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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화가 이향남의 예술 기행  ②]

by 데일리아트 Mar 26. 2025

도형의 기본 요소로 점, 선, 면이 있다. 세상의 기본 요소에도 점, 선, 면이 있다. 도형의 기본 요소로서의 점은 위치만 있는 시작의 출발점이며, 선은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고, 면은 무수히 많은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점, 선, 면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하나의 형태가 이루어지고 세상이 만들어지며,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점, 선, 면을 자연에서도 발견했고 볼 수 있었다. 자연에도 점, 선, 면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둘의 관계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점: 케냐,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는


원시 자연에 대한 동경의 대상인 아프리카는 도전적인 트레킹 여행지다. 아프리카의 일부로 택한 케냐와 탄자니아의 방문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감이었고 벅찬 감동과 설렘의 시작이었다. 광활한 대지의 끝도 없는 초원이 그렇고, 초원 위에 점점이 박혀 있는 듯 한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그렇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마사이마라 초원

브런치 글 이미지 2

          마사이마라 초원의 동물들


현대 미니멀리즘 음악의 상직적인 인물로 루도비코 에이나우디가 있다. 그는 전통적인 클래식의 틀을 넘어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작곡가의 독창적인 음악은 단순한 화음과 끝없는 반복으로 자연에 대한 찬탄을 담고 있다. 피아노 선율 하나만으로도 풍경을 그려내고 삶의 순간을 포착한다. 파도 소리, 잎사귀의 움직임, 바람소리 등. 그는 자연을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글을 보고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소로우가 자연 속에 집을 짓고 자연의 아름다움, 그곳에서 벌어지는 자연의 변화들을 남긴 글이 동기가 된 것이다.


에이나우디가 마사이마라 초원을 직접 경험한다면 어떤 음악이 나올까 사뭇 궁금하다. 로마의 황제이며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일화가 생각난다. 지나가는 행인이 양지쪽 돌에 비스듬히 기대어 햇살을 쬐고 있는 황제에게 물었다. "당신이 지금 원하는 것은 뭐요?" 하자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저 햇살이 가리지 않게 당신이 비켜주는 것이요" 라고 말했다. 아마도 여기 마사이마라 초원의 햇살 아래 그가 서 있다면, 방해자 없는 햇살을 만끽하지 않았을까 싶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에 걸쳐있는 마사이마라와 탄자니아 세렝게티는 아프리카에서 사파리로 단연 으뜸인 곳이다. 눈으로 확인하고 걷는 체험으로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더 없이 좋았다. 두 나라에는 초원과 호수와 화산으로 인한 구릉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여러 종류의 동물과 각종 새들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기에 환경이 좋은 나라들이다.


아프리카 첫 방문지인 두 나라에서 느낀 감성들로 나는 아프리카의 매력에 푹 빠졌다. 대자연의 접견은 내가 화가로 활동하고 작품 제작하는 데 많은 동기 부여가 된다. 자연 안에, 우주 속에 내가 존재함을 인식하기도 한다. 동경하던 원시 자연에서 자연과 하나임을 느낀다. 마음은 더 없이 평온하고, 육체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넘어가면 아프리카의 지붕이라 불리는 킬리만자로 산이 있다. 정상까지 완등하며, 그곳에서 아프리카를 내려다 보겠다던 꿈을 이룬다. 고산증에 시달리고 육체의 한계를 느끼며 정상에 선다. 일상의 삶에서 이보다 더 어려운 시련을 겪는다 해도 헤쳐 나갈 것 같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킬리만자로 산

브런치 글 이미지 4

          상공에서의 킬리만자로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화산 돌 밖에 없는 우뚝 선 거대한 산. 왜 아프리카의 지붕이라고 부르는지 새삼 알게 된다. 지친 몸을 잔지바르 섬에 맡겼던 나는 케냐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킬리만자로 산의 장관을 본다. 기장의 오른쪽 창문 밖을 보라는기내 방송에 반사적으로 창문을 향해 몸을 비튼다.


