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나이 / 후편
타닥타닥... 향초가 탄다. 어린 시절 동생이 좋아하던...
새터민의 사전적 의미 - 북한을 탈출하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
남조선 사람의 나라, 우리 나라. 그 나라에 얹혀 살고 있는 또다른 ‘우리’는 영원한 타인일 뿐. 애당초 착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름이 예뻐졌다고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살려달라고 구질구질하게 밀고 들어 온,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으로도 박해 받는 사람, 그게 새터민이다. 남조선에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기사가 끊임없이 나온다. 아파서, 돈이 없어서, 실패해서, 버림 받아서… 새터민은 이 모든 걸 다 합해 놓은 시한폭탄이다.
“이거 봤음매? 몇년전에 온 에미나이인데, 얼마전에 미국가서 연설했수다.”
억양이 센 강이 이모가 신문을 펼쳤다. 사진 속 어린 아가씨는, 공주님이나 입었을 화려한 한복을 걸치고 울고 있다. 그녀가 썼다는 수기집을 안다. 매년 새터민 책이 나오지만, 그냥저냥 다 비슷하다. 얼마나 불쌍했나, 어떻게 탈출했고, 무슨 위기를 넘겨서, 어디서 누구를 만났으며, 지금은 무엇이 필요한가… 어쩌다 동정이라도 좀 받을까, 가끔은 주먹돈 (목돈) 몇 푼에 누가 고문 당했네, 죽었네 하는 흔한 소문까지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거짓을 늘어놓는다. 불쌍한 척, 간 쓸개, 영혼을 판다.
“연희 선생도 글을 쓰라. 영어 잘한다니 아예 미국에 보내는 거이 좋슴매. 남조선에서는 일 없수다. 미국에서 책이 나와야 큰 돈 벌고, 이 에미나이처럼 유앤가서 북조선 욕바구 좀 해주고 유명해지라우. 평화, 인권, 뭐 이런 운동가 되면 돈이 엄청 들어온다 함매.”
강이 이모는 벌써 이십년 넘게 한국에서 살아 온 조선족이다. 말투는 거칠지만, 푸근하고 따뜻한, 아마 남조선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엄마이자 이모같은 사람... 연희에게는 따뜻한 밥 한 그릇 꼭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하루 열두시간을 돈까스집에서 일하고도, 자정 가까이에 길 건너 이 주점으로 와 새벽녁까지 주방을 도맡는다. 다음날 장사를 위한 준비를 마쳐놓으면 동이 튼다. 사장이 올 때까지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다시 돈까스 집으로 출근...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으로 상인들에게 이자 놀이도 하고, 여기저기 원룸을 구입해 월세를 받는다고 했다. 살만하겠지... 빈 손으로 와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아무리 옷을 갈아입어도 기름 냄새가 배었다며 툴툴 거리지만, 일을 그만 둘 기미는 없다. 짬짬이 쉴때면 잊지않고 바셀린을 듬뿍 바른다.
“나도 북에서 왔으면 좀 대우가 나을까 했는데, 지나보니 선생이나 나나, 사람 대접 못 받기는 똑같슴매. 이 나이 먹도록 하루 서너 시간 자고, 여태 휴가라고는 못 해봤수다. 종일 일을 하니 몸땡이가 돌땡이라도, 울같은 사람은 움직일 수 있을 때 버는 거이 맞지, 안그렇슴매?”
“많이 벌면 좋지요. 고향도 왔다갔다 하시잖습네까.”
“고향은 무슨… 왔다갔다 하는 거이 다 돈임네. 연희 선생도 아즉 어릴 적에, 책 하나 쓰고, 방송 나가라우. 돈방석임매. 선생처럼 이래 곱게 생긴거이 눈물 좀 흘려주고, 몇번 방긋 웃어주지요? 그러면 그거이 바로 인기 스타 되기요. 북에서 노래 춤 다 했다며 무애 식당서 이러고 있소? 얼른 유명해져 돈 많은 남한 남자 만나 혼인 해야지. 식당 고만 때려치기오, 이럴려고 왔슴매?”
