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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 씨 Aug 31. 2022

마블링 (6)

 “저기, 뭐 첫날이라 그런가 본데, 얼른 익숙해 지세요. 허선 평가사님이라고 했죠? 저거 진짜 총 아니에요. 뭐 어차피 곧 죽을 녀석들이긴 하지만 저건 아니고요, 고무탄으로 기절만 시키는 거예요. 미간에 쏴서. 생각을 해 봐요, 진짜 총으로 쏴서 대가리가 뚫리면 고깃값이 떨어질 거 아냐. 죽이는 건 우리 도부들이 하는 거죠. 아무튼, 첫 출근 기운 내시고 늦었으니 나 먼저 갑니다. 등급 평가 잘 좀 부탁합니다. 뭐, 나랑은 별로 상관없긴 하지만.”

 영감의 말에 얼마간 안도를 할 수 있었지만, 영감의 말대로 어차피 죽을 것이기 때문에 의미는 거의 없는 방념이었다. 나는 어쩐지 친숙해진 영감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으며 도축장에 들어섰다. 들어가기 전 냄새를 견디기 위한 마스크와 강렬한 맛과 향이 나는 졸음방지 껌 따위를 잘 챙겼는지 가볍게 점검을 했다. 도축장 내부 온도는 영하 18도라고 했다. 얼어붙은 비린내에 눈알이 따끔거렸다. 도축장 내에서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할 일이 모두 같은 관성적인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을 촉진하기 위한 유행 지난 유행가가 흐드러지게 쿵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영감의 뒤만 쫓았다. 영감이 이리저리 그어진 노란 선만 따라다니는 걸 보고 노란 선이 사람들 걷는 길인가보다 했다. 문득 영감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아, 왜 자꾸 따라와요. 성가시게. 예? 어, 죄송… 합니다. 영감의 뒤를 따라다니는 걸 멈추고 그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아쉽게 바라보다가 그제야 엄습하는 한기를 느끼고 몸을 떨었다. 얇은 봄 잠바를 하나 걸치고 있는 게 전부였다. 탈의실에 가서 두툼한 롱패딩과 방호복을 갖춰 입고 도축장에 들어섰다. 일단은 3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도축장의 윤곽을 익혀볼 생각이었다.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냉동창고를 지나야 했는데 거기에는 등급판정을 기다리는 소와 돼지들이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이국의 나무가 우기를 맞아 급속도로 성장하여 맺은 열매들처럼 쇠고리에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소나 돼지들이 냉동창고에 올 정도가 되면 도축장 바깥에 있는 녀석들과는 얼마간 물성이 달라져 있는데 일단 머리가 없으며 몸통이 반으로 갈라져 있고 발골이 되어있는 등 상당한 처리가 완료된 뒤라서 모양새가 정육점 같은 곳에서 익숙히 보아왔던 고기와 별반 다르지는 않다. 차갑게 식어 있으므로 몸에서 김을 내뿜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걸 본다고 곧바로 살아 꿈틀대는 소와 돼지들이 연상되는 건 아니지만, 고기 열매를 맺은 나무가 수백 그루씩 심겨 있는 숲의 입구에 서 있다 보면 걸려있는 고기와 자신의 육과 체를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든가 밀집된 고기들이 내뿜는 원념이 촉감처럼 선명히 느껴진다든가 하는 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서 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개나리를 부르고 건강박수를 치는 등 갖은 용을 다 써야 했다. 냉동창고는 육질 등급 평가를 하는 곳으로 평가사의 주 업무 공간인 만큼 그곳의 지리를 먼저 익혀야 했다. 나는 도축장 입구에서 보았던 건물 내부 구조도를 떠올리며 냉동창고와 3층 사무실을 몇 번 오르내렸다. 나름 빠른 걸음으로 돌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거의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고기 나무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정신이 멎은 탓이었다. 육림에서 길을 잃으면 누구든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몇 번을 오갔더니 냉동창고의 구조는 대략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사수 선배의 가열한 오더에 따라, 도축장의 전모를 파악해야 한다. 도축장은 가운데가 뻥 뚫린 백화점처럼 되어있어서 3층에서 조망하면 도축장 입구에서 기절한 소와 돼지들이 몇 가지 처리를 거쳐 냉동창고에 들어가는 것까지, 전반적인 윤곽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라 선배가 말했다. 깨우침이라 칭하기엔 좀 뭣한 앎이지만 여하튼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매운 껌을 왕창 꺼내 씹자, 혓바닥을 잡아 빼서 몇 대 찰싹 후려친 것처럼 얼얼했다. 눈물이 고이는 아픈 느낌을 질끈 참았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웁!”     