산허리 아래는 구름에 가려지고, 그 위로 우뚝 솟은 검은 회색의 거대한 킬리만자로 산. 그만의 위용을 드러낸다. 빙하로 덮인 정상에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검은 구멍이 보인다. 빛나는 빙하의 흰색 때문인지 더욱 검고 깊어 보인다. 동그란 구멍이 아프리카의 눈 같다. 대자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초현실적 풍경.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다.


이러한 감동은 네팔의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하고 귀환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있었다. 창문 밖 아래 빙하로 반짝이는 길다랗게 펼쳐진 거대한 히말라야 산군들. 초현실적 풍광을 내려다보는 감동.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자연은 위대하다는 것을 글이 아닌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온 몸이 지치고, 잠이 모자라 눈꺼풀은 무겁고, 몸은 추위에 거덜 나고, 포근한 침대가 그리울 때, 비행기에 몸을 싣고 대서양 연안의 잔지바르 섬에 내린다. 잔지바르 섬 바닷가 해먹에 지친 몸을 뉘고, 눈은 옥색 바다와 창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먼 하늘은 바다 끝 수평선과 만나고, 두둥실 흰 구름은 나를 태우고 넓은 인도양을 보여준다. 인도양 바람이 살랑살랑 나에게 새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쪽 끝 희망봉에서 넓은 대서양과 마주했던 기억도 새롭다. 거친 파도, 거친 바람, 추운 날씨. 그때 언젠가는 저 대서양을 가르며 거친 항해를 하고 싶었다. 대서양과 인도양을 횡단하여 새로운 항해 시대를 연 바스쿠다가마처럼. 바스쿠다가마의 길을 따라가며 그의 모험심과 새로운 세계에서 보고 느꼈을 감정들을 이입해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인도양의 바다는 사뭇 다르다. 파도는 잔잔하고, 창공은 날고 싶고, 바다의 색은 옥색이며 스치는 미풍은 부드럽다. 햇살의 적당한 무더움과 포근함이 킬리만자로 산의 등반으로 얼었던 몸을 감싸준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잔지바르 섬의 바다


잔지바르의 풍광은 단순히 공활한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풍경이지만 공기, 바람, 위치, 크기, 거리, 길이 등으로 공간감을 느낀다. 지금까지 감명 깊은 자연 풍광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도형의 기본 요소들과 세상의 기본 요소들 때문이다. 점에 관해 언급하자면 마사이마라 세렝게티 초원의 풍경이나 잔지바르 섬 풍경에서, 소실점과 투시도법과 원근감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화가의 시선이나 정신으로 인해 그림에서 읽어내야만 하는 세계도 있다.


마사이마라 광활한 초원이 저 멀리 하늘 아래로 멀어지며 사라진다. 초원 가까이, 또는 멀리 여러 종류의 수많은 동물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듯 보인다. 가까이 있는 동물들은 큰 점처럼 형체가 크게 보이나, 멀리 있는 동물들은 작은 점일 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잔지바르 섬의 확 트인 바다에서, 가까이는 흰 파도를 볼 수 있고, 하늘 끝으로 멀어질수록 잔물결만이 일렁임을 볼 수 있다. 바다 위 하늘은 먼 바다 끝으로 갈수록 흰색은 옅어지고 구름은 작아진다. 바다와 하늘은 멀어질수록 서로 수평선에서 만난다.


앞에서 언급하고 있는 풍경 이야기들은 원근법이라는 묘사 기법으로 인해 보이는 자연 풍광에 대한 이야기이다.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원근법이란, 첫 번째는 소실점을 이용한 투시도법이다. 하나의 소실점을 기준으로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리는 기법이다. 소실점의 개수에 따라 1점 투시, 2점 투시로 나뉜다. 두 번째는 색의 차이를 이용하여 그리는 색채 원근법이 있다. 가까운 것은 진하게, 멀리 있는 것은 옅게 그린다.


