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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Mar 24. 2024

애도

사노라면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시아버님은 돌아가신 후 드디어 온 생애를 걸쳐 그토록 원하던 바를 이루셨다.

아버님은 평생 땅에 대한 공부를 하셨고 당신의 마음에 드는 땅을 찾아다니셨다.

이 좁은 나라에 좋은 자리는 이미 임자가 있었고 마음에 드는 자리는 턱없이 비쌌다.

사업에 실패하고 모든 재산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되신 다음에도 기어이 자신이 원하던 땅을 찾아내셨다.

그 땅이 마음에 들어 그곳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아버님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어 남편은 땅을 사드리고 집을 지어드렸다.

아버님이 어머님을 모시고 시골로 내려갔을 때 우리는 그 길이 삶이 아닌 죽음으로 이어진 길임을 알았다.

10년을 살면서 아버님은 잠깐 삶의 의지를 보이기도 했지만 어머님의 치매가 심해져 결국 요양원에 가게 된 다음 급격하게 꺾이셨다.

나는 재작년 이맘때쯤 아버님의 죽음을 예감했다.

그리고 그즈음 아버님은 영정사진을 찍으셨다.

사실 아버님은 오래 버티셨다고 생각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버님은 죽음과 대면하고 계셨다.

아버님이 떠나시고 나는 끝끝내 아버님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보았고 그 결과를 통해 아버님의 오랜 염원과 욕망을 이해했다.

아버님이 원하던 모습이 지금 이것이라면 아버님은 만족하겠구나. 무척 흡족하겠구나 생각했다.

아버님이 누운 자리가 보기 좋았다. 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오래 아버님이 계신 곳에 마음을 두지 못했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매달 찾아가 온몸과 마음을 바쳐 쓸고 닦고 하면서도 늘 마음은 산란했다.

어머님이 계실 때는 어머님의 자취가 좋았다.

어머님이 요양원에 가신 후에는 모든 것이 참 아득하기만 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님이 원하던 자리에 아버님을 모시고 나서야 마음에 드는 곳이 생겼다.

마음 가는 곳이 생겼다.

3천 평쯤 되는 땅에 호두나무를 심은 밭도 있고 집도 있고 창고도 있지만 그 모든 땅은 딱 이 한자리.

아버님이 누워 계신 이 한자리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 깊고 질기디 질긴 아버님의 염원이 살아서의

행복보다 더 중하지 않고 그래서 실현된 그 염원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아버님은 결국 꿈을 이루셨다.

적어도 아버님의 삶을 놓고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자식 된 입장에서는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우리는 아버님과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것이고 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겠지만 그건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선택이다.


어머님이 요양원에 가시고 혼자 남은 아버님의 삶은 많이 외로웠다.

분명 자식들과 함께 사는 삶을 기대하시기도 했을 것이다.

아버님이 선택하신 삶이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죽음보다 더 슬프고 애잔하고 가슴 아팠다.

그래서 아버님을 떠나보내고 모든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오히려 마음은 평온했다.

어떤 면에서는 안도했다.

다만, 아버님은 안 방에서 홀로 돌아가신 후 이웃에 의해 발견되셨다.

천식으로 오래 고생하셨는데 각혈의 흔적으로 보아 기침으로 인한 호흡곤란이 사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마지막 순간의 아버님이 안타까워 슬펐다.

입관할 때 여전히 낫지 않은 입가 상처를 보고 많이 울었다.

사다 준 연고가 잘 들어 많이 좋아졌다며 하나 더 사달라고 해서 드렸는데도 상처는 아주 더디게 나아지고 있었다.

아버님을 땅에 묻고 집을 정리하며 아버님이 돌아가신 침대 위에 앉아 남편과 오래 얘기를 나눴다.

나는 마음으로 아버님을 위로하고 오래 안아 드렸다.


마지막 순간에 너무 힘들거나 외롭지 않았기를.

이제는 편히 쉬시기를.

우리 마음속에 늘 함께 하시기를.


#죽음#시아버님#단상#애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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