월 서예로 우정을 나눴다.(뒷줄 왼쪽 두번째가 원명환 선생)


2225_5577_2513.jpg 행사장에서 서예 퍼포먼스를 하는 원명환 선생


- 서예를 배우면 무엇이 좋은가? 그리고 서예계의 현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달라.


서예를 배우면 좋은 점은 몰입과 집중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를 선문하여 다양한 작품으로 펼쳐보일 수 있다. 가령 책을 보다가 메모했던 글이라든지, 유행가 가사일지라도 자신과 타인의 마음에 울림이 있는 글이라면 다양한 형태로 작품화한다. 요즘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변화가 이루어지는 디지털 시대이기에 아날로그 감성, 느림의 미학인 서예가 많이 위축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다행인 것은, 젊은 친구들이 서예나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고무적이라고나 할까.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서예가 상당한 위치에 있는 예술 분야이다. 현존하는 작가들 중에서도 작품 하나에 억대가 가는 작품이 많이 있고, 활동하는 작가군도 두텁고. 이것은 국가가 정책적인 마인드로 전통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여세추이(與世推移)'라고 세상이 변하는대로 따라가는 것이 순리이기에 형식도 내용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전통 서예에서 실용과 디자인이 결합한 캘리그라피라든지, 전통적인 도장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수제 도장 만들기 등 형식의 틀을 조금씩 깨서 내용을 더욱더 알차게 나만의 아우라가 있는 작품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 같다.

2225_5734_1441.png 심사장에서(가운데 흰마스크 쓴 사람이 원명환 선생)


2225_5735_155.png 중국 산동성방송 인터뷰


국가에서 주관하는 국전(미술대전)이 81년부터는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어 오다가 88년도에 서예 단체가 분리되어 만든 단체가 사단법인 서예협회이다. 90년대에 이 두 서예계가 통합하려고 하다가 통합이 되지 않아서 또다른 사단법인 서예가협회가 되어 현재 서예 단체는 세 개이다. 이 중에서 미술협회가 제일 큰 단체이다. 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 96년 입선했고 계속 입선해서 점수를 받아 2012년에 초대작가가 되었다. 서예계에서는 최고의 영예이다. 2016년도에 심사를 맡았고 2024년에는 운영위원을 했다.


- 어떤 사람이 서예를 배워야 할까?


요즘은 모든 사람이 빠른 사회적 패턴에 발 맞춰서 가야 하기에 초조하고 번잡하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잡을 수 있는 진득함과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서예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의 필기구는 컴퓨터와 휴대폰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손글씨를 쓸 기회가 많지 않다보니 깊이 사유하고 통찰해보는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감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요즈음 다시 손글씨를 쓰는 추세로 돌아서고 있다.


예전에는 정신 수양 측면으로 서예를 배운다면 지금은 예술적인 글꼴을 배우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많다. 디자인, 조형미를 나름대로 연구하는 분위기이다. 손글씨가 마음을 울리고 글씨가 상표에 들어가면 제품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포스터나 북 아트로 옮겨지면 활자화가 아닌 로고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계성이 너무 빠르게 되어 전통 서법인 서예 글쓰기로 회귀하는경우도 많다.


- 가장 좋아하는 글귀는?


서경에 나오는 '滿招損 謙受益(만초손 겸수익)'과 예기에 나오는 '敎學相長(교학상장)'이라는 글귀를 좋아한다. 오만하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는 말과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는 뜻이다. 모든 일에는 겸손함이 있어야 하고, 죽을 때까지도 배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지금의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까지는 대학교와 학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힘써 왔는데 앞으로는 나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일을 오롯이 해보고 싶다. 평면의 화선지에 먹 작업만 했는데 외연을 확장해서 전각과 서각을 융합한 다양한 입체적 시각 예술을 해보고 싶다. 지금은 조금씩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해 보고 있다.

2225_5733_126.jpg 서각작품, 호랑이가 삼킬 듯하다.


2225_5726_04.jpg 기와에 전서체를 쓴 전각 작품


- 올바른 서예 감상법과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하고픈 말은?


서예를 감상함에는 반드시 먼저 스스로가 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있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낄 뿐이라 하지 않았는가.


서예의 점과 획, 그리고 형체가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 가운데서 아름다운 모양과 동태적인 것을 연상시킬 수 있어야만 비로소 훌륭한 예술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작가의 사상과 감정이 충분히 담겨져있는지 筆法(필법)과 墨法(묵법), 章法(장법), 氣韻生動(기운생동)함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


서예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즐거운 마음으로 써야한다. 선입관을 버리고 서법을 지키며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첨삭 지도를 받아야 좋은 글씨를 쓸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신을 집중하여 정성껏 자신의 실력에 맞춰서 성실하게 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한마디 부탁한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서예의 길이라서 재미있고 만족을 하는데, 가족에게는 보탬이 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산처럼 크다. 함께 하는 시간도 적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해주지 못해 아쉽고 미안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무엇보다도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올해 2025 을사년을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그래서 법구경에 나오는 '蛇脫故皮(사탈고피)'라는 글귀를 써 본다. 뱀이 허물을 벗듯 현재의 상태에서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한 해 되소서


작가의 작품 감상

2225_5582_2825.jpg 규보, 반 걸음이라도 쌓지 않으면 천 리에 다다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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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경력


1. 개인전 및 아트페어전 5회, 단체전 300회


2.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역임


3. 경기, 인천, 전남 미술대전, 단원미술제, 대한민국서예한마당 휘호대회 심사


4. 부라파 대학 초대전(태국)


5. 문등박물관초대전(중국 산동성)


6. 한중교류특별전(수원컨벤션센터)


7. 계양구 미술협회회장 및 계양아트갤러리관장역임


8. (현) 숭실대, 숙명여대, 부평구 노인복지관 서예강사 한국미협, 한국전각협회, 한국서예가협회 회원


#인천광역시 부평구 굴포로74 동아@상가 201호(석오서예)


한이수 대표기자 enfpao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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