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한 당신과 만나는 방법
윤은성,『주소를 쥐고』의 표지. (출처 : 교보문고)
대림에서
비가 곧 올 것이라고 한다. / 어디에서 이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대는 또 걷고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창밖에 생겨난다.
밖에 아직 빛이 많고. 여기도 아주 밝다.
새가 떨어져 있을 것 같다.
털실을 감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곳을 저녁이라고 한다.
과일과 생선을 고르러 나오는 사람들은 이곳에 아이 혼자 보내기를 꺼린다.
시장이 내다보이고 /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어느 틈엔가 모두 빠져나가고
나는 다시 손님을 기다리며 흰 바닥을 닦는다.
저녁이라는 말은 / 장례 행렬이라는 말과 비슷한 기분을 갖게 한다.
장작이 타오르는 느낌이 드는 것도.
언젠가 소각하려던 메모들을 지금 떠올리게 되는 것도
*
비가 곧 온다고 해. 바닥이 발자국으로 뒤덮인다는 거고. 그러면 여기가 바닥인 걸 잊지 않게 되겠지. 자꾸 무언가 알아채는 사람들. 낮이 길어졌다고들 한다. 야비해지지 않으려고 식사를 한다고들 하고 야비해졌기 때문에 식사를 하는 나 역시 그렇게 바꾸어 생각해도 될까.
정산을 마무리하고 막차를 타러 갈 시간인데. 나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종종 잊게 되고 만다.
너는 가지 않았구나.
남아서 조금 더 알아챌 게 있다는 듯. 남아서 좀더 바닥을 더럽혀놓기라도 하겠다는 듯. 반갑고, 얄궃고, 너를 혼자 두어야만 할까. 나는 곧 문을 잠가두려고 하는데.
젖은 털옷이 너의 어깨에 덮여 있다. 자꾸 어디로 풀려나가는 물의 줄기. 어디서부터 비를 끌고 온 거니. 바닥과 면적이란 말들은 삼켜둔 말을 가진 어린 사람의 표정이 떠오르게 하고. 그리고 또 저녁이. 열차가. 행렬이. 살아 움직이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너의 젖은 빛들이. 날아가는 새 뒤로 떨어지는 깃털이. 열지 못한
내 앞으로 남겨진 기록들이 / 떠오르게도 한다.
묵념을 하려는 사람처럼. / 빈소에 따라오지 못한 반려견처럼.
그 앞 단단하게 잠겨 있는 문처럼. / 날씨란 많은 날을 떠올리게 하지만, 또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지. 일기예보를 듣는 것은 신나지는 않았잖아. 잃은 것이 있어도 되찾으러 오지 못하는 일상에게는. 점점 무표정을 배우게 하는, 지나가는 목소리들이 스쳐 가는 여기서는.
무탈하게 잘 돌아와 웃으며 일을 하고 내가 본 가장 깊었던 바닥은 조용하고 어두웠어. 열리지 않는 문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부터 얻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믿어 줄 수 있겠니. 열리지 않는 문들로부터 내가 조금은 천천히 웃기도 한다고 하면, 너와 무관한 일이겠니.
*
퇴근을 하시냐고 물었는데 / 빈소를 혼자서 청소하는 여자는
지금 남편에게로 / 가는 길이라고 해.
사라지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치며 멀어지지.
어쩌면 그보다 조금 느리거나 빠를 뿐.
*
이제 이 골목에는 이곳만이 빛을 / 마지막까지 꺼뜨리지 않고 있다.
겨울이 시작된 이후로 / 눈을 자꾸 깜빡거리게 된다.
무표정한 바닥이 / 할딱이며 밭은 숨을
쉬게 되기도 하고.
