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소운 May 10. 2021

정인사 령주 보살

흰 옷의 여자가 춤을 춘다. 치맛자락에 달빛이 부서진다

힘들지 않았다. 매일 달고 사는 두통만 아니면, 천사같은 아이들과 가정적인 남편, 내 살림까지 살아주시는 시어머니… 보통 한국 아줌마로서의 정인은 그냥저냥 살만했다. 그러나, 허구헛날 가위에 눌리고, 심장이 두근거려 숨쉬기도 힘들어 질때는, 어쩌면 내가 무슨 죽을 병이 아닌가 싶어, 탁자에 놓인 아이들 사진을 보며 혼자 통곡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정말 어이없게 쏟아져나오는 하품이란! 도데체, 이 멀쩡한 정신에 하품이 나오고, 툭하면 경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툭툭 튀어오르는 미친 손과 팔을 어쩌면 좋을까. 고질적인, 거대한 틱장애 같기도하고, 어쩌면 그저 신경성인 듯한, 절대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살기, 혹은 갱년기…? 어제처럼 심한 날에는 정말 MRI 라도 찍으러 가볼까 했었다. 이러다 곧 머리에 꽃이라도 꽂아야 하는건 아닐까.


“야, 야, 너는 무슨 신이라도 내리냐? 어째 그렇게 매일 아퍼?”

시어머니는 아침마다 추례하니 일터로 가는 며늘을 탓했다. 집안에서는 훨씬 더 컨디션이 나쁘다. 다섯살이나 어린 그녀의 남편은, 아줌마들은 원래 다 그렇게 나이들어 간다며 면박을 준다. 그래, 지는 아직 창창한 30대지… 어이구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그녀에 비해, 매일 아침 헬스에, 머리 손질, 구색 맞춘 옷 차림까지, 총각처럼 말끔하게 꾸미고 다닌다. 철마다 바뀌는 악세사리며, 번갈아 차야하는 명품 시계들, 웬만한 여자 화장품보다도 비싼 본인의 풀 스킨 세트와 날씨따라 달라져야하는 향수까지. 절대 저 정읍 지나 어디 깡촌 출신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전생에 몇 나라나 구했길래 어디서 저렇게 젊은, 그것도 미남이기까지한 남편을 얻었냐고 했다. 그래, 솔직히 그는… 약간 키 작은 장동건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외모에 자신이 없던 정인의 대학 시절. 다들 제일 예쁠 때라던 그 황금같은 스무살을 책속에서 다 흘려보냈다. 공부만 잘하면 제짝은 나중에 다 만나게 된다는 어르신들 말씀을 믿었다. 좋아하는 선배가 있었지만, 소심한 성격탓에,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 탓에, 자신없는 외모 탓에… 고백 한번 못해보고 그저 바라만 보다 3년을 보냈다. 그나마 함께 공부한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늘 도서관에 같이 머물고, 이러다 어쩌면 잘될수도 있겠다는 꿈에 한껏 부풀었었다. 어느 날 그야말로 눈부신 자태로 나타난, 만화에서나 보던 청순가련형의 긴머리 음대생에게… 그를 빼앗겼다. 강남 어디 비싼 데서 한 것 처럼 - 진짜처럼 가늘게 잘 만들어 낸 쌍꺼풀에 연예인 같이 반듯한 일자 코를 가진, 피아노를 전공하던 하늘하늘한 그녀. 작정하고 나타나 몇번 살살 웃어주자, 단숨에 선배의 혼이 나갔다. 3년의 기다림과 정성도 함께 날아갔다.


선배도 뭔가 미안했는지, 결혼 소식을 전하며 조금은 어색해 했다. 그렇지, 그래야지… 아무 사이도 아닌건 절대 아니었어. 남들은 몰랐겠지만, 요즘 말로 둘이 썸을 타기는 했었지… 처음이자 마지막 썸남 진우 선배, 그리고 그를 빼앗아 두 아이의 돈줄로 전락시킨 만든 그녀, 불쾌하게도 이름까지 예뻤던 음대 여자, 송 솔향. 그들은 수년전에, 정인의 약국 코앞에 먼저 ‘솔향기 약국’ 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우연이었을까, 미련이었을까. 그저 분수에 맞는 적당한 자리를 찾고 있던 중, 조금 낡아 보이긴 해도 딱 사거리 끝에 붙은 이 건물이 맘에 들었다. 다른 가게를 두개나 끼고 있어 세를 받을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정류장이 바로 옆이라 유동 인구가 많다. 마주보고 같은 업종이 있다는 게 좀 꺼림직해도, 어쩐지 그쪽이 곧 망할거라는 쎄한 느낌에 개의치 않았다. 더군다나, 그 경쟁자가 자신을 버린 진우라는 걸 알고나서, 정인은 평생 없던 용기를 내 더더욱 밀어붙였다. 지켜보겠다, 얼마나 잘 사는지…. 똑똑히 봐, 나도 이렇게 잘 살고 있어... 마침내 간단한 내부 수리를 마치고, 간판을 달았다. 벌써 한 사년 전이지만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 약국>

