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의 여자 등급표를 본 적이 있는가? 실제로 해당 회사에서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인터넷에 꽤 많이 돌아다니는 표는 많이들 봤을 것이다. 그곳에서 여성과 남성의 기준표를 유심히보면 미묘하게 다른점이 있다. 물론 상위랭크가 되기는 남녀성별 관계없이 정말 어려우나, 여자들의 경우, 그 상급으로 분류되려면 자신뿐만 아니라 집안과 백도 우수해야한다는 점이다. 정확히 아버지의 사회적 신분이 굉장히 높아야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쉽게도 2030대 동료들이 유년시절 모두 경험한 90년대 IMF의 차디찬 폭풍을 견딘 집이라면, 가장의 사회적 성취가 슬프게도 또 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 조건이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대다수의 여성들이 최고 등급은 어렵고, 최대 중상위 정도 레벨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집안에 할아버지가 다 된 가장을 채찍질해서 그의 사회적 신분을 높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현실을 우선 받아들이면, 일단 자신을 미친듯이 담금질해서 B+ 급까지는 끌어올릴 수는 있겠다. 좋은 직업과 직장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그 이후가 또 막막하다. 대체 B급 언저리로, 원하는 훌륭한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하는 것일까. 일단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러운 이성의 만남이 더 사라져가기에, 그래서 결국에는 결혼정보업체밖에 없나 하는 비극적인 생각이 든다. 그런데 돈을 내고 결혼을 매칭해주는 회사에서도, 자신을 좋은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충분한 등급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니. 현실은 이토록 냉혹하다.
B+, 좋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슬프게도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장소나 통로가 없어진다. 같은 직장내 이성들에게는 점점 동료애와 인간혐오가 동시에 자라나며, 월드와이드웹을 통해 가입한 사회인 등산 동아리에서도 남성분들은 하산 후 동동주에 파전 친구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만나서 아무렇게나 살 수 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열심히 살았으나 A급이 되지 못한 인생도 서러운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짝을 만나는 걸 대충하라니. 그럴 수 없다. 그리고 괜히 흐르는 시간에 조바심내 대강 상대를 선택하게 되면, 혼인율은 커녕, 이혼율에 톡톡한 기여를 할 수 있을것 같아 몸서리가 쳐진다.
때로는 사리판단이 분명하고 마음이 얼음장 같은 지인들이 본인의 눈이 너무 높다고 지적도 한다. 눈을 낮추면 이성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눈이 자기 마음처럼 쉽게 낮춰지던가. 직장에서 인간관계에 구르고 굴러 고생할수록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점점 더 까탈스러워지던 것을 어찌하면 좋을까. 차라리 사회를 겪지 못했던 학생신분이었을때가 눈이 훨씬 더 낮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연애와 결혼은 쌍방인데, 자신이 갑자기 계몽하며 눈을 낮춘다고 해서 상대 이성이 뜬금없이 본인을 봐주기라도 할까? 그건 착각이다. 단순히 눈을 낮추는 것은 개념적으로 이성의 풀 자체를 넓힐 수는 있겠으나, 자신에게 맞는 좋은 이성을 찾는데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인의 디폴트인 성실함을 바탕으로, B+급에 아둥바둥 올라오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딱히 부질이 없다고 느껴지는건 단순히 기우일까? 게다가 아직도 인생의 관문이 왜 이렇게 많이 남았고, 이 장애물을 자신이 가진 등급으로 충분히 넘을 수 있을지 가끔은 잘 모르겠다. 그치만 오늘 지하철을 기다리며 7-2 앞 큼지막한 결혼정보회사 광고를 빤히 노려보았다. 그리고 솔직히 이제는 지갑을 열때인가 고민도 좀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래도 자만추! 소개팅을 나가도 이제 점점 더 선에 가까워지는 듯한 나이가 되었는데, 왜 아직도 철없이 진실한 사랑을 이토록 믿고 싶은건지. B+ 여도 알콩달콩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