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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과 스무 살의 경계에 있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엄마와 청주 터미널에서 만났다. 아버지가 출소를 하는 날이었다. 택시를 타고 교도소로 이동하면서, 엄마로부터 아메프가 아니라 아이엠에프였으며 뭐가 터지는 게 아니라 나라가 빚을 못 갚아 부도를 냈던 것이라고 들었다. 나는 대한민국 경제사 따위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고, 지난 몇 년 동안 티브이는 고사하고 신문 같은 것도 없이 살았으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 게 뭐가 중요할까. 아버지는 이미 감옥에 갔는걸. 아버지의 감옥 체험은 이미 아버지의 몸에, 기억 갈피갈피에 깊이 새겨져 돌이킬 수 없는걸.
얼어붙은 손을 비벼 녹이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청주 교도소. 사람들을 가두고 그들의 시간을 얼려놓는 교도소라는 공간이 문득 수상한 냉장고 같아 보였다. 냉장교도소가 뿜어내는 선득한 기운 때문이었는지, 그냥 그날이 몹시 추웠던 탓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엄청나게 추웠던 기억이다. 연신 양팔을 비벼 털어내도 끈덕지게 몸에 감겨오는 차가운 기운에 나중에는 이에서 딱딱 소리가 날 만큼 떨어댔다. 엄마, 아빠 언제 나와…. 나도 몰라…. 어디 들어가서 기다리면 안 돼? 그러다 엇갈리면 어떡해. 아빠 핸드폰도 없는데. 그런 말을 엄마와 두 시간쯤 주고받고 있는데 문득 삐걱- 하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교도소 철문 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상봉의 순간, 셋 모두 딱히 말을 하진 않았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눈물과 쌓아둔 말과 감정을 꾹꾹 누른 채 서로를 압력 높게 꽉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안아보는 아버지는 냄새가 약간 달라져 있었다. 우리는 길바닥에 앉아 두부를 나눠 먹었다. 오들오들 떨며 막걸리도 한 사발씩 나눠 마셨다. 아버지에게 대학교 합격증과 장학증서를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찬찬히,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걸 소리 내어 읽더니 읽기를 마치자 문득 내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미안하다 선아. 아빠가 미안해.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을 때 움푹 파인 볼따구니에 시선이 머물고 말았다. 그때 외면했던 눈물이 터졌다. 아버지는 엄마에게도 절을 올렸다. 느릿하지만 바른 자세로써 빈틈없이. 다만, 정신이 없었는지 절을 두 번 올렸다.
엄마와 아버지는 경기도로 갔다. 아버지는 댐을 수선하는 일용직 기술자로 새로이 일을 시작했고 엄마는 원래 하던 일, 해충 방제 업체를 계속 다닐 거라고 했다. 나는 광주에 있는 대학교의 축산학과에 입학을 했다. 미주는 대전에 있는 대학교의 수의학과에 입학했다. 입학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나는 미주에게 전화를 걸어 한발씩 늦지 좀 말라고 채근했다. 그렇게 서로의 합격을 축하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대전에 있는 반지하 방에서 기생으로 지내며, 국가로부터 빌어먹는 것 외에는 굶다시피 했더니 살이 쪽쪽 빠졌다. 원래 나는 조금 통통했었거든. 고2 때까지만 해도 드문드문 얼굴에 돋아 속상하게 했던 여드름도 어느 순간 말끔히 사라졌다. 그러니까, 조금 예뻐졌다. 아니, 원래 예뻤었나? 아무튼.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추근대는 놈들이 있었고, 입학한 이후에는 학교 대나무숲 게시판에 <오늘 교양 중국어 수업 때 맨 앞에 앉은 파란색 체크 무늬 셔츠 입은 여자분. 사랑합니다> 하는 식의 불성실한 인터넷 고백, 도서관에서의 식상한 캔커피 고백, 그냥 돌쇠 같은 멍청한 고백 등 다양한 고백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장학금과 기숙사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성적관리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연애 같은 일로 마음을 어수선하게 할 만한 여유 따위는 없었다.