이럴려고 왔나… 그래, 북에서 살 때가 훨씬 행복했다… 라고 한다면 괘씸하겠지만, 사실이다. 그때는, 어렸기에, 아니면 아는 게 없었기에 부족한 것도 없었다. 알면 알수록, 살면 살수록, 힘들다. 1년 걸린 탈출에다가, 정보부의 신원 확인에만 몇 달, 짧지만 그래도 제일 마음은 편했던 하나원… 남한 국적은 얻었지만 가족과 지위를 잃었다. 그럴때마다, 목숨걸고 찾아 온 것은 돈이 아니라 자유다, 자유와 인권이다, 라고 되뇌었다. 스물에 평양을 떠나 벌써 몇년인가. 밥벌이라고는 강이 이모 말대로 식당일 밖에 없지만, 그나마 감자 한 알이라도 훔칠까 감시하는 눈초리와 소름끼치게 감겨드는 술 손님의 추파, 뭐라도 꼬투리 잡아 돈 안 주고 내보내려는 주인들 때문에 쉽지 않다.
“한 숟갈 먹고 들어가오. 혼자 굶지 말고.”
강이 이모가 대충 한 쟁반 차려 나왔다. 팔고 남은 육개장에 자작자작 물이 나오기 시작한 숙주나물, 기름에 쩔은 잡채와 남비 바닥에 눌어붙은 감자 조림... 그래도 이번 사장은 잔반에 인색하지는 않다. 팔 수도 없고 처치하기도 곤란하니, 버리는 셈, 놔두는 눈치다. 연희는 손빨래 한 행주를 야무지게 탈탈 털어 의자에 걸고 자리에 앉았다. 락스 냄새가 나지만 아침이면 다 없어진다. 밤 사이 훌훌 날아간다… 모든 게 다 그렇게, 자고나면 저절로 해결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숙주나물과 감자를 밥그릇에 덜어 대충 뒤적거리고 입에 우겨 넣었다. 정산을 마친 사장은 인사도 없이 돈통만 챙겨들고 사라진다. 좋겠다. 돈 벌고, 집에 가고, 가족도 보고… 얼른 허기만 채운다. 또 하루를 생존했다. 두 밤만 더 버티면, 한달만에 쉬어보는 휴일이다.
“그 사채꾼들, 어제 또 왔슴매? 얼마 남았는데 자꾸 오는가?”
강이 이모가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 가 없었다. 원금은 커녕 이자도 턱없이 부족하게 주고 있다.
“에효, 그럼 그렇지… 쉽지않슴매. 아무리 젋어도, 녀자 혼자 번다는 거이... 그저, 배운게 아깝고, 인물이 아깝고... 북에서 태어난 게 죄 입네다.”
강이 이모가 국물만 남은 육개장에 밥을 말아 후루루 마셨다. 누가 들을새라 빈 가게를 둘러 보며 물었다.
“그래도, 동생 맞다지요? 청안가서 만난다던데?”
“연락은 받았는데, 돈을 아직 못 보냈습네다. 얼굴이 비슷한 것도 같은데, 너무 멀리서 찍은사진이라 또 아닌 것도 같고… 데려오는 비용이 사백오십이라는데 마련할 곳이..”
“에헤이, 또 그전처럼 휑하니 사라지면 어쩐다?”
강이 이모가 혀를 찬다. 별써 이년 넘게 동생을 찾으려 애썼지만 쉽지 않다. 비슷한 아이를 보았다는 말에, 사채까지 끌어다 전문 브로커를 고용했다. 그러나 찾는 쪽이 공안인지 연희인지 알리 없는 연정이는, 쫒으면 도망가고, 찾으면 숨고… 몇번이나 아슬아슬 손끝에서 빠져나갔다. 안타깝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무나 믿고 덥썩 따라나서는 것 보다 낫다고 위로했다.
“내래, 연희 선생이 돈으로 고생 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오. 그냥 혼자 잘 살게 놔둘 걸, 괜히 동생 찾자 부추겨 이 사람 저사람 소개나 하고…”
“아닙네다. 이모 덕에 일도 진전이 있고, 그 중국 브로커가 남조선 사람들보다 확실히 잘 합네다. 벌써 몇번을 비슷한 아이를 찾지 않았습네까? 사채도… 물론 이자는 비싸지만, 어쨌든 요긴하게 잘 썼고... 담보도 없이 그 큰 돈을 내주는 게 어딥네까? 그 사람들 말대로, 제가 조금 비싼 데서 일을 하면 되는데, 그게 아직…”
아무리 친이모 같은 사람이어도, 이 바닥 일을 다 알고 있다 해도, 차마 말하기 싫다. 이자 밀리지 말라며 사채 업자가 집어 던지고 간 알몸 사진이 찍힌 전단지, 하루에도 수십통씩 보내오는 성 봉사 (매춘) 연락처… 게다가 콩팥을 넘기기로 한 날짜까지 며칠 밖에 안 남았다. 그래도 죽을동 살동 조금씩이라도 이자는 내고 있으니 한번 더 기회를 구걸해 볼 생각이다. 빈 밥그릇을 내려다 본다. 어쩌면 평생 단 한번도, 그녀의 밥그릇은 가득 찬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눈물이 흐르기엔 상황이 너무 익숙하다. 슬픔? 절망? 포기? 덤덤하다. 매일매일 혼자만의 최악을 경신한다. 매일 밀려오는 오늘이 어제보다 못하다면, 누가 더 살 수 있나. 그러고도 감히, 더 살으라 말 할 수 있나.