남편은 본인이 나고 자란 고향이나 이름자… 뭔가 자신을 상징하는 이름을 넣고 싶어했고, 그녀는 그저 자신의 이름 중 한 글자이기도 한, ‘정’ 에만 동의 했다. 마침 동네가 강북에 위치한 정릉이기도 하고, 사람에게 정을 주는 약국이란 느낌에 따뜻했다. 무슨 이유였건 간에  ‘정’ 한 글자만 사용했다. 그녀의 이름은 김 정인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넘겨 짚어 ‘정 약사님’을 찾기도 했다. 상관없다. 김이고, 정이고… 약만 팔면 그만이다. 그저 솔향기 약국보다 장사만 잘되면 된다. 매일 아침, 몸이 쑤시고 힘든 그녀를 대신해 남편이 가게 앞을 청소한다. 속사정도 모르면서 괜히 경쟁 약국을 질투하곤 했다. 아마도, 수컷사이의 열등감…?


“솔 형님, 애들 때문에 돈이 많이 들겠어요. 어제만 봐도 뭐, 형수님이 별거별거 다 가르치시던데요? 차안에 악기들이 이만큼씩 쌓여서…”

“그런가요? 저희는 뭐, 기본은 하려구요.”

“아유, 요즘 많이 배운 엄마들이 집에서 그렇게 애들한테 쏟아 붓는다더니, 진짠가봐요. 저희 와이프는 일하느라 바빠서, 애들은 그냥 애들답게 놀게 해요. 그래도 잘 커요.”


수준 봐라… 유치해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 가끔은 내가 못하는 말을 저렇게 대신 해주는게 통쾌하기도 하다. 그래, 묻어가는 인생에 그런거라도 해야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남편 다음으로 또 한가지 잘못 선택한 것이 있다면, 큰 길 쪽으로 나있는 두 짝 짜리 유리 문이다. 남들이 이구동성 다 그랬듯이, 손님 많이 들어오라고 대로쪽으로 문을 냈지만, 도무지 맘에 들지않는다. 요즘들어 더 심하게,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할때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뭘까. 지나가는 차가 많으니 매연 때문인지, 아니면, 세를 주고 있는 치킨 가게의 기름 냄새인가? 그저 막연하게, 직원용으로 만들어 놓은 이 긴 테이블 안쪽에서 건물 밖으로 바로 나갈수 있는 쪽문이라도, 창문이라도, 안되면 정말 작은 구멍이라도 하나 내고 싶었다. 시장통으로 바로 뚫릴, 사실은 아무도 쓰지 않을 못쓰는 문이 되겠지만, 숨통은 트일거다. 어차피 제조실 뒤로 화장실 가는 문이 다 있는데, 뭐하러 건물에 구멍을 내냐며 남편이 반대한다. 괜히 깨고 들어와 도둑질 해간다며, 견적 내어 볼 생각도 않는다. 갑작스레 울리는 전화벨... 급하게 소리를 줄이더니, 약속이 있다며 어깨를 한번 꼭 안아주고 나간다. 건성, 건성… 싸구려 미국 영화를 흉내내는 엉터리 스킨쉽. 매일 있다는 그놈의 약속, 약속, 약속… 나오지도 않은 대학을 들먹이며 동기들과 만난다는 둥, 있지도 않은 사업을 준비한다며 꽁지 빠지게 돌아다닌다. 순전히 그녀의 돈으로 산 신형 외제 세단… 벌레도 눈부셔 실명 할만큼 부담스럽게 번쩍이는 돈 덩어리를 끌고 오늘도 그가 사라진다.