고백 이야기를 하다 보니 최악의 고백이 한가지 떠올라 들려줄까 한다. 2학기 개강파티에도 나오지 않으면 왕따를 시키겠다는 과대의 으름장에 개강파티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왕따가 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는 편이었고, 성적관리를 위해 동기들과의 교류도 얼마간 필요할 것 같다는 계산에 따라 나갔다.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떤 선배가 바깥으로 잠깐 나와달라고 했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리려는데 혼자서는 손이 모자라니 좀 도와달라는 말에 따라 나갔다. 그 선배는 나를 으슥한 골목으로 데려가서는 갑자기 말보로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짝다리를 짚고 60년대 비트족 스타일의 부츠컷 청바지에 손을 찔러 넣고는 담배를 한 개비 건네며, 할래? 하고 말할 때 정말이지 찐따 같았다. 나는 ‘아니요’라고 두 번에 걸쳐 말했다. 그는 걸쭉한 침을 한 번에 뱉지 못하고 두 번에 걸쳐 늘어지게 뱉더니 담배를 벅벅 피워댔다. 담배가 입술에서 떨어질 때마다 따라 늘어지는 침기둥이 흉악했다.
“선배. 아이스크림 안 살 거예요?”
“허선. 너 내 꺼 하자.”
악, 그럴 것 같더라니. 꼬마야. 나는 지금 네가 상상할 수 없는 인생의 여울을 견디는 중이야. 너처럼 술이나 마시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신입생 중 아무나 하나 걸려라, 낙락할 틈이 없단다. 그는 이어서 주말에 단풍 구경을 가자고 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의 대처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일견 반색으로 들릴 법한 말투를 끌어내어 약간 장황하게. 어머 선배, 저를 그렇게 좋게 보아주시다니 고마워요. 하지만 저는 이미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요, 이게 제일 낫다. 그냥 싫어요, 엄마 손 잡고 가세요, 엄마가 안 되시면 단풍도 손가락이 다섯 개랍니다, 이건 싸가지 없다는 풍문을 유발하며 불필요한 구설이 날 수 있고, 좋은 선후배로 지내요, 라든가 지금은 누굴 만나고 싶지 않아요, 이런 말들은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든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고, 옷은 안 사 입으면 그만이며, 밥은 학교식당에서 밥과 김치를 훔쳐다 먹으면 되었지만, 언제까지고 훔쳐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조별모임에 나가야 한다든가 기숙사에서 어떤 년인지 공동 샤워장에 이름 써서 놔둔 샴푸를 훔쳐 갔다든가 하는 이유로 슬금슬금 지출되는 돈들이 꽤 있었다. 한 권에 이만 원, 삼만 원씩 하는 십 수권의 전공 서적을 살 돈도 필요했다. 장학생으로 공부를 시켜줄 거면 책도 같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전공 책값이 무시무시했다. 통장 잔고가 너무 적어서 조금만 줄어들어도 목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돈을 벌기 위해 야간 텔레마케터도 하고 전단지도 돌리고 스쿠터 타는 법을 배워 컵밥 배달도 했다. 언젠가 배달을 하러 간 집에 과 여자애와 선배가 ‘어떤 과격한 일을 치른 직후다’, 라는 것을 쉬이 예측할 수 있는 누추한 모습으로 음식을 받아갔던 일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풀페이스 하이바를 쓰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나는 학기 내내 그들이 언제 다투었으며 언제 헤어졌는지 따위를 관찰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즐거웠던 추억을 굳이 꼽아보자면 이 정도이며 당연한 말이지만 고된 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학기 안에는 도저히 배울 수 없어 보이는 두께의 이만오천 원짜리 책과 시급 이천 오백 원 곱하기 열 시간을 교환할 때는 정말이지 아까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첫 수업 날 저자와 교수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수업 날까지 두툼한 전공 책은 절반도 배우지 못했다. 부자들이 세상의 돈을 흡수하는 양태를 얼마간 깨달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수업은 재미있었다. 동물생리학이나 축산화학, 동물유전학은 어릴 때부터 읽어왔던 책에서 봤던 것들이라 익숙하고 반가웠다. 1학년 과정까지는 수의학과 전공과 겹치는 내용들이 꽤나 있었는지 때때로 미주와 통화할 때면 서로 조금씩 아는 말이 나왔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교수나 박사가 된 것처럼, 서로 지지 않으려 전공 책을 펼쳐놓고는 몰래몰래 보면서, 부러 어려운 말을 써가며 유식한 척을 했다. 역시 나는 매번 들켰고 미주는 안 들켰다.