“선생 어려운 거 잘 알고 있슴다. 동생한테 들어가는 돈이 한두푼도 아니고… 그러기에 고시원 값이라도 아끼라 내 오피스텔 하나 빈 거 그냥 들어와 살라 안 했슴매? 물값 전기값 다 내가 내오. 선생은 몸만 들어와 거저 살면서, 방값이라도 모아 동생 먼저 찾자니까, 왜 여태도록 고집이오? 아이고 참… 이렇게 살다가는, 동생 향초 값도 안 나오겠소.”
강이 이모가 긴 한숨을 내 쉰다. 가끔 아끼고 아껴 이삼천원의 여유가 되면, 동생이 좋아하던 향초를 산다. 고시원 가방 안에 모아놓았다. 타닥타닥... 동생과 코를 맞대고 들여다 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평양은 아직, 자주 정전이 된다...
“연희 선생, 나랑 언니 동생하는 오청아 알지요? 황해도 연백에서 온, 큰 회사 사장하고 결혼해 부자 됬다는..”
“예, 전에 통화 하실때 옆에 있었습네다.”
“그렇지, 그 동생이, 서울 어디서 조그만 거 뭘 하나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가씨를 구해 달라 합네다. 중국어를 하면 특별히 좋겠다 해서, 내 바로 연희 선생 얘기를 했는데, 한번 가보기요? 아무래도 식당보다는 더 주지 않겠슴매?”
직장… 수백, 수천번을 지원했던 ‘일자리’ 라는 것. 처음 하나원을 나왔을 때만 해도, 외국어라는 무기만 믿고 희망을 가졌었다. 순진했을까, 멍청했을까? 아니면 교만이었나? 한국어까지 3개국어를 내세웠지만, 억양이 ‘간첩같다’ 며 번번히 떨어졌다. 차라리 조선족 가정부라면 일자리를 골라서 갈 수 있다는 슬픈 농담에 억이 막혔다 (기가 막혔다). 견디기 힘든 건 낙방 뿐은 아니었다. 탈북자임이 알려지는 순간, 동포도, 피를 나눈 형제도 없다. 쏟아지는 질문 - 질문으로 위장한 조롱, 걱정처럼 들리는 모욕, 따뜻한 척 교묘한 멸시… 그들의 환영 인사는 참 거북했다. 연희는 하나원에서 소개 받았던 직업 교육원을 잊을 수 없다.
“혼자 왔죠, 다 버리고? 에이, 그럼 벌써 다 죽었겠네. 요즘도 총알 아끼느라 교수형 하나? 공개 처형이죠?”
“아유, 그런데서 어떻게 살어? 젊은 여자는 매춘해서 돈벌어 오라고 죄다 중국 내보내잖아.”
당황스러웠다. 가만히 앉아 교재만 보고 있었다.
“이제 연희씨는 인생 폈네. 우리 세금으로 돈 줘, 집 줘, 학교 보내줘… 빈민보다 탈북민이 낫다니까.”
“요새는 가짜도 많아. 돈 있는 집 애들은 중국에 아파트 사놓고, 성형에, 쇼핑에 난리래. 그죠? 거기도 젊은 애들은 차 끌고, 핸드폰 쓰고 그렇다면서요?”
“가만보면, 연희씨도 좀 귀티가 나. 뭐 김정은이 사촌 쯤 되는거 아냐?”
아닙네다… 들릴 듯 말듯 한마디 했다. 듣기 거북해 시선을 피했지만, 아랑곳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높은 집 자식은 비행기로 탈북한대. 전처럼 추운데 애 업고, 뗏목 타고, 죽자살자 안 하지. 배 부른거야.”
“아 근데, 살만 하면 거기 있지, 왜 자꾸 와, 우리도 힘들어 죽겠는데?”
“옛날에는 우리도 그랬잖아. 밀항해서 일본가고, 미국 가고... 깜둥이한테 맞고 살아도 미국 산다고 어깨 힘 빡 주고... 어디가 더 나은지 간 보는 거야. 아님, 죄를 지었거나? 연희씨도, 둘 중 하나?”