정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이드신 부모님의 늦둥이 외동 딸, 어쩌면 주워 온 게 아닐까 의심받을 만큼 그렇게 어렵사리 얻었다는 무남독녀다. 죽기전에 결혼하는 걸 꼭 봐야겠다던 말씀에 그저 시키는 대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중매장이의 부추김에 서둘러 결혼 했지만, 창창한 미래도 없었고, 아마 학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 까지, 첫 만남에 바로 눈치챘다. 사립학교에서 교사를 하다가 언론 고시에 매진하고 있다 거짓말하던 남자. 연애 한번 해보지못하고 마흔을 바라보던 정인에게, 그리고 연로하신 그녀의 부모님께 온갖 선물 공세와 달콤한 거짓말을 쏟아부었다. 교직은 개뿔… 알면서 속아주었다. 공인중개사 시험조차도 여러번 떨어져 사실상 무직이라는 것도, 늘 직장으로 그녀를 데리러 오던 그 고급 차도 장기 렌트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 다 그녀를 좋아해서 거짓말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대신 한가지, 그녀가 가끔 몹시 아프다거나 소심하고 무서움이 많다는 것을, 씩씩하게, 남자답게, 대범하게 척척 다 받아주었다. 그것 하나면 족하다, 내가 벌면 되니까… 딱 지금처럼만, 주인 아씨 모시는 마당쇠처럼 최선을 다한다면 다른 건 다 눈감아주겠다 마음 먹었다.


결혼을 앞두고 개업을 준비할 때도, 남자는 여전히 백수였다. 오히려 그녀에게, 축의금을 한푼이라도 더 받아야하니, 결혼날까지 절대 회사를 그만 두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제대로 된 친구하나 없어 식장이 휑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시골에 있던 작은 논밭이 잘 팔려서, 갓 상경하신 시부모님과 함께 살 전세 아파트를 얻었다. 현관에는 악귀를 쫒는다며 커다란 십자가를 걸어두셨다. 몸이 약한 ‘돈버는 며느리’ 를 위해 애를 봐주고 살림을 해주신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집을 두개 얻을 형편이 아니라 꾸역꾸역 한집에 대충 엉겨붙어 살았다는 게 맞을 거다. 굳이 그렇게라도 서울에 살아야한다고 모두가 우기는데, 반대 할 힘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불행 반 다행 반으로, 그녀의 부모님이 곁을 떠나셨다. 생각보다 알찬 유산 덕분에, 바로 길건너에 아파트 하나를 더 장만했다. 단순히 공간 문제만은 아니었다. 살 것 같았다. 새벽운동을 갔다오는 길에 남편은 혼자 자기 부모님 댁에 들러 함께 아침을 먹는다. 조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면, 두 분을 모시고 정인의 아파트로 건너 온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맡기고 맘편히 출근 할 수는 것도, 축복이라 생각했다.


사실, 남편이 밖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약국 문을 열어주고, 정류장까지 물을 뿌려 깨끗이 청소하고, 하루종일 밖에서 놀다가 저녁에 들어와 문을 닫고 그녀를 퇴근 시키는 것… 그뿐이다. 그래도 집에서는, 젊어서 죽었다는 시누를 대신해 조카 아이의 학교 문제라든가, 어린 두 아이의 수영, 병원 진료, 부모님과 마트에 가는 것 등, 잡다한 모든 일을 알아서 했다. 크게 불만은 없었다. 손맛 좋은 시어머니가 다 알아서 하시니 반찬 떨어질 일도 없고… 그저 집 안에 유일한 한명, 받은 유산 많고, 월수입 많은 며느리에게 부동산을 늘리자고 조르는 것 만 빼면, 신경 쓸 일은 없었다. 오늘도 아마 남편은 부동산을 구경하다가, 조카가 학교 마칠때를 기다려 병원에 데려갈 거다. 아이는 올해 고등학교를 갔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 선천적인건 아니고, 본인의 선택적 자폐라고 했다. 정인의 결혼 직후부터 지금까지 대학병원 소아 정신과를 다닌지 벌써 몇년이지만, 나아지는 게 없다. 죽은 시누 대신 남편의 호적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법적 보호자가 된 남편을 탓한 적 없다. 그냥 말 한마디 없이 빤히 쳐다보고만 있는 다 큰 여자 아이의 시선이 불편할 뿐이다.


결혼을 코 앞에 둔 어느날, 한복을 가봉하러 잠시 회사에서 나왔다. 점심 시간 딱 한시간밖에 없어 잰 걸음으로 종각역을 지났다. 한눈에 봐도 심하게 정신이 나간 어린 여자가 다가와 삿대질을 했다.

“야 이년아, 니 년이 왜 그걸 못 봐? 아닌거 알면서 왜 할려고 해? 왜!”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해갔다. 정인도 못들은 척, 옆으로 지나려 했다. 미친 여자는 더럽다 못해 아예 문신이라도 된한 것처럼 시커먼 두 손으로 정인의 팔을 움켜쥐었다. 세상 모든 세균을 다 발라놓았을 그 무서운 얼굴로 울음을 터뜨렸다.