2학년이 되고, 나는 마찬가지로 장학금을 받기 위해 전공 공부에 매진했다. 그때는 우학, 돈학, 가금학 수업을 들었는데 언젠가부터 조금씩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학기 초까진 괜찮았거든. 소, 돼지의 종류와 걔네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들에 대해 배웠으니까. 그런데 뒤로 갈수록 내용이 약간 수상했다. 나는 지금 뭘 배우고 있는 거지? 한돈韓豚. 그러니까 한국 돼지는 삼원교잡으로 만들어졌구나. 새끼를 많이 낳는 듀록 종과 많이 낳은 새끼를 잘 보살피기 위해 모성애가 강한 맨드레이스 종, 살이 많은 까만 돼지 요크셔 종을 (듀록 X 맨드레이스) X 요크셔로 교배해서 한돈韓豚이 만들어졌구나. 그런데, 왜 새끼를 많이 낳고 살이 많은 종끼리 교배를 했을까.
아하, 많이 먹으려고. 빨리 키워서 많이 잡아먹으려고 그런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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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의문을 품으며 2학년을 마쳤다. 3학년이 되자 실습이 잡혔다. 번식학 수업이었다. 축산농가에 가서 암소의 난자를 추출하는 실습이라고 했다.
“아욱. 이게 무슨 썅내야.”
초여름의 축사에선, 딱히 초여름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그렇듯 굉장한 냄새가 났다. 축산학과 학생들임에도 의외로 소농장에 처음 온 애들이 많았다. 애들은 코를 감싸 쥐며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소들이 반가웠고 소똥 냄새가 정겨웠다. 차분히 꿈벅이는 샘물같은 눈망울. 벌름거리는 콧구멍. 주름진 콧등. 머리를 끌어안고 코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타래가 생각났다. 송백이가 생각났다. 그때 어수선한 학생들을 수습하며 교수가 말했다.
“자. 이제, 한 명씩 나와서 여기 있는 이 녀석의 난관을 만져보고 난자를 추출하는 실습을 할 겁니다. 소 뒷발에 차이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배운 대로 하면 됩니다. 배운 대로.”
예? 이 녀석 한 마리? 우리는 30명인데?
축사에서 끌려 나온 암소 한 마리가 나뭇등걸에 매인 채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천진한 얼굴로 수굿이 서서 꼬리로 파리를 쫓고 있었는데, 농장주가 기습적으로 소의 질에 기계를 팍 욱여넣었다. 배출된 난자를 흡입을 하는 기계라고 했다. 질에 기계가 박힐 때 소가 움찔했고 나도 몸에 힘이 꽉 들어갔다. 소가 길게 한 번 울었다. 나는 손을 들어 교수에게 물었다.
“저, 교수님. 저희 30명인데 이 한 마리한테 전부 실습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항문에 손을 넣어서 난관을 쥐어짜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네. 그랬죠? 무슨 문제 있나요?”
“애가 아프지 않을까요?”
“거기 학생. 이름이 뭐예요? 못하겠으면 빠지세요. 학생 축산학과 아니에요? 우리는 좋은 소를 잘 번식시키고 키워서 좋은 육질의 고기를 생산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에요. 여기 농장주님도 바쁜데 협조해 주시는 거니까 못하겠으면 이름 말하고 빠지세요.”
