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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Jun 06. 2022

요양원 가는 길에는 깊은 우물이 있다

 '이젠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어머니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이제 곧 집에서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 오겠구나 짐작하던 어느 날,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이 말이 툭 튀어나오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분명 머릿속에는 '제가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지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죠?' 정도의 기도가 맴돌고 있었는데... 뇌를 거치지 않고도 말이 나올 수 있는 건가?

 놀라움과 당혹감이 조금 걷히자  펑펑 쏟아진 눈물 웅덩이에 내 마음이 보였다.


 '더 못하겠어요, 더 안 하고 싶어요, 이제.. 싫어요!'

 '그래도 아직은 돌봐드릴 만하잖아?'

 생각은  당위를, 마음은  욕구를 제각기 대변하기 바빴다.


 올해 내 나이 쉰.

 살면서 선택의 순간이 오면 대부분 욕구보다 당위를 우선에 놓아왔다.

 내가 책임감이 강해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내 욕구에 책임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 왔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욕구를 알아채고 실현하는 일이 서툴다.   

 그런데 이번엔 욕망의 구덩이에서 솟구쳐 오른 내 마음 한 자락을 붙들어 쥐고 행여 놓칠세라 더욱 힘을 주어 고쳐 잡고 또 고쳐 잡았다.

 그리고 이내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속에 들어앉은 나를 발견했다.




 어머니가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 상태를 전제로, 주간보호센터에서 더 이상 케어하기 어렵다고 하거나 내가 집에서 대소변 문제를 감당할 수 없게 될 때를 시설입소 시점으로 막연히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고 센터에서 이런저런 소동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요양보호 선생님들이 아직은 돌볼 수 있다고 하시고,  24시간 기저귀를 착용하면서 대소변 문제도 어느 정도 감당을 할 수 있었으니 내가 설정해둔 시설입소 조건을 충족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왜 그런 기도가 터져 나왔을까..


 그즈음 어머니는 팬티형 기저귀를 팬티와 생리대의 개념으로 생각하는지 자꾸 종이 솜을 뜯어서 소복소복 쌓아두고(장롱 속이나 테이블 위 또는 화장대 서랍 속에 고이 모아두셨다) 겉에 방수 팬티만 남게 해서 착용하고 계시곤 했다. 그러니 맨살에 솜과 흡습제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얼마나 가렵겠는가! 당신도 모르게 상처가 날 정도로 긁었는데 종일 기저귀를 착용해야 하니 얼른 낫지 않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한 번은 어머니를 씻겨드리고 젖은 욕실 바닥을 내딛다가 미끌~넘어질 뻔한 적이 있다. 자세히 보니 작은 겔 알갱이들이 주범이었다. 자기 몸의 몇 백배나 되는 물기를 가둘 수 있다는 고 흡습성 수지-SAP라는 마법의 알갱이들.

 그날은 화장실에서 기저귀 해체작업을 하셨나 보다.  투명하고 말랑말랑한 겔이 물을 잔뜩 머금은 채 퉁퉁 불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하수구가 막힐까 봐(불과 얼마 전에 실변으로 엉망이 된 욕실을 물로 씻어내다가 하수구가 막히고 아래층에 물이 새는 사고가 있었다) 일일이 닦아내야 했는데 힘을 주면 으깨져버려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소변이 묻은 옷이나 변기를 치우면서도 내가 생각보다 비위가 강하구나 생각했었는데 냄새도 없고 심지어 반짝반짝 크리스털 구슬같이 예쁜 겔 알갱이를 닦아내는데 화가 치밀었다.


 '아, 못하겠다 이건.'