“으허헝, 언니, 그 놈하고 결혼 하지마. 아이가 보여, 아이를… 목구멍을 꽉 막았어… 으아아… 정말 나쁜 놈이야…”

아주 많이 불편한 마음으로 회사로 돌아갔다. 급성 위염이라도 걸린 듯, 하루종일 신물이 넘어왔다. 어김없이 퇴근시간에 딱 맞춰 회사 앞에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물었다. 아이가 있냐고… 그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없이, 호적에 하나 있다고 답했다. 젊어서 정신 질환을 앓던 여동생이 가출을 했는데, 찾고보니 아빠가 누군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었다고 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안 아이를 낳았고, 사생아로 출생 신고를 하고 키워보려했지만, 얼마되지않아 여동생이 죽었다. 차마 버릴 수 없어 본인의 호적으로 ‘입양’ 했다고 했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키워주시니, 자신과의 결혼 생활에는 아무 이상 없을거라 약속했다. 그가 떼어온 호적에는 그의 말대로 양녀로 기재되어있었다. 불쌍한 것. 결혼식에서 처음 보게 된 조카는, 그저 엄마를 잃고, 말도 잃은, 가여운 아이였다. 아직은 시부모님들이 젊으시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가지 결혼 전 약속과 달라진게 있다면, 시골에서 키워주시는 대신에 데리고 올라와 함께 산다는 것 뿐…         


또다시 흰 옷의 여인이 찾아온다. 머리에 화려한 보석을 두른 바짝 마른 여자가 맨발로 춤을 춘다. 춥지 않을까... 아직은 한 겨울, 시퍼런 얼음 위를, 희다 못해 파랗게 질린 맨발이 안스럽다. 여자는 고통을 모르는 듯, 음악도 없이, 끊임없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알 수 없는 춤을 춘다. 서서히 지쳐가며, 눈에 띄게 속도가 떨어지고, 팔다리가 축축 늘어진다. 몸이 무겁다… 움직일 수가 없다… 땀방울이 맺히고 숨이 짧아진다… 뭘까… 젊은 여자가 다가와 뚫어져라 바라본다. 한없이 깊은 검은 눈동자 속에 정인의 얼굴이 또렷이 비친다. 한살 두살씩 나이가 들고, 춤추던 젊은 여인은 정인이 되어간다. 한올씩 솟아나는 흰 머리카락이 매두사가 되어 목을 조른다. 온몸을 휘감은 흰옷이 땀에 젖어 얼어붙고, 어깨를 내리 누르도록 무거워진다. 날선 얼음이 된 옷자락에 살점이 베어 나간다. 피가 튄다. 움직일때마다 실톱같은, 송곳같은 얼음은 심장을 둘로 나누고, 쫙 갈라져 활짝 열린 검붉은 고기 덩어리 사이로 쿵쾅쿵쾅… 숨쉬던 근육들이 진득한 피를 머금고 밀려 나온다. 저기 어딘가 깊숙히 묻혀있던 방울이 끝도없이 쏟아진다. 이거였나… 이것 때문에 그렇게 아팠나… 사방으로 핏방울을 털어내며 토해 나온다. 쿵쾅쿵쾅… 짤랑짤랑… 쿵쾅쿵쾅… 짤랑짤랑… 머리가 깨질듯한 방울소리에도 심장은 멈추지 않는다… 죽어간다… 짤랑짤랑… 삐이이익… 짤랑짤랑… 삐이이익… 이쪽 귀에서 저쪽 귀로, 깊숙하게, 태연하게… 고막을 찌른다… 짤랑짤랑… 깨어나자… 짤랑짤랑…


알람이 울린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정인을 내려놓자마자 남편은 차를 몰고 사라졌다. 별써 몇달째 주말마다 저런다. 미리 봐 놓은 땅이 있다며 지방에 ‘출장’ 간다고 했다. 약국 건물은 월세가 잘 들어오니, 그걸 담보로 대출을 받겠단다. 고향인 정읍에서 한참을 내려와 광주 들어오기 바로 전, 외곽으로는 아직 더 오를 빈땅이 남았다며, 담양 근처에 땅을 사겠단다. 겨울 전에 얼른 사야 건물을 짓고, 꽃놀이 철에 맞춰 식당을 오픈 한다고 재촉한다.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서울에서 사는 게 평생 소원이라고 사투리까지 싹 고치고 서울 사람인 척 하던 남자가, 갑자기 애지중지하던 조카의 사립학교와 대학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귀향’하겠다고 한다. 시부모님도 본인들이 아이들을 데려가 키우고, 식당 운영까지 다 해 줄 터이니, 아무 걱정말고 서울에서 약국이나 잘 하란다. 향수병일까, 여자일까. 남편이 나가고, 정인은 바로 손님을 맞았다. 부모님 계실적 부터 알고 지낸 비구니 스님이다. 약국 옆으로 문을 내는 문제를 의논 하려고 일부러 모셨다.