대답을 기다렸나. 연희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남자는 화제를 바꿨다.
“연희씨 참 미인이다. 남자들이 좋아했겠어. 기쁨조 해봤어?”
“안 그래도 요새, 업소 가봤지? 어우, 북한 애들 무지 많아. 촌스러운데, 뭔가 묘한 매력이 있어. 그러다 건물주 하나 잡아야지, 늙고 돈 많은 놈으로... 그러면 완벽한 탈출이지, 하하하...”
매춘하러 탈출해서, 매춘으로 연명하다, 매춘 덕에 남는다… 알고 있다. 그들이 보는 탈북녀는 그랬다. 배운게 달라 받아 주는 곳도 없고, 대신 피부가 희고 좀 마른 체형이면 노래방이나 룸싸롱에서 그냥저냥 먹고 산다고 했다. 수치스러움에 교육원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내일 먹을 밥 한끼를 버는 게 더 급했기에, 하루 몇시간씩 거기서 허비 할 수 없었다.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 몇 백은 진작에 바닥났고, 주변에 계속되는 사기와 험한 사건에 겁먹어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북조선 사람도, 남조선 사람도, 믿을 수 없다. 그랬다. 시대가 달랐다. 한 해에 2천명씩, 남한에 누적된 탈북자 수만 2만명을 넘는다. 누구도 환영받지 못한다. 우리끼리 서로를 노리고, 경계할 수 밖에 없다. 영웅은 없고, 간첩만 있다. 사람들은 이웅평이나 황장엽보다, 김신조에 더 큰 흥미를 보인다. 탈북자는, 평화로운 남조선에 불안과 공포를 몰고 오는, 초대받지 못한 빨갱이일때 그 이름값을 한다.
이틀 후, 모처럼 딱 하루 쉬는 날, 강이 이모가 알려 준 번호로 연락했다. 온라인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란다. 아무때고 편할 때 할 수 있고, 미리 녹화를 해 놓으면 나중에 조회 수 만큼 돈을 받는다고 했다. 보너스나 퇴직금은 없는 대신, 다른 알바보다 시간당 거의 두배다. 고객들 편의상 주로 밤에 일하니까, 낮에는 다른 일을 해도 괜찮다고 했다.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이렇게 예쁘고 가냘픈 여자가, 그렇게 밤낮으로 일 할 체력이 되요? 욕심내지 말고 쉬엄쉬엄 해요. 하긴 우리는, 그냥 고객들하고 수다 떨고 노는 거라서, 몸이 힘들지는 않아요. 아프거나 잠깐 일있어서 쉬어야 되면, 언제든 얘기 하고..”
상냥한 서울 말씨... 몸걱정 해주는 부드러운 음색이 좋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단 한사람도 그렇게 말해 준 적이 없었다. 취직하려 애써 봤지만, 언제 튈지 모르는 탈북자라며, 신분 확실한 남조선 사람 두명의 ‘취업 보증’을 요구했다. 작은 상점도 마찬가지다. 마감 액수가 맞지 않거나, 분실되는 물건이 있으면 30배로 보상한다는 각서를 쓰게 한다. 어떤 곳은 아예 3개월치 월급을 ‘보증금’으로 선납해야, 겨우 일자리를 준다. 강이 이모는, 나중에 덤태기 쓴다며 다 사기꾼이라고 펄펄 뛰었지만, 그나마 성 봉사 (매춘) 여성으로 일본에 팔겠다는 사채업자보다 낫기에, 공손히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오곤 했었다.
통화 후, 흔쾌히 면접에 응했다. 5호선 화곡 역에 내려 약간 경사진 길을 따라가니, 그가 가르쳐준대로 작은 벽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회사가 있기에는 좀 후미진, 한가한 주택가다.
<글로벌 뷰티>
철문에 붙은 손바닥만한 스티커가 보였다. 다시 봐도 우습다. 외국인들은 이런 이름을 좋아하나… 초인종을 누르자, 큰 키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문을 열었다.
“연희씨죠? 들어와요.”
전화 목소리... 연희가 들어서자 그가 재빨리 이중삼중으로 문을 잠궜다.
“안에 일하는 중이라 시끄러우면 안돼거든요. 신발 여기 두고, 아무걸로나 갈아 신어요. 커피 좀 드릴까요?”
“아니오, 괜찮습네다.”
