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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Feb 06. 2023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꽹과리 소리

탐라국 입춘굿(2)

  아홉 개의 마을에서 시작된 풍물패가 다 함께 모여 연주를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아이디어였다. 아홉 개 마을 아홉 개 팀이 모두 다른 장단을 연주한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아홉 개의 풍물팀은 세 팀씩 모여 관덕정(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조선시대 때 병사들을 훈련한 곳)으로 행진할 예정이었다. 내가 찾아간 곳에는 첫 번째 마을 팀이 이미 도착하고 두 번째 마을 팀이 막 도착하던 참이었다. 사무실이 모여있는 시내 한복판, 아직 평일인 금요일에 진행된 풍물놀이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특히 제주 시내 광장을 활보하던 붉은 얼굴의 한 노숙자는 자신의 구역과 소중한 낮잠 시간을 빼앗긴 것에 대해 항의하듯 "아 시끄러!"를 몇 번이고 외쳤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풍물패 소리를 뚫고 나올 정도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풍물을 연주하며 광장에 도착한 두 번째 마을 팀은 아직 여흥이 남았는지 도착 후에도 꽤나 오래 빙글빙글 돌며 풍물을 연주했다. 이 모습을 힐끗힐끗 보던 첫 번째 마을 풍물패는 자극을 받은 듯 "꽤갱 깽"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들의 장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진모리 장단과 휘몰이 장단, 그 사이 얼굴 붉은 아저씨의 "아 시끄러!"하는 소리의 화음은 마치 현대음악을 보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이 파열음의 균열 사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은 순간이었다.


  경쟁하듯 풍물을 연주하던 두 마을 중 한 마을이 먼저 연주를 끝내고 휴식을 취했는데, 광장 내 의자가 부족해 버스 정류장에까지 앉아 쉬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그들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나이 지긋하신 모습에 마을에서 광장까지 걸어오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했다. 다른 마을의 풍물패 연주를 지켜보며 "잘한다!" 하는 추임새를 넣어 주기도 하는 그들은 노쇠했지만 힙(hip)했다.





  마침내 세 번째 마을 팀이 등장했고, 역시나 서로 다른 비트를 연주하면서 한 마을씩 관덕정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길목이 좁아 풍물패 옆으로 지나는 사람 중에는 얼굴을 찌푸리거나 귀를 막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괜히 내가 조마조마하고 섭섭해지는 그 순간들을 꿋꿋이 이겨내며 나아가던 풍물패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게 된 건, 신호등을 건너면서다.


  홀린 듯 이들을 따라가다 신호등에 걸리면 멀뚱히 다른 곳을 보는 척했는데, 이들 역시 신호에 걸리면 연주를 멈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점잖게 신호를 기다리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풍물의 뜨거운 열정과 교통법규라는 준엄한 규칙을 무척이나 냉철하게 조절하던 이들의 온도차에 약간 당황하면서도 계속 따라가다보니 반복해서 관찰되는 것이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꼭 스무 걸음 정도를 걷고 나서, 앞서가던 꽹과리 연주자가 다시 신명 나는 걸음걸이와 꽹과리 소리로 연주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몇몇 찌푸린 눈살과 귀를 막은 모습에 맥이 빠질만했다. 신호등에 걸린 김에 스무 걸음이 아니라 서른 걸음, 백 걸음을 걷다 다시 시작한다 해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지만 꽹과리 연주자는 어김없이 스무 걸음을 걷고 나서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꽹과리만큼은 절대 주눅 들면 안되는구나...!' 머리를 꽹하고 얻어맞은 듯했다. 사물놀이에서 꽹과리는 지휘자 역할을 한다. 첫 소리로 풍물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박자를 조절하고, 풍물패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역할까지 하는 꽹과리에게는 장구와 북과 징이 모두 힘을 잃어도 그들을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어떤 형식이든 큰 행사는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기도 하고, 번잡함과 소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비난하고 야유하는 소리, 힘이 쭉 빠지는 모습들에 행사 주최자나 참여자들이 마음 약해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꽹과리 정신' 때문이 아닐까. 이제 꺾이지 않는 마음을 뜻하는 K단어는 '헝그리 정신'이 아닌 '꽹과리 정신'이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며 행렬의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아홉 개의 마을이 모두 모인 모습은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한 장관이었다. 아홉 팀의 풍물패가 모두 다른 장단을 연주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햇빛 아래 빛나는 아홉 개의 꽹과리와 그들의 꽹과리 정신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혹시 본 굿이 시작하기 전 악귀를 물리치는 의식인 걸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 치열한 꽹과리 경연 끝 결국 모두가 하나의 장단을 연주하게 되었다.


  이어진 심방의 거리굿과 관객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춘등 걸기까지 끝나고 나서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잰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내 뒤로 또다시 풍물 소리가 들려왔다. 풍물을 연주하며 쌓인 피로를 다시 풍물을 연주하며 푸는 이른바 '해장 풍물'을 연주하던 그들은 '꽹과리 정신'을 온몸으로 체득한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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