“내셔야지요. 보살님 마음이 편하신대로 하루라도 빨리 고치세요. 근데 안색이 영 안 좋아요. 요즘도 또 그 이상한 꿈 꾸시나봐요?”

용기를 얻었다. 나를 아는, 내 편이 있다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다.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한다. 매번 같은 꿈인데, 왠지 점점 전보다 점점 강해지는 공포와 실제같은 오한, 너무나 진짜같은 피, 방울, 고통… 먼곳을 보며 조용히 듣고 있던 스님이 어렵사리 말문을 연다.

“아무래도, 전에 말씀 드렸던 거기… 한번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뭘 하기에는 조금 늦었지 싶어요.”

여전히 인자하지만 웃음기 사라진 스님의 표정에 속이 답답하다. 정말 그것 뿐일까. 벽을 공사할 업체에 전화를 건다. 하루라도 빨리 공사나 시작하자… 전화가… 버튼이… 갑자기,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며 통제가 되지 않는다. 눈앞이 어두워지는 찰라 반딧불 두마리가 지나가듯, 작은 번개가 치듯, 멀쩡히 뜬 눈 앞에 깔린 어둠을 가르며 무언가 슈웅 지나간다. 작은 지진처럼, 바닥이 흔들렸다. 이건 또 무슨 병일까.


“누나, 잘 있었어?”

땡그랑… 유리 문을 밀고 들어오는 남자… 오랜 학교 후배다. 빛을 등진 그림자 속에 어둠이 사라졌다.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흔들림도 멈췄다. 식은땀은 흐르지만, 괜찮은 척, 웃어본다.

“왠일이야, 여기까지? 총각같이 차려입었네?”

“왜 그래요, 총각이나 마찬가지지? 요 앞에, 솔 약국 잠깐 들렀었어. 진우 형이 일 좀 봐달라고 해서 왔는데, 괜찮대요, 형수 병원 안가도 된다고…“

“다행이네. 너는 어떻게 지내? 이제 자리 잡아야지?”

후배는 행복해 보이던 결혼 생활을 다 접고 일년여째 여행만 다니고 있었다. 마음의 정리가 더 필요한 걸까. 안타까운 녀석.

“계획 없어요. 올해는 또 어디로 가볼까, 맨날 그 생각이지, 뭐.”

“다행이네, 놀아도 돈이 들어오고… 인생 역시 한방이야.”

“어떻게 알아요? 야아, 역시 쪽집게라니까? 얼굴에 써있나? 나 여행가기 전에 주식해 놓은 거, 대박 쳤잖아. 그냥 평생 이러고 놀까봐.”

“쯧쯧, 그 나이부터 그러지 말고, 정신차리고 다시 일 해야지. 좋은 사람도 만나구… 참, 너 그럼, 오늘 여기 좀 봐줄래? 나 잠깐 갈데가 생겨서…”

“그래요, 저녁때 일 끝나면 진우형이랑 한잔 하기로 했는데, 잘 됐네. 근데 뭐야, 이렇게 딱 마주보고… 둘이 딴 맘 먹는 거 아냐, 응? 수상해, 진우형 안그래도 요새 힘든 거 같던데? ”

“와이프랑 연이 다 한거지. 나하고는 애당초 아니었으니까 신경 꺼. 갔다올께.”

“시간되면 누나도 같이 한잔해요. 우리 옛날에는 그렇게 자주 모였잖아.”


한귀로 흘려 들으며 약국을 나섰다. 곁눈으로 슬쩍 솔향기를 훔쳐본다. 진우 선배... 어차피 절대 안될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행복하길 바랬는데… 솔직히 한두번쯤은, 사이가 틀어져 내게 돌아오기를 바란적도 있었지만, 어차피 인연이 아니었다는 부족한 말로 급한대로 위로하며 살았다. 잘 보내고 싶었던 사람. 나쁘지 않게 헤어져, 차라리 친구로, 선배로 가까이에 남길 바랬던 사람. 왜 이렇게 되었을까... 버스를 타고 멀지않은 산자락으로 향하는 내내, 정인은 그녀의 인생을 돌아본다. 부모님은 스님에게 이름을 받았다. 사주가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혀를 놀려 남을 속이는 사악한 팔자라고 했다. 그래서 더욱 바른 사람이 되라고 이름이 바를 정(正), 사람 인(人) 이 되었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놀라신 부모님이 너무 착한 것만 강요하셨던지, 그녀는 늘 지고만 살았다. 평생 누구한테 한마디도 자기 주장을 해보지 못하던 바보… 그에게 제대로 고백만 했어도…


