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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Feb 01. 2022

내가 원했던 설날은 이게 아닌데

갑자기 닥친 조용하고 한가한 설날 풍경

 중부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지더니 대설까진 아니지만 밤사이 내린 눈으로 제법 하얀 설날을 맞았다.

 벌써 3년째 코로나로 모이기가 어려웠어도 이번 설처럼 조용한 명절은 내 평생 처~~ 음이다.(어머니 버전^^)

 남편은 해외근무 중이고 제대한 아들은 일찌감치 학교 앞에 자취방을 구해 나갔고(며칠 전 만난 친구가 확진이 되어서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느라 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딸은 밤을 새우고 온라인 세상을 주름잡다가 꿈나라로 영역을 확장 중이니, 센터에 가시지 않은(일요일과 연중 2회-설, 추석 당일만 휴일이다) 어머니와 나만 조용히 떡국을 나눠먹고 각자 위치로! 상태이다.

 그나마 어머니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인지가 없으시니 세상 설을 혼자 맞은 기분이다.

 친정은 멀기도 하지만 어머니를 돌봐야 하니 갈 수도 없고 친척들도 사정이 있어 방문하지 못했다.

 

 양은 줄였지만 갈비찜, 동태전, 깻잎전, 고기완자, 어포 튀김, 김부각, 고추부각, 나물 몇 가지에 언니에게 나눔 받은 탕국 그리고 한과와 금귤 정과(딸이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만들어 입에 넣기도 아까울 만큼 예쁘고 맛있다)까지 명절 음식은 제법 구색을 맞추어 준비했다.

 그런데 함께 시끌벅적 나눌 사람이 없으니 차리기도 전에 다 식어버리는 느낌이다.ㅜㅜ


 명절이 되면 몇 끼 상을 차릴지, 몇 명분을 준비할지 미리 계획하고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치우고 하는 과정이 대체로 힘들었다. 물론 즐거움도 느꼈지만 항상 미루고 싶은 숙제를 하는 기분이었고 명절이 끝나면 후련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면서 좀 조용하고 한가한 명절을 꿈꾸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딱! 그 원하던 설날이 아닌가!

 그러니 야호! 신나야 하는데 이 기분 뭐지?

 쓸쓸한가?

 서운한가?

 따분한가?

 음... 조금씩 그렇긴 해도 딱히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어색한가?

 그렇다! 확실히 어색하다. 내가 너무 추상적으로 꿈꾸었나?

 바쁘고 피곤하고 소모적인 명절이 싫어서 마냥 조용하기만을 바란 나머지 막상 열린 시간을 어떻게 쓸지 아무런 청사진이 없었다.


 문득 지금까지의 내 인생도 명절 준비처럼 정신없이 치뤄내기 바빴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곧 어머니와 아이들 돌봄에서 자유로워지면 그 어색한 삶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구체적인 고민을 시작해야겠다.

 일단 어머니랑 둘이 효도 윷놀이 한 판 하고!^^

방금 윷가락을 던지고도 '내 차례는 언제냐?'라고 묻는 어머니에게 한 번 더 던지게 하는 아량이라곤 없었던 냉혹한 승부의 세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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