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엄 Feb 12. 2023

J샤머니즘을 삶에 더하다

탐라국 입춘굿(4)

  입춘굿 마지막날에는 나의 라이프 파트너인 '옹'과 함께했다. 옹과 나는 24 절기가 조상님들의 빅데이터로 만들어진 고도화된 날씨 예측 시스템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역시나 탐라국 입춘굿 행사의 마지막날이자 입춘 당일, '입춘(立春)'이라는 글자와 맞아 딱 떨어지는 화창한 날씨에 "역시, 빅데이터!" 하고 외쳤다.


  우리가 공유하는 또 한 가지는 'K샤머니즘'에 대한 모종의 믿음이다. 우리로 말하자면 치킨 한 마리 값을 복채로 희생하면서까지 전화로 신년운세를 보며 그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고, 서로의 사주 풀이를 들으며 특히 단점 부분에서 "오 완전 맞는 것 같아"하며 한껏 비웃는 그런 돈독한 라이프 파트너다.


  '24 절기 = 빅데이터'에 이어 '사주풀이 = 빅데이터'라는 공식을 받아들인 우리는, 스스로를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빅데이터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려는 현명하고 독립적인 사회인이라 명명해 왔다. 그 외 다른 샤머니즘 요소들은 뭐랄까 맹신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전통 중 하나로, 따랐을 때 어쩌면 복이 올지도 모르니 웬만하면 따르는 것이 좋은 존중의 대상이었다.


  입춘굿이 벌어지는 관덕정과 제주목관아 안은 윷점과 쌀 점, 보리점, 타로카드, 제주판 저주인형(?) 등 샤머니즘적 요소로 가득 차 있었다. 그중 윷점이란 윷을 세 번 던져 나온 결과를 합해 관련 뜻을 풀어보는 것으로, 그럴듯한 근거가 있지 않기에 재미로 봐야 한다.(내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와서가 아니다.)


  이튿날 혼자 먼저 와서 윷점을 본 나는 '걸-개-개'가 나와 '빈이자천', 즉 가난하고 천해진다는 뜻의 결과를 받아 들어 참담해하던 중이었다. 이 결과를 듣고 마음껏 비웃은 옹은 함께 찾은 입춘굿 마지막날 자신도 윷점을 보겠다며 윷을 던졌다. 첫 번째 던졌을 때 '걸'이 나왔다.


  "어어?"


  이어진 순서로 나온 것은 '개'. 내가 윷을 던져 나온 '걸-개-개'에 한 발짝, 아니 두 발짝 가까워진 결과에 탄성이 터졌다.


  "어어!(나와 같은 결과가 나오면 놀릴 수 있겠다는 기쁨의 탄성)"

  "어어...!(그것만은 막고자 했던 옹의 탄성)"


  아쉽게도 마지막으로 '도'가 나와 '용두생각', 즉 모든 것이 순리대로 잘 이루어진다는 결과를 받아 든 옹은 승자의 미소를 보였다. 눈치챘겠지만, 윷은 확률상 '개'나 '걸'이 나올 확률이 높다. 단순한 확률 차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샤머니즘이 무엇인가. 아무리 의미가 없다고 의미 부여하고 싶어도 그 유구한 전통으로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찝찝해진 나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샤머니즘 요소를 찾아 떠났다.


  제주목관아 안쪽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곳. 전날 윷점을 보고 심란해진 내가 미리 1천 원을 내고 이름을 써 둔 덕분에 내 이름이 다른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굿상 구석에 걸려 있었다. 이제 심방이 굿을 하며 내 이름을 불러줄 차례였다. 남자 심방이 장구를 치며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자 옹은 서둘러 스마트폰을 켜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 이름이 들렸을 때의 짜릿함이란. 심방은 이름을 부를 때 염불을 외듯 음절을 길게 늘였기 때문에 "조오-이이-엄이야(가명)"에 가까운 소리였지만 그건 분명 내 이름이었다.


  "들었어? 들었어?"


  "들었어! 조오-이이-엄이야"


  왠지 모를 짜릿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걸어가는 내 뒤로 옹이 말했다.


  "근데 내 이름은 왜 안 적어줬어?"


  윷점이 잘 나온 사람은 이름을 적지 않아도 된다고 반박하며, 목관아 주차장에서 1천 원에 판매되던 천냥국수를 먹으러 갔다. 잔치하면 역시 국수를 빼놓을 수 없지. 말간 국물에 고춧가루를 뿌려 감칠맛을 더하고 면발 위 고기 몇 점이 올라간 국수와 아삭한 김치를 먹던 우리는 진지하게 '우리가 신구간에 이사를 오지 않은 건'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근데 우리 신구간에 이사 안 왔는데. 해코지하면 어떡해?"


  "헉. 그러게. 그래도 나는 주소지 이전을 신구간에 했는데! 그럼 괜찮은 거 아닌가?"


  "오 맞네, 맞아!"


  심방의 굿과 제주의 전통적인 미신 중 하나인 ‘신구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K샤머니즘을 넘어 J샤머니즘까지 섭렵하다니.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샤머니즘을 좋아한단 말인가. 경험상 샤머니즘은 맹신하지만 않으면 삶을 얼마간 더 재밌게 만들어준다. 사람들의 액운을 가지고 간다는 제주판 저주인형 허수아비 '허멩이'의 사진을 찍자, "사진도 보관하면 안 돼. 부정타."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옹의 모습이 그랬고, '일리가 있는 말'이라며 찍어놓은 사진을 냅다 지우는 내 모습이 그랬다.


  우리 뿐 아니라 입춘굿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제주의 무속신앙에 마음을 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특히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참여객이 작성해 줄에 묶은 소원지 중 '강아지 키우게 해주세요. 거북이 키우게 해주세요.'라고 또박또박 적은 내용이 그랬고, 액운을 가지고 간다는 허멩이에 붙일 글귀를 적으며 '놀림받지 않게 해 달라'고 진지하게 적는 아이의 모습이 그랬다.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짠한 것. 옆 사람이 호들갑 떠는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면서도 짐짓 엄숙하게 참여하는 것.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그 덕분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또 호들갑을 떨고 나쁜 일이 생기면 허수아비를 탓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것. 샤머니즘의 힘은 그런 데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J샤머니즘을 우리의 삶에 더하기로 했다.


이전 04화 입춘굿의 주인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