버스는 아리랑 고개를 지나 정인이 사는 돈암동 사거리에 멈췄다. 한번도 자신의 집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남편의 고집으로 둥지를 틀었지만, 망자의 혼이 남아 늘 뒤통수가 으스스하다. 십수년전 이곳에서, 부실하게 지었던 빌라 한채가 통째로 무너지며 여럿이 죽었다. 건설회사는 망하고, 폐허가 된 부지를 경매로 싸게 사들인 건 바로 옆에 있던 개척 교회였다. 교회 돈…? 변두리의 작은 판자촌 교회로 시작해 이제는 무슨 내노라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신전을 차렸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모두 목사 안수를 받거나, 종교학, 교육학을 전공해, 무슨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처럼 요직을 차지하고 ‘회사’를 운영했다. 그 교회 권사가 되신 시어머니의 고집으로 아이들도 그 교회 어린이집에 다닌다. 자랑스러운 얼굴로 찬송가를 부르는 영상이 하루에도 몇개씩 쏟아져 들어온다.


뒷목이 서늘해진다. 어지럽다. 곧 사라질 것 같은 옅은 구름 사이로 하늘을 찌르는 뾰족한 십자가 끝에 흰옷 입은 여자가 춤을 춤다. 하얀 맨발로 떨어질듯, 찔릴듯, 아찔하게 십자가를 감아 돌며 봉춤이라도 추듯, 온갖 교태를 부리며 미소를 흘린다. 눈이 마주친다. 심장이 튀어나올듯이 뛰기 시작하고, 멀미가 난다. 빌라 사고 때 죽은 여자 일까… 내 아파트에 사는 영혼일까… 벗어나야한다... 서둘러 다른 버스로 갈아탄다. 아무리 멀어도, 혼령들 가득한 땅 속 지하철은 탈 수 없다. 의자에 기대어 버틴 한쪽 다리가 심하게 흔들리고 점점 감각을 잃어간다. 이러다가는 곧 쓰러질 것 같다. 땀이 장마철 천장 물 새듯이 주루룩 흐른다. 앞에 앉았던 학생이 화들짝 놀라 자리를 양보한다. 쓰러지듯 덥썩 앉아 눈을 감았다.

스님이 알려주신 연백 보살. 오래 전 도줄제자로 함께 공부했던 동기라고 했다. 스님은 누름굿을 받아 비구니로, 연백 보살은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되었다. 무당이 싫다. 사주란건 없고, 점을 믿지 않으며, 접신 같은 건 다 사기극이다. 나는 약사다. 절대 내 평생 무병이나 신내림 따위는 없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리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무것도 없이 휑한 방에 당황했다. 그 흔한 초나 향도 없다. 티비에서 보던 얼룩덜룩한 병풍이나, 어딘가 널려있어야 할 쌀 한줌, 유치한 작은 종 따위도 보이지 않는다. 앉은뱅이 책상 위를 정리하던 단아한 중년 여인이 돌아본다. 쌍꺼풀 없는 가는 눈에 은근한 화장기가 보인다.  


“아유… 사람을 무슨… 너무들 하네.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숨은 쉬게 해줘야지… 이름으로 누른다고 되나…”

이제 막 들어왔을 뿐인데, 이 사람은 정말 알고 하는 말일까? 그냥 일단 던져보는 걸까… 그래도 주문을 외우거나, 이상한 걸 흔들거나 뿌리거나… 주저리주저리 혼을 쏙 빼놓는 귀신들린 소리는 하지 않는다. 무심히, 천신 쪽은 아닌가보다 생각했다. 그저 조용한 목소리로 사근사근… 깨끗한 크림색 방석에 허리를 곧게 피고 앉아 천천히 얼굴을 살폈다. 이마 위쪽… 어쩌면 천장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도 같다. 팔을 쭉 올렸다가 손가락을 쫙 피면서 천천히 내려온다. 다이아가 박힌 결혼 반지를 끼고있다. 누구와 결혼 했을까? 보통 사람일까?  아니면...?


“본인이 알아서 잘 선택해야지, 뭐… 나중에 후회할 거 같으면 지금 아예 시작을 말고, 아깝잖아요, 공부 많이 했는데…”

쿵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진 것 처럼 말을 잃었다. 못생긴것들이 독하게 공부한다는 조롱을 참아내며 당당히 들어간 약학과, 고시만큼 힘들었던 시험, 약국, 건물, 가정… 모든게 한번에 떠오르며 눈물이 흐른다. 여자는 동정의 한숨을 내쉬고 말을 잇는다.