교수가 완고하게 말하는 동안 굳은 흙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더럽고 거친 기계가 소의 질에 박혀 키잉 하는 불길한 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깨까지 오는 비닐장갑이 주어졌다. 학생들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소 뒤에 길게 줄을 섰다. 전쟁통에 끌려간 성노예 여성의 뒤에 음욕을 곧추세우고 기다리는 병사들처럼, 암소의 항문을 노리고 섰다. 첫 순번의 여자애가 소의 시선이 닿지 않는 위치에 숨었다. 살금 걸어가 꼬리를 들어 올리고 항문에 손을 대니 소가 몇 걸음 움직였다. 항문을 무례하게 벌리고 손을 밀어 넣었다. 교수님. 손이 안 들어가는데요. 아, 그건 똥 때문이에요. 손으로 파내면서 들어가세요. 윽, 똥을 파내야 된대. 어우 씨발. 처음에 했으면 좆 될 뻔했다. 몇몇 남자애들이 씨우적거리며 낄낄거렸다. 네 번째로 시도한 야무지게 생긴 복학생이 어깨까지 손을 밀어 넣는 데 성공했다.
“어때요. 난관이 잡히나요?”
“네. 맞는 것 같습니다.”
“주물주물 하면서 짜세요.”
야무진 복학생이, 아마도 필요 이상으로 야무진 손길로써, 주물주물 난관을 쥐어짰다. 소가 울부짖었다. 그때 농장주가 농협인지 축협 마크가 자수로 새겨진 모자를 고쳐 쓴 다음 스위치를 켰고, 그러자 공기가 파열되는 소리가 맹렬히 울리며 기계는 암소의 난자를 슈슉하고 빨아들였다. 소가 머리를 도리질 치며 울부짖었으나 난자를 흡입하는 기계가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소의 울음을 덮어버렸다. 김성곤 학생? 맞나요? 잘했어요. 첫 성공입니다. 자, 박수. 교수가 말했다. 몇몇 학생들이 메마른 박수를 성의 없게 쳤다. 나는 속이 메슥거렸다. 실습을 포기하면 학점이 안 나올 텐데. 그럼 장학금은? 교수의 경고가 떠올랐다. 나도 해야만 한다. 이름 모를 소야, 미안해. 조금만 참아줘.
연달아 몇 명이 실습을 마치고 기어이 내 차례가 되었다. 항문을 찾기 위해 엉덩이를 쓰다듬는데 예상보다 훨씬 뜨끈하게 느껴지는 온기에 흠칫 놀랐다. 걸그렁, 걸그렁. 불안하고 거친 숨소리가 느껴졌다. 내 앞에 있는 건 생물이야. 난자 생산 기계가 아니란 말이다. 이렇게 순한 애한테 어떻게 그런 짓을 해. 똥 냄새 가운데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피 냄새였다.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벌써 열 몇 명의 미숙한 학생들에 의해 벌려지고 쑤셔진 소의 항문이 찢어져 피가 흥건했다. “허선 학생! 빨리 시작하세요!” 교수가 보챘다. 나는 교수의 채근에 놀라 펄떡 손을 밀어 넣었다. 잘 들어가지 않았다. 교수가 다급한 동작으로, 골인을 앞둔 자유형 선수 같은 몸짓으로 허우적거렸다. 똥을 파라는 뜻일 테다. 손을 포크레인처럼 말아 똥을 파냈다. 내장이 긁히는 고통. 소의 고통이 손끝에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소가 울었다. 소의 울음을 외면하며 몇 번에 걸쳐 똥을 파냈더니 팔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 더. 더. 교수가 말했다. 나는 더 팠고 더 밀어 넣었다. 손을 휘저어보니 대장막 너머 난관이 느껴졌다. 움켜쥐었다. 소가 길게 울었다. 나도 소처럼 왈칵 울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과 소똥이 범벅되어 흐느꼈다. 허선 학생. 똑바로 쥐어요. 지금 난자 다 새잖아! 얼마나 귀한 건데.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라 물고요… 난관을 다시 한번 움켜쥐었다. 문득, 송백이와 송백이 옆에서 먹었던 소고기가 떠오르며 욕지기가 솟았다. 황급히 손을 빼내고 나무 틈 사이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교수는 나를 못 본 체하며 자, 다음 사람, 다음 사람을 읊었다. 입에서 나온 토사물 속에 점심때 먹은 미역국과 소고기 덩어리가 보였다. 국거리는 양지살. 머릿속에서 수업 때 별다른 생각 없이 배웠던 소의 단면이 펼쳐지며 양지살이 붙은 부위가 확대되어 떠올랐다. 다시금 욕지기가 솟았다. 웩. 웩. 팔은 온통 피와 똥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팔? 어? 비닐장갑이 없다. 아무래도 소의 항문 속에 두고 온 듯하다. 저기, 누가 좀 꺼내줘요. 뱃속에 비닐장갑을 두고 온 것 같아요. 에, 나도 없는데?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대체 몇 장이 들어간 거야? 누가 빼냈대? 몰라.
