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국 입춘굿(1)
거기에 내가 있었다. 굿판이 막 벌어지려는 찰나, 주차장 한가운데.
버스를 타고 제주 시청을 지나며 그려진 원시인 세 명을 보고 작게 "우가우가"를 읇조리던 나는 몰랐다. 그들이 제주 건국신화의 주인공 삼 형제였다는 것을.(이들은 제주 고 씨, 제주 양 씨, 제주 부 씨의 조상이기도 하다.) 본의 아니게 남의 조상을 '우가우가' 한 마디로 격하하는 신성모독을 범한 후 부랴부랴 제주도의 역사에 관한 다큐를 찾아보았다. 신발을 신고 한국인의 집에 들어서는 외국인처럼 앞으로 예기치 못하게 제주도민 앞에서 결례를 범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였다.
그 결과 알게 된 사실들. 제주도에는 1만 8천의 신이 있는데, 1년에 한 번 옥황상제가 이들을 모두 불러 모으는 시기가 있다. 대한(大寒) 후 5일부터 입춘(立春) 3일 전까지 일주일 가량 제주도의 신들이 모두 자리를 뜬 이 기간을 '신구간'이라고 한다. 신들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이때 이사를 가면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해서 아직도 많은 제주 사람들이 이 기간에 이사를 간다. 이때를 틈타 각종 가전제품이며 가구점에서는 '신구간 세일'을 내걸고 한몫을 당기기도 하니, 이사 관련 업체의 '빼빼로데이'이자 '발렌타인 데이'인 셈이다.
입춘굿은 한 해의 시작인 입춘을 맞아 번영을 기원하는 한편, 신구간 동안 떠났던 신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자리다. '입춘'과 '굿'이라니. K스러운 것 두 가지가 합쳐졌으니 KK스러운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단어의 조합에 절로 흥이 났다. 『전국축제자랑』의 김혼비·박태하 작가는 '어떤 종류의 끈적끈적함과 어떤 종류의 매끈함이 세련되지 못하게 결합한' 것을 K스러움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마주한 K스러움 안에는 흥겨움과 뻘쭘함, 힙함과 노쇠함, 질서와 혼란스러움이 들끓고 있었다.
KK스러운 이 굿판이 처음 열리는 제주오일장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잠잠함에 심란해졌다. '혹시 이미 끝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오일장의 경비아저씨께 "입춘굿 어디서 하는지 아세요?" 물었을 때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나는 금시초문인데-"라고 말씀하시는 찰나, 심상치 않은 대형버스 한 대가 들어서더니 문이 열리고 "빠르게 하차하실게요!"라는 말과 함께 형형색색 풍물복을 입은 사람들이 착착 내리기 시작했다. 주차장은 혼잡했고 뒤로는 계속 차가 들어오고 있어 갈 곳이 없던 나는 그들이 주차장 한 구석에서 질서 정연하게 자신들의 할 일(주로 풍물놀이 의상을 재단장하거나 소품을 챙기는 일)을 할 동안 뻘쭘하게 그 사이에 서 있었다.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고, 소 역할을 맡은 분에게 "아이고 우리 땡땡이 소가죽 옷 입으니까 얼굴이 확 사네"(소가죽 옷이요...?)같은 칭찬을 퍼부어 댈 동안 여느 은행 출입구같이 생긴 네 칸짜리 계단 위에 굿을 위한 상이 차려졌다. 자세히 보니 정말 농협은행 입구라,(오일장 고객지원센터이면서 1층 농협은행과 입구를 같이 쓰고 있다.) 제주의 일만팔 천신과 함께 돈을 향해 절을 올려 풍요를 기원하는 깊은 뜻인가 하는 자본주의적 생각에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한 신호도 없이 갑작스레 쏟아지는 꽹과리 소리와 함께 풍물놀이가 시작됐다. 덩기덕 쿵더러러러 신명 나는 소리가 이어졌고 까투리(나중에 알고 보니 장끼였던)의 탈을 쓴 사람은 새만 5년 이상 연구한 박사님을 잡아먹은 양 완벽에 가까운 새 묘사를 해내고 있었다. 그 섬세한 목의 움직임과 잔망스러운 깡총거림에 넋을 잃고 바라보던 중 심방(제주에서 민중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굿을 하는 사람)의 굿이 시작되었다. 인명사고가 없게 해 달라는 말부터 지난 3년간 코로나로 힘들었던 사람들을 위로하는 내용, 전국 방방곡곡 및 해외에서 온 사람들이 오일장에 많이 와서 장사가 잘 되게 해 달라는 내용까지. 범인류애적이면서도 지극히 세속적인 내용이었지만 심방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은 미처 보태지 못한 내 마음까지 끌어다 쓰는 듯했다.
어느덧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촬영을 하기 시작했고 "입춘굿은 금시초문"이라던 경비아저씨도 내 옆에 와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았다. 짧은 굿이 끝나자 풍물패는 연주를 이어가며 오일장 안으로 행진했고 잠잠하던 시장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특히 까투리 역을 맡은 분은 곡식이 보일 때마다 쪼아 먹는 메소드 연기로 감동을 주었고, 곡식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시장 안 떡볶이 가게에까지 기웃거리며 떡볶이를 쪼아 먹던 그의 열정에 남우조(鳥)연상을 시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풍물패의 음악에 덩실덩실 춤을 추던 시장 상인들은 때로 달려 나와 한사코 거절하는 풍물패의 손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들려주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은 몇 번이고 목격되었고 돈을 받지 않자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과 시장 상인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굿을 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알아차린 듯 한사코 돈을 쥐어주려고 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풍경이었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출구에서 마지막으로 빙글빙글 돌며 공연을 했는데, 까투리는 여전히 남의 가게 앞 땅콩을 쪼아댔고 이를 발견한 풍물패가 "훠이~ 훠이~"하며 쫓아내는 것까지 그 자연스럽고 K스러운 티키타카에 벅차올랐다. 풍물패의 공연은 수미상관으로 마무리되었다. 길을 따라 연주를 하며 행진을 하는 듯하더니 처음 시작한 주차장의 반대편 쪽 주차장에서 빙글빙글 돌며 공연을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렸고, "꽤갱 꽹!" 하는 꽹과리 소리와 함께 공연을 끝냈다. "와아!"하는 탄성과 만세, 박수소리가 짧게 그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고 시동 꺼진 자동차들과 관계자 몇, 소심한 행인 서넛의 관객 따위는 알바가 아니라는 듯 "자 이제 차에 탑시다!"하며 와르르 웃고는 대기 중이던 대형 버스에 다시 착착 올라타기 시작했다.
혹시나 까투리가 저 탈을 벗어던지고 나의 환상을 와장창 깨뜨리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봤지만 다행히 그는 프로 까투리 정신을 발휘해 마지막 순간까지 까투리로 남아주었다. 보이지 않고 좀처럼 모이지 않는 어떤 마음들을 위한 이들의 프로페셔널리즘에, 특히 까투리 역의 메소드 연기에 나도 돈 만원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 되어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