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중요한 자기소개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에서 자기소개,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자기소개. 두 가지는 일견 자기 자신과 그 삶의 궤적을 알린다는 점에서 비슷하나, 면접과 데이트라는 형태의 이질성,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가 다르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한번 이 기회에 자기소개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각각의 케이스에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까?
먼저 업무상 자기소개는 사실 자기자신이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시로 취업면접을 생각하면 된다. 이때는 사측이 원하는 모범답안이 있고, 그 답변에 대한 근거로 자신의 스펙과 업무경험을 일부 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소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본인을 표현하기보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의 틀에 주로 자신의 인생을 끼워 맞추게 된다. 특히 그 과정에서 수십가지 면접질문의 의도와 종류를 미리 분석하고, 로봇같이 달달 답변을 외운다. 또 그 와중에 이 모든건 각본 없는 드라마인 것처럼, 아카데미 수상에 필적할 혼신의 연기까지 구사해야한다. 구직자의 성공여부는 이 훈련이 얼마나 잘 되어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밥을 먹게 해 줄 일자리를 위해선, 결국 몇 안되는 TO를 남들보다 더 잘 비집고 들어가 경쟁에서 승리해야하니까.
반대로 연애에서 자기소개는 조금 더 자기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게 된다. 예시로 소개팅이나 선이 있다. 물론 보편 다수의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한, 약간의 정형화된 매력공식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모든 이들의 연애진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어떨때는 자기 자신의 문제 많고, 굴곡 많은 인생이 특정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남성들에게 반전매력으로 더 어필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적취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모든 연애에서 대화와 질문의 의도는 이성과 자기 자신의 핏을 확인하는 것이다. 즉, 상대 이성의 실제 성격과 장단점, 육체적인 솔직한 취향을 속속들이 알아감으로써, 자신과 맞는 사람인지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개팅에서 파스타를 먹는 관계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자취방에서 같이 라면을 끓여먹는 관계로 발전할 것인지가 바로 여기에 달려있다.
많은 이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취업면접과 같은 공식적이고 사회적인 면접을 주로 반복하고 살아온다. 본인은 어릴때는 부모님의 기대, 학창시절에는 진학, 취준기간에는 안정된 직업을 위해 모범답안을 외우고, 그에 맞춰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아 탐구에 완전히 실패하여, 진짜 자신이 누군지는 잘 몰랐지만, 그에 대해 안타까운 감정은 들지 않았다. 면접 경쟁의 승자가 되려면, 자기 자신보다 아름다운 북극성, 즉 기준점을 향해 자신을 깎고 맞추는게 더 효율적인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력서에 주루루룩 나열할 수 있는 잘 포장된 이력을 쓰기 위해, 항상 남들이 원하는 자기 자신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그리고 A4 용지에 꽉꽉 잘 프린트된 이력이 진정한 자신을 보여준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했던 면접에 직면했다. 바로 일이 아닌 사랑의 인터뷰. 이십대 후반에 만났던 남자는 질문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미 수많은 면접을 거쳐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는 본인은,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사회적인 면접에 있어 프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면접관의 깐깐함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항상 그의 물음은 취미와 직업, 특기 등, 공식적인 소개팅용 수박겉핥기 질문을 넘어서 그 기저에 깔려있는 이면의 생각을 향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수박화채를 좋아한다고 하면, 왜 다른 음식 말고 하필 수박화채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지 굳이 물어보는 식이었다. 뭘 좋아하면 그에 대해 맞장구나 칠 것이지. 왜 그는 굳이 이런 질문을 해대는 건지. 아마도 그는 이런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눈 앞의 상대가 사랑의 반쪽이 맞을지 예리하게 판가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심지어 그는 마치 소크라테스에 빙의한 것처럼, 데이트하는 매번 치열한 산파법을 구사했다. 그는 자주 상대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가장 슬펐던 것들에 대하여 단계적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매번 사태가 이렇다 보니 그 앞에서 일반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평생 갈고닦은 대화스킬과 자기소개 모범답안은 잘 통하지 않았고, 이 연애면접에 통과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깨닫게 되었다. 즉, 그의 질문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먼저 철저히 예습복습하는 것이 필수였다. 사회에서 경험했듯 원활한 티키타카는 결국 준비성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와의 대화를 위해 사실 자신도 몰라서 묻어두었던, 본질적인 자신에 대한 고민이 어영부영 시작된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남자의 사랑면접은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을 조금 바꿔버렸다. 질문을 통해 본연의 자신을 좀 더 이해하게 되면서, 조금씩 자신에게 솔직해졌달까. 사실 그놈의 수박화채를 좋아하는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어릴때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꿉꿉한 장마철에 자주 만들어주셨고, 20대 초반 미팅에서 만났던 남자가 잘 만든다고 설레발쳤었던 경험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설프게 궁예처럼 추리해보면 본인은 주변인의 선호를 자신의 선호로 내면화할만큼, 사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이 발견은 그의 집요한 질문 공격 때문에 카페에서 끙끙 고민하다가 엉성하게 도출되었지만, 결국 본질적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 외에도, 싫어하는 것, 슬펐던 것 등, 보다 본질적인 자신을 구성하는 여러 감정의 이유들이 그의 물음을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구직면접에서 꾸며낸 성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진짜 날것의 자신이 말이다.
이렇게 타인과 연애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고민은 놀랍게도 진짜, 내면의 자신을 조금씩 끌어냈다. 그리고 사실 꼭 그 남자뿐만이 아니라, 알고보면 인생에서 스쳐지나갔던 수많은 연애들이 본연의 자기탐구에 차곡차곡 기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언제나 그들은 상대에 본질에 대해 진심으로 질문하고 또 경청해주었으니까. 물론 그 대상이 되었던 남성분들은 연애관계라는 어쩔 수 없는 덫에 묶여, 이성의 시시콜콜하고 복잡한 내면의 블랙홀을 접하며 충분히 고통을 받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연애라는 쌍방의 평등한 목적, 그들이 상대이성과의 핏 확인을 위해 행동한 덕에, 조금 더 본질에 가까워진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사랑이 완성되었는지, 안되었는지 그게 대수인가. 그 연애들이 있었기에 진정한 자신을 그래도 약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랑의 인터뷰어님들, 연애해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조금 더 자신다운 자기소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