아차.. 괜찮습니다…라고 할 걸.. 남자는 북한 사투리에 별 반응없다.
“그럼 시원한 걸로 드릴께요. 찾기 쉽죠?”
냉장고로 향하는 뒷모습이 생각보다 젊다. 많아야 서른 쯤? 남조선 사람들은 죄다 염색을 해서 나이를 알 수가 없다. 사장일까? 직원? 입구에 꺼내져 있던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쪼르르 줄맞춰 놓은 여자 구두 옆으로 연희도 신발을 밀어 넣었다. 낮에도 일이 많구나, 중국 학생도 있겠지... 케이팝 때문에 여기저기서 난리라던데... 2층 주택을 개조한 사무실은 많이 꾸미지 않아 단촐했다. 가방을 내려 놓고 앉은 탁자 위에, 애기 주먹만한 향초가 튜울립처럼 새초롬히 입을 벌리고 있다. 옅은 하늘색이 단아하니 아직 몇번 태우지 않은 새 것이다. 두꺼운 유리 밑에는 화장품 사진이 끼워져 있다. 립스틱, 마스카라, 메니큐어, 가짜 속눈썹…
남자가 음료수를 내밀었다.
“맘에 드는 거 있어요? 여기서 파는 거에요. 온라인 쇼핑몰 알죠? 동남아 거라 저렴해서, 주로 젊은 여성들이 많이 사요.”
아, 그래서 상호가 글로벌 뷰티구나… 어쩐지 학원 이름으로는 좀 이상했다.
“화장 많이 안 하죠? 이거 한번 써보세요, 그냥 드릴께요.”
그가 서랍에서 오렌지색 립스틱을 꺼냈다.
“아, 아닙네다, 괜찮습네다.”
손을 내젓는 연희에게 억지로 쥐어준다. 꼭 잡힌 손이 어색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연희씨가 이뻐서 다 잘 어울리지만, 그래도 오렌지는 지금 발라야되요. 나이들면서 제일 안받는 게 이 색이거든요. 있다가 샘플 보여드릴께, 몇 개 더 골라요. 한국에서 일 할려면 화장 좀 해야되요.”
아, 그렇지, 남조선에서는 화장이 필수라 들었다. 온라인으로 일하면, 화면에도 나올테니 신경 써야겠지... 거절하던 손을 얌전히 무릎에 내렸다. 뚜껑을 살짝 열었다. 곱다… 어울릴까… 마주 앉아 이력서를 읽는 그를 슬쩍 살폈다. 나쁜 사람같지 않다… 보증인 같은 건 없다고 미리 얘기할까…
“공기 괜찮아요? 향초 좋아하면 잠깐 켤까요?”
“아뇨, 괜찮습네다.”
“일 시작하면 알겠지만, 시끄러울까봐 창문을 못 열어요.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얘기해요, 향초는 많으니까.”
일 시작하면…? 일을 하자는 말일까? 향초… 향초를 좋아하는 남자다…
“남한 생활이 생각보다 힘들죠? 어때요? 마음은 좀 편안해졌어요?”
순식간에 눈물샘이 뜨거워졌다. 당황스러웠다. 들키지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보일듯 말듯 끄덕였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라면 함께 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남자는 차분히 일을 설명했다. 상대가 선불을 내고 시간을 사면, 화상 채팅으로 대화를 한다, 정해진 교재나 기간없이, 운이 좋으면 그때그때 즉석에서 시간을 연장하는 고객도 많다, 이야기 주제는 상대가 원하는 걸로 맞춰주고, 친구 사귀 듯 편하게 해라...
“제가 북에서 와서 억양이 좀 다른데, 괜찮습네까?”
“그건 걱정말아요. 일부러 북한 사람만 찾기도 해요, 신기하다고.”
남자가 웃었다. 눈이 마주쳤다. 선한 인상에 연희도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어?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네. 이쪽으로 오세요. 일하는 데 보여 드릴께요. 안에 사람들 있으니까, 조용히 갈께요?”
다른 사무실인가보다 생각했는데, 그가 앞서나간 문 저쪽은 노래방처럼 기다란 복도였다. 좁고 어두운 공간을 채운 담배 냄새… 다닥다닥 붙은 여러개의 방... 속닥속닥, 소근소근…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여자 목소리다. 간혹 웃음 소리도 나는 것 같다. 기역자로 꺾어진 복도를 따라 맨 끝방을 열었다. 들어가보라는 손짓에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고시원보다도 작은 방에 컴퓨터와 의자 하나… 의자라기 보다는, 어른 하나쯤 누울 수 있는 커다란 소파 같았다. 방도 좁은데 왜 이렇게 큰 의자를… 밤에 일해서 피곤한가? 그때 연희 뒤로 바짝, 그가 안으로 들어섰다. 철컥… 문이 닫히자 한층 더 깜깜해진 정적 속에 그의 숨소리만 들렸다. 비킬 곳이 없어 몸이라도 닿을까 긴장했다.
