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배낭여행
불가리아 벨리코 타르노보에서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까지 가는 기차가 있다고 들었다.
기차를 타고 한 번 환승해서 국경 근처 도시 루세까지 간 다음 부쿠레슈티로 가는 기차표를 사야 했지만 경험자의 정보에 따르면 모든 것은 타고 있는 기차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여권은 앉아 있으면 역무원이 걷어가서 도장을 받아온단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럴 리가.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시간에 맞춰 기차가 도착했다.
긴 복도에 6명이 앉을 수 있는 칸막이 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기차였지만 기차는 낡고 더러웠다.
에어컨은 나오지 않았고 창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환승한 기차도 마찬가지여서 루세까지 오는 동안 내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루세에 도착한 기차는 이상한 방식으로 해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었다.
그러느라 두 시간을 또 점점 뜨겁게 달궈지는 철통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점심도 먹지 못한 나는 중간에 캐리어는 기차에 둔 채 역 밖으로 나가 음료와 간식을 사 오는 모험을 감행했다.
물론 기차가 금방 떠나지 않을 거라는 역무원의 말과 내 칸의 여행자가 내 캐리어를 들고 도망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였지만 다른 유럽이었다면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만큼 피곤과 허기에 지쳐 있었다.
두 시간 만에 움직인 기차는 국경 이쪽과 저쪽에서 여권 걷어가기를 두 차례 마친 후 천천히 달려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도착했다.
더러운 창밖으로는 밋밋하고 심심한 풍경뿐이어서 창밖을 내다보는 즐거움도 없이 점점 뜨거워지는 기차 안에서 서서히 익어가던 나는 드디어 9시간 만에 기차 안과 별다를 것 없는 기차역에 내릴 수 있었다.
기차역도 찜통이었다.
이틀 후 오전에 시비우라는 도시로 이동해야 해서 미리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줄을 섰다.
일 처리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 땀에 절어 서 있기도 힘든 참에, 앞에 있던 두 루마니아 여자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통역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내가 무척 지치고 힘들어 보였던가 보다.
불행히도 모레 출발하는 기차표가 모두 매진이었다.
숙소 예약이 되어 있고 일정이 빠듯해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일 밤에 출발하는 야간열차가 있었다.
카드로 결제하려는데 오류가 났다.
지난번처럼 환전에 따른 시간차인 것 같았다.
당장 루마니아 돈을 환전해 오던가 돈을 찾아와야 했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보람이 날아가게 생긴 순간 그녀 중 한 명이 대신 결제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무사히 표를 끊고 돈을 찾아 건네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녀는 도와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하루의 모든 피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루마니아의 첫인상이 되었다.
너무 힘이 들어 비싼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왔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은 어딘가 어수선했다.
문 닫기 직전의 호스텔 같았다.
3층 주택을 개조한 호스텔로 평점도 높은 곳이었는데 자유방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좋게 말하면 아주 편안하고 신경 쓸 게 없는 숙소였다.
경험상 이런 숙소는 하루 이틀 머물거나 아니면 아예 장기로 내 집처럼 오래 머물기 좋다.
열쇠도 따로 주지 않아 늦은 밤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밖의 문이 잠겨 있었다.
분명 그냥 들어오면 된다고 했다.
내 휴대전화는 데이터만 되고 문자나 통화가 안 된다.
시간은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난감했다.
지나가는 젊은 남녀들을 붙잡고 숙소에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이었는데 나를 위해 전화를 해보고 문자를 넣어주며 연락이 될 때까지 애를 써서 간신히 숙소로 들어올 수 있었다.
씻고 층고가 높은 방의 내 침대에 누우니 낯선 나라에서 보내는 하룻밤의 감회가 새로웠다.
마치 또 하나의 미션을 완수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