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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며 내가 듣고 싶었던 말

치매도 육아처럼 44

by 박경주

어머니와 함께 살 당시에는 매일매일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브런치 글을 어머니 발병 때부터 차례대로 쓰고 있어서 얼른 과거 이야기를 끝내고 실감 나는 이야기를 쓰리라 생각했다.

의사에게 병세를 전달하려고 간단히 기록해 둔 특별한 에피소드 말고 흔히 일어나서 당연히 기억할 것으로 생각한 일들이 많은데, 뒤늦게 써 보려 하니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워낙 오랜만에 쓰자니 머릿속이 더욱 하얘진다.

이제 어머니의 요양원 생활 이야기를 시작할 때인가 싶다.


아, 그런데 한 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결심하고 주간보호센터에 가서 사정을 말씀드린 날의 이야기다.




미리 전화로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 찾아갔더니 센터에 들어설 때부터 사정을 알고 계신 분들이 몹시 서운해하며 인사를 하셨다.


어머니가 실변을 하거나 다른 어르신과의 트러블로 귀가하겠다고 언성을 높이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시면 서둘러 센터로 가서 모시고 오곤 했는데, 그럴 때면 선생님들이 집에서는 힘들지 않은지 물으시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그런 선생님들께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아직은 괜찮아요! 센터에서 더 이상 돌보기 힘들다 하시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볼게요."

라고 말씀드렸었다.

어머니가 우리를 못 알아보고 대소변을 가릴 수 없게 되어 점점 힘들어졌지만, 센터에서 싫은 내색하지 않고 어머니를 계속 돌봐주시니까 나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겨 호언장담했던 것이다.

그러니 센터에서는 당분간 변동 없이 어머니를 보살피겠거니 생각했을 텐데 정작 내가 먼저 포기하고 나선 것이었다.


센터 초창기부터 어머니를 돌봐 주셨고, 어머니 특유의 명랑하고 귀여운(불손하지만^^) 행동을 애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매일 전해 주시던 분들이라 나도 그간 정이 많이 들어서 헤어지는 것이 서운했다. 더욱이 자신만만해했던 것이 부끄럽고 면목이 없었다.

다시 이야기를 꺼내는데 눈물이 고여서 난감해하는 나에게 센터 복지사님이 따뜻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보호자님 그동안 정말 애 많이 쓰셨어요.

어르신이 이제는 입소하실 때가 된 것 같아요.

우리 어르신 요양원 생활도 잘하실 거예요."


순간 고여 있던 눈물이 툭 터져 버렸다.


아, 이 말을 듣고 싶었구나!

어머니가 입소할 시점이라는 것과 요양원 생활을 잘하실 거라는 것.


제삼자의, 게다가 전문가이고 어머니를 잘 아는 사람의 판단이니 정말 그러리라 믿어졌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조언도 결론이 다르지는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더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그 복지사님은 어머니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해 준 것이었다.


사실 뭐가 그리 다를까.

그저 내 맘이 좀 더 편해지는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듣고 싶었을 뿐일 텐데...


그런데 그 말을 듣고서야 모든 과정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고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후련해지도록 의사봉을 두드릴 수 있었다.


이제 갈등은 끝!!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드리고 계속 살펴 드리는 걸로. 땅! 땅! 땅!


듣고싶은-말.jpg 어머니는 다음날도 그곳에 있으리라 여기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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