“방음 잘 되죠? 불은 이쪽에 있어요.”
남자가 속삭였다. 스위치를 켜자 붉으레한 조명이 들어왔다. 잠깐잠깐 다른 색이 지난다... 노랑, 초록… 보라… 그제서야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벽에 너저분히 걸린 브라, 팬티, 벌거벗은 여자 사진... 한쪽 벽을 가득 도배 한 망측한 자세… 키가 큰 그가, 할말을 잃은 연희의 귀에 바짝 수그리고 말했다.
“저 정도만 하면 돼. 중국어 잘하니까 단골 많이 생길거야.”
들은 적 있다, 알몸 화상 통화… 이거구나… 심장이 쿵쿵 거렸다. 어찌할 바를 몰라 차가워진 두 손을 꽉 맞잡았다. 놀란 숨소리가 들릴까 진정하려 애썼다. 나가야겠다 생각은 했지만, 등 뒤에 바로 붙은 그가 미동도 없이 서있다. 그의 두 손이 연희의 어깨를 토닥 거렸다.
“놀라지마. 이정도면 건전한 거야. 누가 만지기를 해, 때리기를 해? 먼저 알고 찾아오는 북한 애들도 많아. 살살 잘 배우다가, 나중에 돈 더 주는데로 가.”
조심스레 머리카락을 넘겨준다. 추근거리는 느낌은 아니다. 스트레스 받지마라, 안심해라… 딱 그 정도? 뿌리칠 용기도, 대꾸할 배짱도 없다. 그래도 희안하게... 하나도 두렵지 않다... 위험하다는 느낌도 없다. 그저 이런 상황을 맞았다는 게 놀랍다. 어쩌면 각오하고 있었나…
“이력서 보니까, 거기서 꽤 잘 살았네. 나는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다, 뭐, 그건가 본데, 이제쯤 알때도 됐잖아? 여기도 별 거 없어, 돈 떨어지면 다 똑같애. 개 고생해서 내려왔는데, 잘 살아야지?”
뒷목을 풀어주려는 그의 손을 슬쩍 떼어냈다. 순순히 멈춘다.
“잘 들어. 난, 인신매매도 아니고, 돈 떼어먹고 그런 사람도 아니야. 너 돈 필요하잖아. 그럼 벌어야지. 돈을 벌려면, 돈이 벌리는 일을 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건, 버는 게 아니야. 죽기 전까지 시간만 때우는 거야.”
방문이 열리고 그가 먼저 나갔다. 혼자 방안에 남은 연희가 태연한 척, 놀라지 않은 척…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척,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잡고 뒤따라 나왔다. 눈물이 나오려 하지만 괜찮다. 이까짓 것, 울 일도 아니다… 복도를 빠져나와 그가 있는 쪽을 쳐다보지 않고 빠르게 현관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팔을 잡았다. 뿌리치려 뒤돌아보니 잊고 갈 뻔 한 가방을 걸어준다. 아직도 약간 숨이 가쁜 그녀 옆을 지나 조용히 운동화를 꺼내 왔다.
“너 정도 생기면 돈 벌기 쉬워. 온라인인데 뭐 어때, 다시 만날 사람들도 아니잖아. 잘 생각해봐. 정 싫으면 그냥 내 보조나 하던지. 고객 관리, 아가씨 관리, 홈쇼핑… 할 거 많아. 난 니가 맘에 드니까, 언제든 다시 와.”
걸어나오는 연희의 뒤로 한번 철컥, 두번 더 철컥, 철컥… 문이 잠겼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벗어나 편의점으로 숨어 들었다. 말도 안돼… 그런 곳에 가다니… 식혜 한 캔을 단숨에 마셨다. 빈 캔을 꼭 쥐고 엎드려 마음을 추스려본다. 발가벗은 여자의 혐오스런 모양새를 떨쳐내기가 쉽지않다. 카톡… 이 왔다. 그 사람이다.
/알려줄 게 있어. 나한테 오든 안 오든, 욕을 하든 말든, 이번에는 모른척하기 싫어서/
잘난 얼굴 뒤에 숨어 사는 변태 자식. 더럽다 못해 추하고, 더럽고, 추하고... 역겹다. 이게 왜 나한테 톡을..?
