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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Jan 11. 2024

문단속 마음단속

치매도 육아처럼 34

 새로 이사한 동은 큰길 옆이었고 바로 앞에 샛문이 나있어서 우리야 드나들기가 편해졌지만 어머니에겐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위치였다.

 사실 합가를 준비하며 이 부분까지 만족하는 집을 구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가족구성원의 동선을 고려해서 이사 시기와 재정에 부합하는 집을 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으니까...


 '만약 그것을 염두에 두고 집을 구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치매노인에게 안전한 곳이 있기나 하고? !'


 설사 고르고 골라 안전한 자리를 찾는다 한들 치매환자가 그곳에 가만히 머물러 있을 때나 안전이 보장되는 것. 그러니 숨 고를 겨를도 없이 서둘러 다음 과제로 넘어가 치매환자가 안전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감옥이 아니고야 탈출구는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고 병세에 따라 더욱 고도화된 안전장치가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으니 섣부른 단정이라 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한참 지난 일을 복기하는 와중에 이토록 불온하게 혀까지 차며 속단하다니... 마치 숙제를 가득 내 준 선생님을 향해 아직 하지도 않은 숙제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아우성치는 학생 같은 마음이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나 보다.    


 좌우지간 합가를 할 즈음 가장 염려하던 문제는 어머니의 외출이었다.


 홀로 된 후부터 만들어진 어머니의 오랜 습관이 치매발병 후에도 줄곧 이어진 덕분에 저녁외출은 하지 않았지만 이른 아침에는 거리낌 없이 외출을 감행하곤 해서 가슴을 쓸어내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그동안은 익숙한 환경과 이웃들, 경비아저씨 덕분에 무탈했지만 이사한 낯선 곳에서의 외출은 무방비 그 자체였으므로 외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특히, 남편은 일찌감치 출근하고 없고 내가 차로 딸의 등교를 마치고 올 때까지 어머니가 집에 혼자 있게 되는 아침 40분여의 시간, 그때의 외출(어쩌면 탈출 ㅜ)에 총력을 다해 대비해야 했다.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지만 운전하면서 쉬지 않고 들여다볼 수가 없으니 실효성이 없었고, 현관문에 잠금장치(주간보호센터의 출입문처럼 안에서 비밀번호를 눌러야 나갈 수 있는 시스템)가 있으면 좋을 텐데 세입자의 처지로 허락 없이 설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얼마간은 아침마다 초긴장 상태로 그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문 열림 센서"라는 신박한 아이템을 찾아냈다.

 작은 기계를 양면테이프로 현관문에 간단히 설치하고 블루투스로 연결하는 제품인데 문이 열리면 센서가 작동해서 내 핸드폰으로 전송되어 알람이 울린다고 했다.

 내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그런 일이 생기면 바로 경비아저씨께 전화를 드려서 살펴봐 달라고 부탁을 하면 되었다.( 실제로 그렇게 어머니를 지킨 일이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결국 경비아저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일이라 아저씨가 경비실을 비우고 먼 곳에서 업무중일 경우 100퍼센트 성공을 보장할 수 없었다. 더구나 아침엔 경비업무가 여간 바쁜 게 아닌데 사사로운 부탁으로 힘들게 해서도 안되었고.


 그래도 궁하면 통한다고 하더니, 어머니 방에 설치한 인터넷전화를 활용할 꾀를 냈다.

 차에서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방에 계신지 확인도 하고, 통화 상태를 되도록 오래 유지하며 어머니가 방에 계속 머무르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여보세요?"

 "어머니 저예요. 00이 학교 데려다주고 들어갈 테니 그 사이에 식사하고 텔레비전 보고 계세요~."

 "응~ 알았어. 운전 조심해!"

 "네!"


 전화를 끊고 2-3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

 "어머니~ 식사 다 하셨어요?"

 "세수하셨어요?"

 "옷은 뭐 입으셨어요?"

 "지금 텔레비전에 무슨 방송하고 있어요?"

 "어제 하던 뜨개질 마무리 하셨어요?"

 "아까 찾던 부채는 찾으셨어요?"


 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면 어머니도 대답을 하시며 외출할 생각을 못하고 단기활동에 집중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어떤 날은  라디오방송 디제이처럼 전화로 어머니의 노래를 청해 듣기도 했다.


 "어머니, 오늘 센터에서 노래대회한다고 하던데 어머니도 참여하실 거죠? 무슨 노래하실래요?"

 "어머 그래? 그럼 나도 나가야지! 다들 내가 노래하면 꾀꼬리 같다나? 호호호. 그런데 뭘 부르지? 아 요즘엔 이렇게 노래 제목이 얼른 생각이 안 나네. 호호호."

 "섬마을 선생님 어떠세요? 해~당화 피고 지~이는 그거요!"

 "아아 섬~ 마 으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초옹가악 선새앵님~~~"

 어머니는 수화기를 마이크 삼아 정말 꾀꼬리처럼 완창 하셔서 내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어 참 좋은 방법이었는데 고3딸이 예민한 날이면 하는 수 없이 결방.^^

 

 내 장난기가 발동한 어느 날은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고객님? KBS 시청자만족도 조사를 위한 설문조사에 응해 주시겠습니까?"

 "네? 아.. 뭐 그래요 그럼."

 "지금 시청하고 계신 프로그램이름이 뭔가요?"

 "네? 지금요? 글쎄 저게 뭔지 모르겠는데?"

 "아, 그럼 고객님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음.. 제가 퀴즈를 좋아해서 그거 봐요."

 "네에~ 우리말 겨루기 말씀하시는군요! 그 프로그램 어떤 점이 좋으신가요?"

 "재미있어요! 공부도 되고 아주 유익해요!"

 "아 그러시군요! 설문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객님~ㅎㅎㅎㅎ"


 시어머니를 놀려먹는 '꿀잼'을 조금 더 누리고 싶었지만 웃음이 터져서 중단.^^




 


 그런데 내가 안전을 위한답시고 그토록 문단속에 진심이었던 그때, 정작 어머니는 평안함을 느끼셨을까?

 ......

 아닌 것 같다.

 어머니를 집안에 머무르게 하려 애쓰는 순간에도 내 마음에서는 어머니를 철저히 밀어내고 있었으니까.


안전이라는 이름의 새장 속에 갇힌 어머니...

 

 가족이 모두 집에 들어와 있어서 안전이 보장되는 시간에조차 어머니가 당신 방에서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고, 식사준비를 할 때 곁에 오시면 성가시게만 느끼고는 시이모님께 몰래 전화를 걸어 어머니께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했다.  방 안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고 '작전 성공!'을 외치며 나의 술수에 자화자찬까지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어머니의 안전보다 어머니의 위험상황으로 인해 내 생활이 침해당하는 것을 더 걱정했는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어머니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리 없다.


 정말이지 중요하고 더 시급한 일은 지극히 이기적인 내 마음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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