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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Oct 24. 2024

가을 하늘 공활한데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애국가 1절부터 4절까지 줄줄 외워 시험을 쳤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도 학교에서 애국가 암기 시험을 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학교 운동장에서 애국가 1절~4절까지 부르며, 한껏 힘주어 서 계셨던 교장선생님의 지리한 잔소리 훈화를 몇십 분 듣고 서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 잔소리 훈화 말씀은 마이크를 뚫고 나옴과 동시에 하늘로 사라졌고,

그 대신 나는 애국가를 4절까지 읊조리고 서 있곤 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잔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애국가를 부르는 게 나았었을 그 시절 그런 기억이 있다.

그 덕분인지, 이 가을의 하늘을 쳐다보면 가끔 애국가 3절의 첫마디가 떠오른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그 어린 시절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부르고 외웠던 애국가였다.

신비한 구름으로 가득 덮여있던 하늘

며칠 전 아침의 하늘

분명 가을 하늘 공활하고 높고 구름이 없다 했거늘,

그날 아침 내 머리 위의 하늘은 높되, 마치 하늘길이 열린듯한 신비한 구름의 모양으로 온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저 너머 마치 손 하트를 만들어 놓은 듯한 모양도 보인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 신비에 감탄했던 아침이었다. 내가 사는 이곳 부산, 해운대는 바닷가라 그런지 날씨 변화에 따라 해무도 자주 끼고 바닷가 주변으로 아름다운 연분홍빛 하늘로 가끔 물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 특이한 모양의 구름이 자주 걸리곤 한다.


너도 나도 폰을 꺼내어 하늘을 찍었다.

이 신비로운 자연의 찰나를 무한의 시공간에 저장해 두고 오래도록 보고픈 마음이었리라.


한 시간쯤 지났을까.

출근길 하늘을 다시 보니 그 신비로웠던 구름은 사라지고 맑고 깨끗한 하늘만이 내 머리 위에 얹혀있었다.

우리가 하도 '가을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라고 노래를 불러서 그랬을까,  그 신기했던 구름들은 미안했던지 서둘러 도망가듯 사라져 버린 듯했다.  

조금 더 오래 많은 사람들이 봤었으면 좋았을 순간이었는데...

나의 폰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사진을 보니 찍어두길 잘했다 싶어 나의 SNS에 함께 공유했다.

그리고 구름 없는 맑고 높은 하늘을 보며 애국가의 한 소절을 읊어본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이제는 더 이상 애국가를 부르며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지 않아도 될 나이에

이제야 나는 가을 하늘의 그 높음과 공활함을 깨닫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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