투시도법은 3차원의 물체가 위치하는 공간과의 관계를 2차원 평면으로 옮길 때 쓰이는 기법이다. 이러한 투시도법에 의한 원근감 표현은 특히 광활한 자연 풍경화에서 매우 중요하고 이를 적절히 이용한 풍경화에서는 공간의 깊이가 느껴진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유럽에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발전하게 된다. 이때부터 발전한 자연 관찰과 탐구로 인한 지식으로 투시도법이 발전한다.


하늘과 땅 공간 안에는 여러 형태들이 존재한다. 그 공간 안에는 눈에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풀, 나무, 동물, 하늘 등이 보이는 반면 공기, 바람, 햇빛, 느낌 등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보이는 대상들의 위치, 크기, 형태, 물체의 방향, 거리 등이 투시도법에 의해 그려지면서, 풍경 전체에 대한 공간감과 공감각이 생긴다.


소실점이란 사전적 설명은, 원근법에서 실제로 평행하는 직선을 투시도상에서 연결했을 때, 하나로 만나는 점이다. 또는 물체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작아지고 간격이 좁아져 나중에는 한 점으로 보이는데 점을 말한다. 소실점은 실제로 존재하는 지점이 아니라 화가의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가상의 지점이다. 그러므로 실제의 자연 풍경화는 화가가 설정한 소실점의 위치나 화가의 시선에 의해 현실과 차이나는 독창적인 그림을 연출할 수 있다.


마사이마라 초원은 창공과 만나고, 잔지바르 섬의 옥색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풍경에서 오는 공간감은, 하늘을 뚫고 날아오르고 싶은 충동감을 준다. 먼 하늘은 저 멀리 사라지는 초원과 만나면서 그 공간에는 큰 공간 지각이 생긴다. 화가들은 이러한 공간감이 있는 파노라마 풍경을 예리한 눈과 감각으로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것이다.


결국 도형의 기본 요소 중 점과 관계 있는 원근법, 투시도법, 소실점의 세 가지 기법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자연의 풍경화는 이 기법들을 잘 이용함으로서 현실감 있고 입체감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Nomad life, 2017,  80.3x100,  Oil on canvas


위 작품은 케냐와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산의 트레킹을 마친 후, 도착한 잔지바르 섬의 풍광이다. 대서양 연안 잔지바르 섬의 휴식 시간. 산행으로 온몸의 체력이 바닥일 때 눈에 확 들어온 옥색 바다와 하늘이다. 마음은 평온하고 몸은 창공을 난다. 더 없는 휴식의 달콤함이다.


순간 육체와 영혼은 바다에 내던져지고, 반짝이는 두둥실 구름 타고 눈은 광활한 대서양을 내려다본다. 코끝을 스치는 미풍은 바닷가 내음까지 전해준다. 캔버스 위에서 이동이 자유로운 스카프가 날아오른다. 스카프 위에 위치한 신발은 어디론가 금방이라도 걸어가려 한다. 긴 휴식은 앞으로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향한 발걸음을 상상하게 한다. 지구 어디든, 우주 어느 곳이든 걸어서 갈 수 있는 신발. 신발은 나의 표상이다.

바다의 옥색과 높고 푸른 하늘은 있는 그대로의 색을 썼다. 청명한 느낌과 자연을 접하고 싶은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의 블루이다. 하늘과 바다 시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대상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온다. 관람객이 각자 보고 느낄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진정한 노마드는 실천을 바탕으로 삶을 바꾸는 행위로부터 시작한다. 그에게는 노마드가 초월하는 초월적 밖, 결정 불가능한 다양한 세계를 현재적 삶 속(안)에서 작품으로 어떻게 구현하고 작동시킬지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봉욱, 예술평론. 예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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