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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Feb 07. 2023

입춘굿의 주인공

탐라국 입춘굿(3)

  '입춘굿'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3일간 새봄맞이 거리굿, 도성삼문 거리굿, 낭쉐코사(나무로 만든 소를 앞에 두고 고사를 지내는 것) 등 굿판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굿판이 벌어질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심방이다. 심방은 제주에서 민중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굿을 하는 사람으로, TV도 없고 연극 무대도 없던 시절 일종의 예능인 역할을 담당했다. 


  굿을 위해 심방이 앞으로 나서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몰려든 사람 중에는 "서 심방 유명하잖아!"(그렇다. 그들의 세계에는 인플루언서처럼 '유명한 심방'도 존재했던 것이다!) 하며 속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굿이 30분 가까이 길어지자 그 절제된 호들갑이 민망할 정도로 썰물 빠지듯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서 심방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굿을 했다. 염불을 외는 듯한 그 오묘한 음으로 굿을 하고 있는 심방에게서 마지막까지도 처음과 같은 목소리의 힘이 느껴졌다.


  때로 유명 심방인 '서 심방'의 팬이 난입하기도 했다. 행사의 취지에 설명하던 서 심방을 향해 한 할머니가 주저않고 직진했다. 서 심방이 마이크를 쥐고 설명을 하고 있건 말건 그녀를 껴안고 "아이고 팬이야!" 외치던 그녀. 소녀팬 같은 순수한 모습에 관객들과 주최측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고 웃으며 지켜보았다. 심방 옆에 찰싹 붙어서 "영험한 우리 서 심방"이라고 말하며 연신 심방의 등을 쓸어내리던 그녀는 심방이 설명을 끝낸 틈을 타 재빨리 접근한 명분(?)을 드러냈다.   


  "나 죽으면 좋은 곳 가게 해 줘"


  느닷없이 자신의 명복을 비는 그녀에게 심방은 "살아서 잘 사셔야지, 죽어서 좋은 곳 가면 뭐하나" 하고 웃으며 타일렀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로도 종종 알 수 없는 곳에서 등장해 서 심방을 향한 애틋한 팬심을 드러냈다. 


  그런 열혈팬(?)을 보유한 서 심방의 매력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굿판이 벌어지는 무대 위, 그녀는 신들에게 제일로 좋은 술을 올려야 한다며 제주에서 만들어지는 술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한라산, 제주 막걸리, 오메기술, 우도 땅콩 막걸리..."


  그러더니 같이 따라온 일본과 중국 귀신, 영국 귀신도 대접해야 한다며 말했다.


  "일본 술은 사케, 중국 술은 고량주, 영국은 위스키. 그래도 그 중에 제일은 뭐냐. 발렌타인 30년산이다."


  아. 역시. 제주의 큰 심방 정도 되려면 이정도 반전매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었다. 단정하게 가르마를 타 묶은 올림머리에 한복을 입고 발렌타인 30년산을 외치며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을 훑어보던 그 능청스러움과 여유로움이란!


  심방의 굿을 단순히 미신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아쉬운 구석이 있다. 민속학자 문무병 박사는 "심방은 구성진 소리와 푸짐한 해학, 자연스러운 춤을 통해 민중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힘든 일을 겪을 때 주변에 하소연하며 공감을 받고, 타로점이나 사주를 보며 처한 상황을 맞춰보는 것처럼 옛날 제주 사람들은 심방을 찾아 응어리를 풀어내고 그들이 풀어내주는 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받았던 것이다. 특히 심방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의외로 '해학', 즉 '유머 감각' 이었다고 한다. 역시 '웃음으로 눈물닦기'의 민족 어디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영향력과 달리 심방들은 예전부터 그리 대접받지 못했는데, 미리 심방에 대해 조사하던 중 보게 된 인터뷰 기사에서 누군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기도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굴 속에서 굿을 했던 심방들의 사연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랬던 옛날에도 심방들이 대접받는 날이 있었다면 입춘굿을 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평상시 홀대받고 마을 회의에서 의견 한 번 내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어도, 입춘굿을 지내는 하루만큼은 온 제주 사람들의 한을 풀어줄 듯 춤추고 굿을 하는 그들은 모두가 공인하는 축제의 주인공이었다.



출처:

 변지철, [제주의 굿] ③숙명처럼 이어진 심방의 삶과 길, YTN, 2022.1.16

국사편찬위원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국사편찬위원회(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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