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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월 Dec 20. 2021

운수 좋은 날

퇴근길

당신의 월요일은 안녕하신지.

 

 긴 에스컬레이터를 다 오르자 시원한 밤공기가 폐 깊숙이 들이찬다. 오는 내내 웬일로 지하철은 비어있었고 신호는 움직임과 딱 들어맞았다. 밤늦게 까지 날 괴롭히던 밀려 있던 일들도 속 시원히 해결되었다. 게다가 오늘은 중고 거래에 올려둔 오래간 팔리지 않던 상품들까지 연락이 바쁘다. 오늘 무슨 날이던가.


 다만 일정이 안 맞은 탓에 오늘은 혼자 저녁 식사를 한다. 홀로 식사를 할 때에는 그다지 메뉴를 고민하지 않는 편이다. 호불호가 강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끼니를 채우는 것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다르다. 그동안 눈여겨봐 뒀던 집 근처 설렁탕 집의 문지방을 넘었다. 조그만 가게에 들어선 겉과 같이 많지 않은 테이블이 있고 빈 테이블이 더 많이 보인다. 손님들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위치에 달린 티비에서는 대통령 선거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그리고 그걸 보며 식사하는 손님들은 한 마디씩 거들어댄다. 혼자 먹는 머쓱함을 덜어내기 위해 나도 티비가 잘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몇 명?", "혼자요. 설렁탕 하나 주세요."


 오늘 식사할 곳을  골랐는지 기대를 하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중고 거래 주황색 어플의 알림이 연신 울려댄다. 구매자가 변심을 했나 보다. "그럴  있지. 그만한 사연이 있겠지."  다른 연락이 온다. 같은 내용이다. "그럴  있지. 그만한 사연이 있겠지." 거짓말처럼  다른 연락이 왔다. "..." 입맛이 순간  끊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3건의 거래가  건너갔다. 그리고 때마침 설렁탕이 나왔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설렁탕 집은 깍두기가 맛나야 설렁탕과 어우러지는 법인데, 퉁명스러운 주인장과 닮은 투박하면서 매력이 있다. 깨끗이 뚝배기를 비우고 일어나는 찰나,  다른 알림이 하나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울린다. 이제 내가 구매자가  차례인 듯하다.   설렁탕은  맛이 있다. 푸른 지폐 한 장 못 내서 플라스틱 카드 한 장 내밀었다고 타박을 받을지언정.


더 나은 월요일을 위해.

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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