 내가 충분히 돌볼 수 있다고 자신하던 마음에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모래같이 마른 감정이 침략하듯 파고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사건이 시작인지 끝인지 아무튼 내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여긴 전환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매일 아침, 짐짓 하이 레벨로 '굿모닝~ 좋은 아침이에요, 어머니!'라고 목청껏 노래하듯 건네던 아침인사는 실종됐고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 한 마디 없이 어머니 방에 들어가 밤사이 흥건해진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식사를 챙기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센터에 보내고, 해질 무렵 다시 맞이하고, 나란히 앉아 침묵하며 저녁식사를 하고, 씻기고, 약을 먹이고, 즐겨 시청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찾아서 켜고 침대에 눕히고, 늦은 밤 잠이 든 것을 확인하면 텔레비전과 전등을 끄는 일을 마치 기계처럼 수행했다.


 그것은 돌봄이 아니라 '관리'였다.


 그렇게 메마른 관리자로 살고 있다가 그날의 기도로 나는 나를 보게 되었고

 무엇에 쫓기듯 숙고의 시간도 갖지 않은 채 남편에게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싶다고 통보했다.

 해외근무 중이던 남편이 휴가를 왔다가 출국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고 휴가기간 동안 아직은 거뜬히 집에서 돌볼 수 있다고 장담하던 내가 난데없이 꺼낸 말을 남편은 조용히 듣더니 그러자고 했다. 멀리서 아무것도 도울 수 없는 형편이니 내 뜻에 맡기겠다고 하는 남편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가족을 떠나 혼자 고생하고 있는 남편의 걱정을 덜어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 진심으로.

 그런데 남편의 힘없는 목소리가 자꾸 귓전에 맴돌면서  마치 나를 원망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남편이 나보다 더 격렬히 이제 그만 요양원에 보낼 때가 되었다고 힘주어 말해주지 않아서, 결국 내가 악역을 맡게 된 것 같아서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내 마음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돌보다가 당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기 전에 요양원에 보내는 게 좋겠어'라고 말하던 남편에게 아직은 괜찮다고 한 건 정작 나였으면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감정이란 말인가!

 우리 부모님은 요양원보다 집에서 돌보려고 갖은 애를 쓰면서, 홀로 남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게 된 아들의 심정을 헤아리기는커녕 변덕스러운 내 마음만 위로받으려 하다니...

 내가 자초해서 파내려 간 어둡고 축축한 우물 바닥에 주저앉아 어머니의 치매 발병 후 가장 어려운 숙제를 붙들고 끙끙대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더 이상 못하겠니?

 너는 크리스천이잖아! 예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 그러면 그 어떤 기도보다 신속하게 응답해주실 거야! 긍휼의 마음을 구할 때마다 받은 은혜를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하루 중 네가 돌봐드리는 시간은 고작 아침 1시간, 저녁 2시간 정도인데 그것도 안 되겠니?

 예수님이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주신다 해도 글쎄.. 그것이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건 아니지 않니?


 안다. 내가 구할 것은 긍휼의 마음이며 믿고 바라면 주실 것을. 그리고 그 어떤 선택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기도할 수 없었다. 내 선택을 바꿀 마음이 없으니까.

 그러면서도 혹시나 흔쾌히 허락하신다는 증거로 내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주시진 않을까 기대하며 여러 루트로 매일 보고 듣는 묵상 말씀에 더욱 집중했다.  그러나 모두 한결같이 예수의 마음으로 살 것을 당부하는 말씀뿐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이라면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으실 것 같아 근심은 깊어져 갔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답답해지는 괴로움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토로하고 징징거리기를 석 달 여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예수님이 기뻐하지 않을 선택을 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기대한다고? 

 이쯤은 감수해야지, 안 그래?


 그랬다. 마음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이 철없는 아이처럼 막무가내로 생떼를 부리고 있었다.

 부 끄 럽 다...




 지난겨울, 요양원 입소를 결심한 직후 바로 실행했다면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봄날로 입소를 미루면서 생긴 알량한 양심의 시간은 내 선택을 번복하기에도, 그것을 자책하기에도 매우 길었지만 그 시간도 이제는 어김없이 과거가 되었고 어머니는 요양원 생활에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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