/그냥 읽기만 해도 돼. 내말 잘 들어. 너 속고 있어/
속아? 뭘? 너한테? 연희는 속으로만 분노했다. 그 얼굴, 미소, 목소리…
/동생 찾는다고 돈 보냈지? 얼마? 한 삼천? 사채니까 곧 억 되겠네/
이 자가 어떻게…? 혹시 뭘 알고 있나? 아니면, 탈북자라고 그냥 넘겨 짚었을 수도…?
/그 브로커 자식, 사기꾼이야. 지타오라는 이름도 가짜고, 감방 들락거리다 요즘은 필리핀에 살아. 당구 도박해. 중국에서 네 동생 찾고 있다는 거 다 개뻥이라고. 여러명 털렸어. 정신차려/
믿을 수 없다. 그를 고용한 이후로, 동생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며 비슷한 여자의 사진도 수차례 받았고, 함께 살았었다는 아가씨도 찾아서 통화도 했었다. 여러 도시를 누비고 다닌다기에, 홍콩 계좌로 꼬박꼬박 송금했다.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려는 순간 다시 톡이 왔다.
/안 안믿어도 할수 없지만, 조심해/
/지타오가 그러던가요? 제가 사채 썼다고?/
참지 못하고 답을 했다.
/아니,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야. 사채는/
톡이 끝났다. 사채는 뭐? 왜 끊겼을까? 갈등했다. 이 남자는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넘겨짚는 것 치고는 너무 자세하다. 어떻게 된 걸까… 톡이 오지 않았다. 수상하다.. 누구랑, 뭘 하고 있길래? 지타오에게 연락하고 있나? 당장 사무실로 돌아가서 물어볼까?
/사채요, 누구한테 들었냐구요/
먼저 톡을 보냈다. 한참 후, 답이 왔다.
/미안, 잠깐 뭐 좀 하느라.. 사채랑 그 놈이랑 다 한 패야. 강이 누님도./
헉 소리가 절로 났다. 강이 누님? 가슴이, 심장이, 그리고 머리가, 멈춰버렸다. 강이 누님? 강이 이모?
/청아 얘기 듣고 나한테 온거지? 팔자 고친 탈북녀.. 거기 속아서 온 애들 많아. 못 믿겠지?/
/엊그제 나한테 그러더라, 너 오늘쯤 보낼거니까, 향초 하나 이쁜거 사서 잘 보이는데 두라고. 동생 때문에 바로 넘어 올거라고/
그래서 쓰지도 않는 향초를 사다가 거기에다…?
/청아, 여기서 일하던 애야. 누님한테 속아서 사채썼다가, 그거 갚는다고 여기 왔었어. 이자가 너무 붙어서 바로 술집으로 넘어가고, 결국은 오피스에 있다가 어떤 놈이 달라그래서 첩으로 팔려갔어/
/근데 겁도 없고, 똑똑하니까 지가 알아서 도망가버렸지. 그때도 강이 누님이 청아 어머니한테 찾아가서 섬으로 팔려갔다고 거짓말하고, 지가 구해주겠다고 돈을 뜯었어. 악질이야./
어이가 없어 답장을 했다. 그런 거짓 정보에 속지 않는다.
/안 믿어요. 강이 이모가 저한테는 피해준거 없어요/
/없다고? 잘 생각해봐. 너 사채 쓴게, 정말 니 동생 때문일까?/
/오피스텔에서 월세 나온다고 자랑하지? 거기 성매매 하는 데야. 원래 몇개씩 가지고 돌려. 단속 피하느라 옮겨다닌다고. 청아도 거기서 만난 노인네가 돈 엄청주고 데려갔어. 나이 스물도 안된게 빚이 너보다 많았으니까/
/스물도 안되었다구요? 서른 몇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야 너같은 애들이 믿지. 걔, 열세살에 탈북한 애야. 니가 선생으로 일하던 남산 밑에 그 탈북자 학교, 강이누님 일하는 돈까스 집 옆에 거기... 알바 구한다고 갔다가 누님 만나고, 좋은 데 취직 시켜준다는 말에 바로 속았어. 예뻤어. 나한테 일하러 온 게 열다섯/
...
