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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Sep 05. 2020

#아들과함께새로움찾기_12

곱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태풍이 두 차례 지나가고

제법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해졌다.

길었던 장마와 태풍, 코로나 19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아프지 않고

씩씩하게 잘 먹어주고 놀아주는 승후에게

참으로 고마운 요즘이다.     


오늘 아침 승후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승후보다 먼저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승후를 안아주어야 하지만

엄마를 찾는 울음소리에 벌떡 일어나

품에 눕혀 얼굴을 쓰다듬어 준다.

     

승후의 컨디션을 물으니 웃는다.

시작이 좋다.

오랜만에 맑게 개인 하늘도 승후처럼 웃는다.     

미소와 함께 시원한 하늘과 맑은 공기가

어서 나와 놀자고 노래를 한다.

     

먼저 일어나 승후의 아침을 준비해놓고

우렁각시처럼 살며시 놓고

내의 미역국에 밥을 주니 한 그릇 뚝딱했다.      

사과를 냉큼 썰어 두어 조각 대령하고

빠른 출근 준비 후 남은 사과를 들고 등원 길에 나선다.




참으로 곱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예전 같았으면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땀을 한 바가지 흘렸을 텐데

단지 밖으로 나가는 순간 몸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아름답다.     


한 손에는 사과를 쥐고서 서로 한입 나누어 먹고

비에 젖은 그네와 시소를 닦으라고 지시한다.

손으로 쓰윽 닦아주었더니 올라타서는 신이나 방방 뛴다.  

   

어린이집에서도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있어

오랜만에 만난 놀이친구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여기저기 눈길 주며 하나하나 손길을 전한다.

    

어느새 더욱 성장했음을 느끼며 멍하니 승후를 바라보다

남은 사과 두 조각 중 한 조각을 나에게 주더니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지시한다.

   

  

공과 사가 명확하다

(사실 나도 사과를 먹고 싶었지만 참고 있었다)

대가를 받았으니 일을 해야지..


유모차에 태워 버스정류장을 지나 풀길 숲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산책이 신이 나는지 유모차 안에서도

발을 동동 차며 한껏 가을 정취를 만끽한다.


주위에 모든 것이 오늘은 어제 같지 않게 여유 있다.     

평소보다 더욱 일찍 등원 길을 마주했고

만나 인사 나누는 모든 존재들 또한

다가오는 청량한 가을바람을 기다린 듯

고요하게 나름의 방식대로 여유를 즐긴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춰

바람에 살며시 인사는 강아지풀을 뽑더니

먼지를 털 듯 내 몸 여기저기에 가져다 놓는다.

처음 보는 행동이라 유심히 관찰을 해보니

아마도 강아지풀과 생김새가 닮은 먼지털이를 이용해

청소를 하는 모습을 어디서 보았던 것 같다.

그 모습이 꽤나 귀엽다

     

소소한 행동에 여유를 주니 웃음이 온다.

“아빠도 승후 옷에 뭍은 먼지를 털어줄게”라고 하자

‘내 몸은 깨끗해요 아빠’라며 도망친다.

“아빠도 씻고 나왔거든!”     


발 길을 돌려 다른 놀이터로 향한다.

분주히 놀이터를 쓸고 계신 경비아저씨의

빗자루를 보더니 뺏을 기세로 달려간다.

이 시간대면 자주 뵙는 선생님이라

당황하지 않으시고 빗자루를 내어주신다.   

   

잠시 승후의 간식으로 준비해온 초콜릿을 나누어 드리고

쉬엄쉬엄 하시라며 달라진 아침 공기를 함께 나눈다.

    

역시 오늘 아침의 주제는 ‘시원해진 아침 풍경’이다.

모두가 공감하듯 아름답게 지금을 표현하고 느끼고 있다.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자리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의 앳된 우정에 그 뒤를 밝게 빛내주는 햇살이 오늘따라 더욱 눈부시다.

     

청소를 마친 승후

(빗자루로 휘이휘이 하더니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다)

다음 시선은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차를 알려주는

경고등이 보이는 곳에 선다.

    

사실 이곳은

며칠 전부터 승후가 애정 하는 자리이다.

미리 아침식사 대용으로 준비해온 김밥이 너겟을

올라오고 내려가는 차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먹는 곳이다.


손도 흔들어주고 차들이 지나다니지 않을 때는

'왜 반짝반짝 경고등이 빛나지 않을까?'

나름 생각하고 기다릴 줄도 안다.


그곳은 나에게도

승후의 식사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공간이다.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승후에게도

등원 시간은 돌아온다.

    

시간을 살피고 눈치를 살핀다.

기상과 동시 지금까지 펼쳐온 승후의 맑은 컨디션을

망치게 할 수는 없다.

슬금슬금 다가가 늑대가 곧 오고 있음을 알린다.

     

“승후야 늑대가 곧 온대 빨리 가야 해”

“삐뽀삐뽀 출동하러 빨리 가자!”     


놀이터에서 스무 걸음이면 충분히 가는

어린이집일 뿐인데

이때가 되면 늘 긴장이 찾아온다.

     

어르고 달래고 품에 안고 겨우 도착한

어린이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나는 그날 아침의 동행길을 평가받는다.     


본인이 먼저 초인종을 누르면

그 날은 정말 즐겁게 놀았고

행복 가득한 아침으로 평가하는데

최근에는 애석하게도 그런 날이 없었다.

     

“띵동” 승후가 먼저 초인종을 눌렀다.


선생님이 나오고 입가에 미소에 번진다.

머리가 땅에 닿을 것처럼 크게 인사도 해준다.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냅다 안으로 뛴다.  

   

나 또한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길수가 없다.

    

오늘 아침 승후의 목에 함께 동행해준

유모차, 사과, 놀이터, 경비아저씨, 초콜릿,

이름 모를 차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승후의 마음을

시원하게 다듬어준 선선한 바람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보여준 하늘과 햇빛

많은 벗들이 우리와 함께 해주었음에 감사하다.  

   

출근길

아내에게 오랜만에

승후의 아침을 담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아침부터 고생했겠어
아니야 오랜만에 나와서 좋았어
좋은 아빠야 당신은   


거짓이 아니라 사랑으로 아껴주고
모두 내주어도 아깝지 않게
매번 땀과 같은 열정으로 태어나는 하루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살아가자
오늘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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