“보살님, 우리가 손이 두 개 밖에 없는 건 말이에요, 두 개를 다 쥐고 나면, 세 번째는 못 갖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하나를 내려놔야 다른걸 가질 수 있어. 필요없는 건 안가져도 되. 별 거지 같은 걸 다 가지고 있느라 이렇게 힘이 들지. 눈 딱 감고, 버릴건 버려. 그래야 당신이 살아.”


남편일까, 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럼 아이들은…? 아이들을 버릴 수는 없다. 비록 애들 아빠가 더 잘 챙기긴 하지만, 내 아이들이다…

“담양 좋네. 바다 멀지않고, 도시 멀지않고… 음기가 먼저 깔렸지만, 다행히 령이 약해. 크크크… 사실은 보살님 령이 너무 강해서, 그쪽은 찍소리도 못 하는 거야. 에이구, 좋은 게 아니에요, 한이 많아 그렇지. 그래도 뭐, 장사터도 좋고, 신터도 딱이고….”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거부감없이 다 받아들이는 자신이 무서워졌다. 반달모양 보조개가 깊히 패이도록 예쁘게 웃던 연백 보살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시선을 책상 위로 떨군채 멍하니 숨만 쉰다. 마침내 그녀를 바라보는 속눈썹이 젖어있다.

“아이는 미워하지 말아요. 걔 잘못은 아니잖아. 보내. 친엄마한테 가면 다 나아. 평생 귀찮게 할 일도 없고… 그리고, 보살님 남편, 당신 버릴 위인이 못되니까 걱정마.”


점집을 나섰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끔히 재개발 된 무악동, 그 뒷편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선 야트막한 빈 집들… 서대문 번화가라 믿기지 않을 만큼 어색한, 6-70년대에서 멈춰버린 서울의 한 구석. 누군가 부서진 보도블럭 사이로 발목이라도 잡아 끌 것 같은 으스스함에 반 뛰다시피 버스에 올랐다. 비로소 얻은 답에 세상이 밝아졌다. 창밖을 바라보는 마음이 가볍다. 두통도 잊었다. 그래, 버린다. 털고 가자. 영매를 찾았다. 생각보다 일찍 약국으로 돌아와 다짜고짜 후배를 잡아 앉혔다. 피아노라도 치듯, 아니면,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주무르듯, 손가락이 빠르게 파도친다. 그가 보지못하게 등뒤로 감춘다.

“싸게 줄께, 니가 사. 여기 번창해.”

“뜬금없이 왜그래, 쉰다니까. 그리고 어떻게 진우 형 바로 앞에다 차려요, 미안하게.”

“저기 금방 문 닫어. 선배는, 제약회사로 옮길거니까, 잘됬어.”

“어라, 누나… 혹시 뭐 다시 보이는 거야? 설마?”

“그러게… 자꾸 그런다. 이젠 그냥 모실려고. 그러니까 이젠 니꺼다, 이 건물?”


다음 주말, 다같이 담양 땅을 보러갔다. 남편은 그녀의 관심에 들떠 쉬지않고 떠들어댔다. 시부모님도 고향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연신 좋은 말만 하며, 오늘 당장이라도 계약하기를 종용했다. 땅은 넓직하니 나쁘지 않았다. 식당을 하기에도 큰길에서 멀지 않았고, 아마 공사가 끝날 무렵이면, 지금은 부도 때문에 곤란한 건너편 오피스텔도 입주를 시작할거다. 고속도로 때문에 옛 외곽도로들이 망한다지만, 조금 돌아가는 이런 길은 오히려 펜션과 모텔들이 기생하기 좋다. 정인은 남편이 사고 싶다는 땅 옆에 붙은, 북동쪽을 향해 앉은 나즈막한 언덕을 바라보았다. 부동산 업자가 눈치채고 운을 띄운다.

“저게요, 이 동네에 대대로 오래 살던 양반 집 선산이었어요. 자손들이 다 서울 살아서 납골당으로 모신다고 다 치우고 매물로 나왔는데, 솔직히 묘지 자리라서… 그리고 아직 저 꼭대기까지 길이 안 되어 있어요. 차를 여기 이 밑에다 세우고 걸어올라가야되니까, 아직 산다는 사람이 없어요. 뭐만 들어온다면야, 길 내는거는 쉬운데 말이죠. 주차장을 올리자니 솔직히 장사하기에 많이 좁아지고... 어정쩡해요.”


사려는 사람이 없다... 남편은 재수없다며 쳐다도 보지말라고 한다. 못들은 척, 정인은 홀로 발걸음을 옮겨 올라가본다. 그녀를 말리려는 이들이 툴툴거리며 멀찍이 떨어져 따라붙는다.