/역겹지? 현실이야. 미성년자인 거 하나도 안 중요해. 여자인지, 예쁜지, 어린지... 그게 니들이 남한에서 살아남는 조건이야./
/청아 아직 못 찾았어. 사채 준 놈이 누님한테 돈 갚으라고 난리쳐서 오피스텔 하나 뺏겼고, 그때부터는 대놓고 동업이지. 탈북한 여자들만 골라다 큰 돈 빌려주고, 못 갚으니 매춘해라, 많이 듣던 말이지?/
카톡, 카톡, 카톡... 끊임없이 울려대는 통에 넋이 나갔다. 믿어야하나… 자기한테 오게 하려는 또다른 함정은 아닐까…?
/왜 알려주는 거죠? 동업 일텐데?/
/절대 아님. 그냥 이런 일 하다보니 알고 지낼 뿐. 혈연 지연 학연 내연, 아무것도 없어. 니가 불쌍해서.. 아님, 좀 아깝던지..?/
/전에 너 일하던 가게에 몇번 갔었어. 나 혼자 슬쩍 면접보고, 내가 맘에 들어서 너 보내라고 한거야. 이뻐서/
/돈이 목적인가요? 안될걸요. 차라리 콩팥을 주지, 그런 거 안해요./
/너무 자신하지마. 누구나 추락해. 어쩌겠어, 방법이 없는데? 절벽에서 죽어라 미는데 안 떨어질 자신있나?/
/망망대해에 딱 이틀만 표류하면, 바닷물이라도 마시게 돼. 죽을 걸 알지만, 생짜로 버틸 순 없으니까. 그렇게 몇시간, 몇 분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지/
/누님이 널 조련하는 거야. 니가 무슨 수로 억을 갚아?/
/신체포기가 신장만 주면 되는 줄 알어? 사채업자 시켜 겁먹게 해서 나한테 보내고, 그러려니 할 때 되면 좀 더한 걸 시키고, 자포자기하기 시작하면 더 쎈 데로 가고... 그동안 빚은 자꾸 늘어나/
/할 일은 정해져 있잖아. 넌 아주 잘 팔릴거야. 남는 장사지. 그때까지 자기 손아귀에 잡고 있어야 아들 유흥비라도 건지고/
/아들 유흥비요? 장애 때문에 한국에 못 들어온다는 그 아들?/
/장애? ㅋㅋ 가지가지한다. 거짓말이야. 니 브로커, 지타오가 누님 아들이야. 팔다리 멀쩡해. 한국에서 같이 살다가 사기, 사고… 조용한 날이 없었지/
/한국에 못 들어오는 건 맞아. 돈을 얼마를 들고 튀었는지, 들어오면 바로 죽을 걸/
/안그래도 누님, 오늘 아침에 필리핀 갔어. 공항에서 전화했더라. 잠깐 갔다 올테니 너 잘 가르키라고. 단속이 슬쩍 흘려줬던지, 아니면 거기서 큰 거 하나 있던지/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야. 뭐 더 궁금하면 나한테…/
* * * * *
타닥타닥… 향초가 탄다.
서른살 연정이에게 주려던, 미처 서른을 다 채우지 못한 스물 여섯개의 향초가 녹아 내린다. 흐뜨려놓은 옷가지에 화르르 불이 번진다. 명동역 3번 출구 남산텔 202호… 언제든 들어오라던 강이 이모의 오피스 텔이다. 비밀번호 여섯 자리 - 870818, 친절하게도 연희의 생일. 사채업자와 약속한 1년이 닷새 남았다. 콩팥이 아니라 오장육부를 다 뜯겨도, 도저히 빠져나갈, 버텨낼 방법이 없다.
수백명도 더 뒹굴고 갔을 이 더러운 침대에서, 천장까지 가득찬 연기를 좇아 내 길을 찾는다. 여기가 서울 명동, 저기가 평양 아버지 집… 그럼 저기 쯤이 동생이 있을지도 모르는… 어디 있을까... 왜 몰랐을까… 약 기운이 퍼진다. 손발은 커녕 눈도 깜빡이기 힘들다… 잔다… 자는 중이다…매캐한 번개탄에 눈코입이 뚫리고, 장판 타는 냄새가 성공을 암시한다. 태운다, 다 태워버린다... 강이 이모, 당신을 싸그리 태운다…
연정아, 언니가 할 수 있는 게 겨우 이것 뿐이야… 타닥타닥… 어린 시절 좋아하던 그 소리가 점점 희미해진다.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깔깔거리던 연정이의 웃음 소리도,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도… 아직 살아있나? 날 찾고 있니? 하지마... 날 찾지마... 이런일 당하지 않게... 우리 그냥... 나중에... 나중에 만나자... 좋은 곳에는, 이 다음에... 그때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