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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Nov 18. 2023

올 것이 왔다!

치매도 육아처럼 32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연인도 아닌 시어머니를 상대로 이런 간절함이라니...

706호와 1203호를 오가며 유지했던 고부간의 사랑은 이제 끝났다 ㅜㅜ



 같은 아파트, 같은 동.

 라인은 다르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서 어머니와 나는 독립생활이 담보된 이웃살이를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주인이 따로 있는 집에서 살고 있던 우리의 동행은 우리 맘대로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이사 오고 3년째 맞은 겨울의 끄트머리에 우리 집주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집을 팔게 되었으니 미안하지만 집을 비워달라고...

 집주인이 해외에 있어서 8년째 이사 걱정 없이 살고 있던 터라 어머니집 계약상황이 변동될까 봐 걱정했지, 우리 집을 비우게 될 줄이야...


 이제 어쩐다?


 같은 동에 매물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단골 부동산중개인은 우리 동에 나와 있는 집이 없을 뿐 아니라 그새 전세가가 또 올랐다는 슬픈 소식만 전해주었다.

 다른 동으로 구해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보다 더 멀어지면 어머니 돌보는데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집 전세계약이 끝나는 1년 후에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라 더욱 신중해야 했다.

 

 주어진 시간은 두어 달 남짓.

 어디로 이사할지 결정하고 이삿짐 업체와 청소업체를 선정하고 이전설치가 필요한 것들 점검해서 연락하고 어쩌고 하기에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졌다.

 실은 이사할 집만 정하고 나면 나머지 일들이야 한 두 번 해본 것도 아니니 차분히 정리해서 며칠 안에 끝낼 수 있는데도 그냥 내 마음은 어수선하고 그저 바쁘기만 했다.


 돌이켜보니 그 마음 한가운데에 '아, 올 것이 왔구나!'라는 예감이 커~~~~~다랗게 자리 잡는 바람에 다른 일들은 산만하기 짝이 없이 어지럽게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와 함께 살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전까지 일관되게 빗나가기만 했던 내 예감이 그땐 딱 들어맞았다.

 결혼 생활 19년간의 막연한 걱정에 종지부를 찍고 합가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으니.


  남편은 어머니와의 합가를 조금 더 지연하고자 이런저런 경우에 대비한 여러 가지 방법을 A4용지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나에게 내밀었다.

 각각의 경우가 장단점이 너무 명확해서 그중 하나를 선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어렵사리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마지막 선택의 단계에 이르렀다.


 어머니집으로 살림을 합친다  

VS  더 큰 집으로 다 함께 이사한다


 <어머니집으로 살림을 합칠 경우>

 그 해 대학입학을 앞둔 아들은 기숙사생활을 하기로 해서 우리 식구는 우리 부부와 고3이 되는 딸 그리고 강아지. 합이 넷.

 가원이 1 빠지니 그 자리에 어머니가 들어오시면 인원수에서 달라질 것이 없었다. 1인당 공간점유율만 따진다면 말이다.

 그러니 어머니댁으로 이사해도 1년은 그럭저럭 참을만하지 않을까?

 주거비용을 반으로 줄일 수 있기도 하고,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그땐 등교거리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 좀 더 변두리로 가서 내 집 마련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머니가 당신의 집에 갑자기 침범해 왔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매일매일 비좁아서 못살겠다고 너희 집에 가라고 하시면? 게다가 화장실도 하나인데...


 <더 큰 집으로 다 함께 이사한다>

 고3이 되는 딸이 쾌적한 공간에서 수험생활을 할 수 있겠지?

 가재도구를 모조리 없애지 않아도 되겠구나.

 어머니도 큰 방을 쓰시도록 하면 텔레비전을 방에서 시청할 수 있겠고 그러면 주방과 거실에서 어머니의 간섭 없이 집안일을 할 수 있겠네?

 아, 그런데 어머니집과 우리 집을 동시에 이사하려면 보통 문제가 아니겠군.

 그보다 두 집 전세금을 몽땅 합쳐도 모자라는 비용은 어쩌지?

 어머니가 전세계약이 남아 있는 상황이니 다음 세입자를 들이는 비용도 필요한데...

  

고민은 깊어졌지만 내 의견은 역시 예감대로 어머니집에서 사는 쪽으로 기울었다.

다른 가족들은 내 의견에 따르기로 했으니 방망이를 탕탕 치며 결정만 하면 되었다.

그때, 우리 집 가원도 아닌 언니들이 나섰다. (사실 내 선택권엔 항상 언니들의 몫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잘 생각해 봐! 고3 스트레스가 클 텐데 비좁은 집에서, 그것도 할머니한테 시달리면 수험생활에 분명 지장이 있을 거야. 화장실은 또 어쩌려고? 어머니가 실금을 하게 되면 수습시간도 길어질 텐데... 강아지는? 어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밤낮없이 짖을 텐데 괜찮겠어? 당장 비용을 아끼는 것보다는 합가 해서 생길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아. 전세보증금이 모자라면 마련해 줄 수도 있어."


 나만 양보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고3이 되는 딸이 걱정이 됐다. 가뜩이나 어머니의 질문공세나 간섭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었으니...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는 강아지였다.

 유기견의 특성이기도 하다지만 유독 딸에게만 애착심을 갖고 다른 가족들이 딸의 방에 가면 무섭게 짖었다. 심지어 그 방 앞에 있는 화장실만 가려해도 뛰어나와서 왈! 왈! 왈!


 그건 내 마음만 다스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최종 선택은,

 

"더 큰 집으로 다 함께 이사한다!"



P.S 다시 생각해도 언니들 말 듣기를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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