그날 이후 제대로 먹지를 못하는 바람에 며칠간 헛헛한 얼굴로 학교를 배회했다. 나는 돈이 없었으므로 한 끼에 천백 원씩 하는 학생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급식처럼 나오는 학교식당의 메뉴는 당연히 선택 불가하며 메뉴의 대부분에는 학생들의 왕성한 학구열을 지탱할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언제나 고기가 들어있었다. 그 일을 겪었다고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다짐을 했다거나 그랬던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천연스레 고기를 입에 넣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아마 그날의 일을 망각하고 또다시 고기를 찾게 될 것이다. 얼마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다. 나는 고기를 좋아하니까. 그래. 이건 그저 지나가는 일, 축산학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실습일 뿐이다. 국민들께 양질의 육류를 공급하기 위한 학문을 배우는 우리 축산학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씩식히 해내는 우리 축산학과. 다만 하필이면 내가 그 일선에, 아니 최전선에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몸이 떨렸다.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그럼 뭐 해 먹고 살 건데. 평생 아르바이트라도 하게? 그만두기는커녕 모든 수업에, 누구보다도 착실하게 참석해야만 한다. 어느 부위가 맛이 좋은지, 몇 그램이 나오는지에 관한 퀴즈를 준비하고 레포트도 써야 한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절을 올렸던 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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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육계와 산란계로 나뉜다. 육계는 크기에 따라 5호부터 17호까지 있으며 주로 코브 종이나 로스 종을 키운다. 보통 1개월 정도 생육 후 도축한다. 산란계는 160일 이후부터 산란을 시작하므로 육계보다는 오래 산다. 통상 1년 반 정도 달걀을 낳고 처분한다.
처분한다… 라는 건 그냥 죽인다는 말인가? 가금학 수업에서 양계장 견학을 간다고 했다. 나는 양계장은 ‘실습’이 아니라 ‘견학’이니까, 지난번처럼 힘든 일은 없을 거야, 라고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아유, 먼 길 오느라 고생들 하셨슈.”
10만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다는 양계장 주인이 학생들을 맞았다. 우리는 조교의 지시에 따라 학교에서 지급한 전신 방진복으로 갈아입고 마스크를 썼다. 조교는 우리에게 방진복을 입히더니 단체 사진부터 찍었다. 철저한 위생 방침에 따라 어쩌고 하는데 쓸 사진 같았다. 방금 전까지도 계사에서 닭들과 씨름을 하고 왔는지 몸 이곳저곳에 닭털을 붙이고 있는 양계장 주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무슨 반도체 공장왔나 염병… 그가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연신 염병거리는 그를 따라 계사에 들어섰다.
“웁.”
소 축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악취가 다뿍하게 깔려 코를 찔렀다. 양계장 주인은 자신의 계사가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깨끗한 곳이며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좋은 품질의 닭을 생산하는 농장이라고 시종 역설力說했다. 10만 마리의 닭들이 내는 규환이 그의 목소리를 지워 알아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아. 여러분 잘 들리시죠?”