“아니, 이런 걸 뭐하려고 봐? 바로 옆에 저렇게 좋은 걸 놔두고…”

야트막한 흙길을 따라 올라가자 확 트인 빈터가 나온다. 묘를 옮기기 전에 재를 지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발 아래 남편이 사고 싶어하는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형상이 좋다.

“내려가자, 뭐 나올것 같애.”

어느새 해 떨어질 시간이다. 한순간 공기가 싸늘해졌다. 바람이 비껴가는 소나무 사이로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춤을 춤다. 처음으로… 행복해 보인다. 정인에게 반가운 미소를 보낸다.

“이 묫자리, 내가 살거야. 요대로, 아무것도 건들지 말라고 해. 아래 땅도 사서, 당신은 장사해, 그 여자 데려다가. 이혼은 못해. 애들은 여기 못 올라오게 하고, 난 여기 있을거야.”

“뭐? 무슨 여자? 무슨 소리야? 이걸 뭐한다고 사?”

“건물, 아파트, 다 팔고 내려올거야. 신녀님이 오셨어. 영주님이 여기가 좋으시대.”


영주라는 말에 정인의 손가락이 저절로 올라가 아무도 없는 그늘진 나무숲을 가르켰다. 그리고는, 힘없이 툭… 떨어진다.

“다 잘될거래. 당신 동생이라며? 거짓말 안해. 그렇게 서러웠는데, 진작에 얘기 좀 들어주지, 왜 나한테까지 오게 해? 그게 무슨 병이라고, 정신병원은 왜 집어 넣니?”

비석처럼 굳은 남편이 간신히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

“당신 동생, 영주가 나한테 왔다니까? 다 들었어. 신내림 못받게 할려고 정신병원에 넣어 죽였다며. 니가 사고쳐서 낳아온 애, 괜히 병원에 있는 동생 호적에 올렸다가, 입양인 척 하고 다시 네 호적으로 옮기고… 그러면서 끝까지 착한척은… 평생 안들킬 줄 알았니?”  

처음 내보는 큰 소리… 입이 붙어버린 남편에게 다다다다 풀어놓는다.  

“그리고, 걔 친 엄마, 밥 장사 하겠다는 그 여자 말이야, 좋아, 장사 딱이야. 근데, 너랑은 이제 끝났거든? 같이 일은 하되, 딴 맘 먹지마. 감히 어디서 그 여자랑 다시 살려고, 온가족이 똘똘 뭉쳐서 나한테 거짓말을 해? 꿈 깨고, 애 병이나 고치게, 친엄마한테 보내. 우리 집에서는, 영주님이 화가 많이 나셔서, 평생가도 못 고쳐.”


숨쉬는 것도 잊을 만큼 놀라 멍하니 서있는 시어머니를 돌아보았다.

“그만큼 벌어 드렸으면 됬죠? 애들 좀 계속 봐주세요. 별일 없으면 잠은 집에서 자겠지만, 제가 여기 있다는 거 싫으시면, 애들한테는 말씀 안하셔도 되요. 저도 아직 그거까지는 결정 못하겠어요.”

“너 정말 신이 내린거냐? 우리 영주가 너한테 왔다고? 도대체 언제부터?”

“오래됐어요. 영주님이셔서 다행이에요. 딸이니까 미워하지 마세요.”

“그럼 … 그, 저기 그 뭐냐… 약국은 닫고? 굿을 하나? 아니면, 천도재라도…? 뭐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요, 괜찮아요, 저한테는 다 놓으셨요. 벌써 여기에, 계속 같이 계셨어요.”

정인의 손이, 또한번 의식없이 쑤욱 올라가 이상한 형태를 그리며 머리 위를 휘휘 휘저었다. 시어머니의 손이 벌벌 떨리며 눈물을 닦는다. 남편은 저 멀리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오신을 해드려야지요, 섭섭치않게… 우린 다 가족이니까.”


어둠이 내린다. 한여름인데도 온몸이 춥다. 열이 나는지, 신녀님이 계셔서인지… 달빛도 가려진 희미직한 신터지만, 정인에게는 저기 멀리까지 대낮처럼 훤히 잘 보이는 것 같다. 뒤따라 오는 사람들이 주저주저 하는 동안 그녀 혼자 휘휘저어 산을 내려왔다. 굿청도 지어야하고, 이사도 하려면 한참 걸리겠지. 내일 당장 입석부터 주문 하자…

<정인사 령주 보살>      

구름을 밟으며 흰옷의 여자가 춤을 춘다. 갈래갈래 찢어져 흩어지는 치마자락에 달빛이 부서진다.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