시집 『 주소를 쥐고』
시집 『주소를 쥐고』의 화자는 시집의 제목처럼 주소를 손에 쥔 채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래서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순서대로 읽어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찾기 위한 화자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제는 기다리면 되니까. 하차한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중략) 나는 계속 기다린다. ‘왔구나’라는 말을 대신할 말을 찾으면서.” - 「주소를 쥐고中」
우선, 화자가 선택한 방법은 누군가를 찾아갈 때 가장 기본적인 방식인 그 사람의 ‘주소’를 따라가는 것이다. 화자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차 있다. 그는 집 앞에서 잠시 기다리는 일이 큰 어려움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화자의 기대와 달리, 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도대체 그는 왜 오지 않는 걸까? 화자는 고민 끝에 자신의 손에 놓인 ‘주소’를 의심한다. 어쩌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소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열차는 여름 내내 정차해 있었다. (중략) 그는 나에게 피차 무의미한 언쟁은 더는 하지 말자고 했다. 분명한 것이 없는 만큼 그냥 좀 있자고 했다. (중략) 놀랍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싸움을 걸 수도 있다니. 그는 더욱 무심해지고 더 깊은 잠에 빠지고.” - 「우리가 있었고, 여름 中」
화자가 떠올린 기억 속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계속 다투고 있다. 썩 기분 좋은 기억은 아니다. 그러나 그 기억과 마주해야 한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아픈 과거의 기억 속에서 힌트를 찾아야 한다. 화자는 「나의 소울메이트」, 「양남」, 「2월의 눈」 등의 시편에서 계속해서 그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억 속에서 화자와 그는 이별의 순간에 놓여 있다.
“창밖에서 그는 나보다 먼저 고개를 돌리고 플랫폼을 달려 사라지고 있었다.” - 「일단락 中」
“숨을 쉬는 것만으로 가장 작은 인간이 되는 그대가 걸어간다.
그대를 뒤쫓고 있는 내가 걸어간다.” - 「전제와 근황 中」
그리고 회상의 끝에서, 마침내 화자는 기차역에서 자신을 떠나가는 그 사람을 목격한다. 화자는 그 사람을 따라간다. 그러나 그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는 마치 자신이 "배차 간격표가 부정확한 시골 마을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화자는 끝내 그를 만나지 못한다. 화자가 그에게 다가가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 떠나간다.
“타고 난 이후, 길들의 터에서 식별 가능한 방향과 뭉개진 물건들의 용도를 애써 떠올려보고 있었다. 손이 망가질 때까지, 녹아버린 그대의 소지품을 구별해 던져내고 있었다.” - 「정확한 주소 中」
그리고 마침내, 「정확한 주소」라는 제목의 시에서 화자는 깨닫는다. 자신의 여정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신이 그토록 끈질기게 찾아 헤맨 그는 이미 연소되어 ‘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화자가 그를 떠올리는 바로 그곳임을. 절망의 끝에서 화자는 비로소 그를 만난다. 너무나 멀리 있지만, 너무나 가까운 화자의 기억 속에서, 추억처럼 그는 생동하고 있었다. 그렇다. 화자는 이미 『주소를 쥐고』에서 잘못된 주소가 아닌, 정확한 주소로 향했다. 그 사람을 기억하고 떠올리는 바로 그 순간, 화자는 이미 그를 만난 것이다. 화자는 그렇게 자신의 여정을 마무리 짓고 돌아온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
해본 적 없는 질문들이 있다.
트럭을 따라가던 강아지가 되돌아오고
정리가 안 된 공사장의 자재들이
나의 인상에 남아 있는 이유 같은 것들.
할아버지는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왔냐고.” - 「밤의 엔지니어에게 中」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의 공간이 아직 밝다고 느낀다. 그런데 사람들은 화자의 공간을 ‘저녁’이라고 부른다. 시의 이러한 상반된 시선은 어떻게 해명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털실을 감으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이 시집을 누비며 ‘그’를 찾아 헤매던 화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사라진 ‘그’를 만나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났던 화자는 결국 ‘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를 만나는 방법은 자신의 기억 속으로 향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자는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화자가 겪었던 과거의 그릇된 여정을 답습하고 있다.
이렇게 가만히 ‘그’를 떠올리는 화자의 태도는 ‘장례’를 연상시킨다. 장례는 이미 떠나버린 고인을 추억하며, 고인과 만나는 시간이다. 즉, 이 시의 화자의 시도는 어떤 의미에서 ‘장례’와 닿아 있다. 화자는 슬픔이 가득한 장례식장에서 희미하게 미소를 띠어 보이기도 한다. 떠나간 이를 기억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며,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통해 화자는 마침내 부재한 당신과 기적처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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