 오늘은 여기까지. 아래를 보는 순간 선배고 나발이고,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유리되어가는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아 원래 자리에 붙여놓고 현존을 확인하자마자 그냥 내빼버렸다. 그날 밤 미주와 통화를 했는데 미주는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와 본과 생활을 시작했다며 힘들어 죽을 맛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즈음 발생한 나의 근황을 전할 수 없어 미주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      

 출근 셋째 날이 되었다. 어제 도망친 일로 선배로부터 옴팡지게 욕을 얻어먹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펑펑 울어버렸는데 욕을 먹은 게 서러워서 그랬다기보다는 어제 일순 내려다보자마자 다리가 풀려버리고 구토를 해야 했던 그 광경, 하나의 거대한 창자 같았던 도축장의 사나운 전모를 또다시 마주할 생각을 하니 겁이 나서 울었다.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다가, 독한 구충약에 구멍이 숭숭 난 엄마의 손바닥과 볼이 움푹 파인 아버지의 얼굴과 남아있는 빚 따위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마침내 출근했다. 눈만 감았다 하면 선연히 떠오르는, 거대 소화기관의 이미지를 밤새 반추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결국 밤을 꼴딱 새우고 새벽 네 시에 도축장에 나와버렸다. 내내 말똥하던 눈이 그제야 졸음이 쏟아지며 개개풀리는 바람에 어제처럼 계단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잠시 눈을 붙였다. 양치도, 세수도 하지 않았으므로 깨어났을 땐 몇십 퍼센트쯤이 노숙인과 같았는데 그대로 출근할 예정이었다. 그곳은 보통의 직장인들이 으레 하는 것처럼 몸단장을 상쾌히 마치고 맑은 마음으로 입장할 만한 곳이 아니었고, 어차피 도축장에 있는 내내 방호복에 마스크를 끼고 있기 때문에 단장을 해도 의미가 없다.

 사흘쯤 지나자 제법 도축장의 정경이 익숙했다. 물론, 외부만. 내부는 냉동창고에서 3층에 올라가는 길 정도만 간신히 클리어했을 따름이었다. 클리어했다고 말하기도 사실 조금 부끄럽지만, 아무튼. 도축장 입구에 묶어 놓고 키우는 개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보고도, 아니 누구를 봐도 짖지 않는 개가 희한해서 가까이 다가가 살펴봤더니 녀석이 묶여 있는 개집에 ‘순돌이’라는 글자가 매직으로 휘갈겨 있었다. 순해서 순돌이인가 보다. 반응이 없던 순돌이가 내가 다가가자 갑자기 꼬리를 흔들며 빙글빙글 돌고 몸을 뒤집어 배를 보이고 하여간 자지러졌다. 순돌이는 순해서 짖지 않았다기보다는 무슨 짓을 해도 순돌이를 찾아주지 않으니 포기를 해 버린 것 같았고 그래서 안쓰러웠다. 낙엽이니 날벌레니 하는 것들이 충충하게 괴어 있는 물그릇을 가져다 씻고 새 물을 떠다 주었다. 순돌이는 깨끗한 물을 보더니 컬척컬척 소리를 내며 한껏 들이켰다. 물을 마신 순돌이는 곧바로 오줌을 누었는데 오줌 누는 모양새를 보니 암컷이었다. 음, 어째서 순심이가 아니라 순돌이인걸까. 줄이 짧게 매인 바람에 집에서 먼 곳에 볼일을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또 안쓰러웠다. 밥그릇에는 퉁퉁 불어터진 밥이 빨간 국물에 담겨 있었다. 내일은 순돌이의 사료와 간식을 좀 챙겨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순돌이와 놀고 있는데 여섯 시가 되었는지 어김없이 트럭들이 들어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트럭에서 내린 뒤 비척거리며 줄을 섰고 십장 영감이 파카와 핫팩과 살인마 레인코트를 지급했다. 오늘 오후쯤 사수 선배가 도축장에 온다고 했었다. 그때 도축장 구조에 대해 물어볼 것인데 만약 내가 전연 대답을 못 한다면 직접 비닐봉지를 들고 나를 끌고 다니며 오바이트를 하건 말건 각 공정별로 30분씩 설명을 하고 반드시, 기필코 다 외게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영감에게 빌붙었다.