교수가 허리춤에 찬 휴대용 마이크의 전원을 켜며 말했다.
“자, 이쪽이 이사 브라운 종입니다. 어때요, 책에서 본 것과 비슷한가요? 이쪽은 하이라인 브라운. 이 녀석들은 산란 닭들이에요. 원래 합사를 하지는 않는데 오늘 농장주님이 여러분들 보여주신다고 잠시 데려왔다고 합니다. 농장주님께 박수. 자, 여기 보시면 달걀색이 어떤가요? 베이지색이죠? 달걀의 색은 알을 낳은 닭의 귓볼 빛깔을 따라가요. 하얀 귓볼을 가진 녀석은 하얀 알을, 베이지색 귓볼을 한 녀석은 여러분에게 익숙한 베이지색 알을 낳습니다.”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축사 입구를 지났다. 나는 교수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1미터 남짓한 케이지 안에 닭이 여섯 마리씩, 그러니까 한 마리당 생활 공간은 A4용지 한바닥 정도였고 그게 3층으로 쌓아 올려져 있었다. 위에서 똥을 누면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아래에 있는 닭들은 피할 공간이 없어 그냥 맞았다. 새똥은 강산성이라고 배웠는데. 어딘가 닭들의 모습이 이상하고 흉측했다. 닭들의 부리가 없었다. 날카롭게 잘린 게 아니라 이지러져 있었다.
“저… 왜 이렇게 좁게 키우는 거예요? 땅값이 비싸서 그런 건가요?”
“아녀유, 에이, 시골 땅값 얼마한다구유.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에헴, 설명을 좀 헐게유.”
양계장 주인이 교수의 마이크를 뺏어 왜 이렇게까지 비좁은 케이지에서 닭을 키우는지에 대해 설명을 변명처럼 시작했다.
“여러분들 토종닭 좋아하시쥬? 사실 닭이 야생닭이나 토종닭처럼 많이 움직이면 맛이 없어유. 이렇게 좁은 곳에서 가만-히 있어야 지방이 많아지고 맛이 좋은 거여유. 그리고 육계는 보통 한 달을 키우고 잡는데 닭장이 넓으면 언제 쫓아다녀유. 좁게 해야 빨리빨리 꺼내쥬.”
그가 닭 한 마리를 사정없이 잡아채 꺼내더니 팔랑팔랑 흔들며 설명하고는 다시 휙 사정없이 던져 넣었다. 느닷없는 봉변을 당한 녀석은 빡빡거리며 자지러지다가 무리 속에 숨었다. 쟤들은 한 달만 사는구나. 닭의 수명은 7년에서 13년이라고 읽었는데.
“닭들 부리는 왜 저런 거예요?”
“아, 그건유. 야들이 원래 자기 영역이 한 3에서 4메다 정도 되는데유, 이렇게 좁은 데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거든유. 그래서 서로 쪼고 싸우고 죽이고 피 흘리고 그러니까 태어날 때 부리를 인두로 지져놓고 꼬리도 잘라놔유. 안 그러면 닭들이 지들끼리 막 싸우고 막 다 죽어유.”
태어나자마자 지져지는 거였구나.
“그런데요, 여기 얘네들은 왜 이렇게 비실거려요? 똥도 초록색이고 털도 다 빠졌어요. 아픈 애들이에요?”
“아아, 그건유, ‘강제환우’ 중인 놈들이에유.”
“강제환우가 뭔가요?”
“아니 학교에서 안 배웠대유?”
설명하기 곤란한 눈치였는지 양계장주가 교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하면. 닭들을 괴롭히는 거여유. 스트레스, 그러니까 환기도 안 시켜주고, 밥도 굶기고, 물도 안 주면유 얘들이 강제로 털갈이를 시작해유. 그리고 그동안은 알을 못 낳게 되는데 그러면서 난소가 쉬는 거여유. 환우기가 끝나고 다시 밥을 주면 알도 많이 낳고 난각 상태도 좋아지고 뭐, 그러는 거여유.”
“닭을 출하하실 땐 마리당 얼마에 파세요?”
“아니, 뭐 그런걸 물어본디야… 교수님 그건 좀 곤란한디…. ”
양계장 주인은 난감한 답변을 해야 할 때마다 허락을 구하는 사람처럼 교수를 쳐다보았다. 교수는 딱히 허락을 하지 않았고, 그 역시 멋대로 말을 이었다.
“에헴. 내가 특별히 알려줄게유.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앞으로 나랑 오래 일헐 사람도 있을지 모르니께. 그쥬? 뭐, 닭 호수따라 다르고 시세도 매일매일 바뀌긴 하지만 보통 마리당 천 오백 원에서 이천 원쯤 한다고 보시면 되시것네유.”
“에? 그거밖에 안 해요?”
“그럼유. 강제환유가 잔인하다고 생각했쥬? 우리도 어쩔 수 없어유. 납품받는 대기업이나 대형마트 놈들은 무조건 깎으려 들고, 사료 회사들은 담합을 해서 사료 가격을 자꾸 올리고. 우리도 최대한 고기랑 계란을 뽑아내지 않으면 다 망하는 거여유.”
학생들은 말을 잇지 못한 채 멀뚱히 서서 부리 잃은 닭들을 쳐다보았다. 부리가 없어 어색한 동작으로 모이를 쪼는데 헛방이 많았다.
“그런데 왜 치킨값은 만오천 원씩 하는 거죠?”
“허이구, 이 학생 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유.”
“야. 유통 단계가 있잖아. 거기서 마진이 붙나보지.”
다른 학생이 대답했다.
“에? 어제 엄마가 생닭 사천 원에 사 왔는데? 싸구려 아니야. HACCP 인증에 대기업에서 파는 거였어.”
“뭐야. 그럼 치킨집이 돈을 존나 버는 건가?”
“야 뉴스 못 봤냐. 치킨집 폐업율 구십프로라는데.”
“그럼 대체 누가 버는 거야?”
“푸하하. 누구긴 누구야. 치킨집 건물주지. 이 세상 돈은 어차피 모두 건물주한테 귀속되게 되어있어. 씨발 돈은 그렇게 벌어야 하는 건데.”
어떤 여자애가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부리를 상실한 10만 마리 닭들 앞에서 불현듯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는 그녀를 아득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을 때 내다 본 창밖의 풍경은 세 명의 남자가 새끼 돼지를 붙들고 실톱으로 어금니를 잘라내는 모습이었다. 바닥에는 방금 잘라낸 꼬리와 어금니가 피 웅덩이에 잠겨있었다. 부모님이 돼지 농장을 경영한다는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선배, 저건… 왜 저러는 거예요?”
“아, 그건. 방금 배웠잖아. 닭이랑 똑같은 거지. 돼지도 많이 움직이면 근육이 생겨서 맛이 없거든. 좁게 키울수록 지방이랑 살이 많아지고 맛있어. 그래서 좁게 키워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얘네들이 미쳐서 서로를 막 물어요. 꼬리를 자꾸 물어뜯으니까 잘라줘야 하고 어금니에 물리면 상처가 크게 나잖아. 그럼 고깃값이 떨어질 테고. 그러니까 어금니도 잘라야지.”
“마취 같은 거 안 해요?”
“야, 무슨 예방주사도 아니고. 마취는 수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나중에 도축하고 1+ 등급 받아도 고깃값으로 오십만 원도 못 받는데 수의사를 부르면 그 돈을 어떻게 다 감당해.”
창밖에선 돼지가 안간힘을 다해 버둥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듯했지만, 이중접합유리가 장착된 고급 리무진 버스는 녀석들의 울부짖음과 거기에 실린 고통의 직간접적 전이를 완벽히 차단해 주었다. 버스 안에서 보는 돼지들의 몸부림은 무반주에 추는 참혹한 댄스를 보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