 “저…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아니, 영감님.”

 “됐고, 그냥 십장님이라고 불러요. 또 왜요?”

 “저기, 오늘 오전에 저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그쪽 고참 없어? 있잖아, 조병욱이.”

 “그게… 좀 무서워서….”

 “허허 참. 하이씨, 바쁜데.”

 “제가… 다… 다음에 맥주랑 치킨 사 올게요!”

 조실부모한 고아 같은 얼굴로 매달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십장 영감이 마침내 승낙했다. “아유, 좋다 뭐. 알았어, 알았어. 약속 꼭 지켜요.” 나는 매운 껌 몇 알을 입안에 털어 넣고 질겅 씹어나온 매운 물을 꿀떡 삼킨 뒤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지 재차 삼차 점검하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영감의 뒤를 졸졸 따라 도축장에 들어섰다. 다국적 도부들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고 그들을 앞질러 걷던 영감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 영감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도축장 한쪽이 유난히 부산했다. 그쪽으로 계류장을 거쳐 이마에 총을 맞고 기절한 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영감이 무어라 무어라 설명을 했는데 질량 높은 냄새와 컨베이어벨트가 도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방호복의 후드를 살짝 뒤로 젖히고 시야를 넓혀 기절한 소의 향방을 관찰했다. 도부들은 소가 들어오자마자 다리의 뼈와 뼈 사이에 칼을 쑤셔 칼집을 내더니 거기에 고리를 걸었고 기계가 들어 올렸다. 어릴 적 미주와 잠깐 다녔던 교회에서 십자가에 순교자를 매달 때도 뼈와 뼈 사이에 못을 박아 걸어둔다고 들었는데 그와 비슷했다. 녀석들에게는 딱히 박해를 받을만한 종교적 신념이나 신앙이 없을 텐데.

 들어 올려진 소는 레일에 매달려 차근차근 이동을 했다. 소가 이동을 멈추었을 때, 그 앞엔 자그마한 칼을 쥔 도부가 도사리듯 서 있었다. 그는 소에게 다가가더니 목 근처에 양동이를 하나 툭 던져두었다. 그리고 목을 쑤셨다. 너무나도 기습적인 일격에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라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른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신속하고 기탄없는 접근이었다. 칼을 뽑자 수돗물을 튼 것처럼 피가 쏟아졌다. 소의 심장께는 여전히 두근거렸는데 펄떡 펄떡 하는 맥박과 같은 운율로 왈칵 왈칵, 자기 생명의 정수가 쏟아지는 소리를 신음 대신 흘리며 소는 식어갔다. 진득하게 고여가는 핏물을 보니 또다시 욕지기가 기지개를 켠다. 어어. 오늘은 안돼. 오늘은 진짜 안돼. 뒤로 젖혔던 후드를 다시 앞으로 여미며 시야를 좁혔다. 양동이 한가득 피가 고이자 체구가 작은 동남아인이 양동이를 들고 갔고 다른 양동이로 교체되었다.

 “저게 제일 어려운 거야.”

 “예?”

 “저건 아무나 안 시켜줘. 8초 안에 피를 다 빼야 하기 때문에 경동맥을 정확히 찌를 줄 알아야 하거든.”

 피가 다 빠진 소들이 얼마간 가벼워진 움직임으로 레일에 걸려 이동했다. 그다음 공정은, 모든 공정을 통틀어 가장 잔혹했다고 단연하게 말할 수 있다. 조선족으로 보이는 도부들이 소의 목을 칼로 푹푹 한 바퀴 돌려가며 찌르더니 몇 사람이 달라붙어 함부로 잡아 뜯었다. 머리를 뜯는 동안 누군가가 발을 잘랐다. 그다음엔 레일에 걸려 실려 오던 소가 묘하게 생긴 기계에 들어가더니 좌악, 가죽이 음란하게 벗겨져 부끄러운 것들 중에 가장 부끄럽게 되었고 그다음엔, 웁. 토사물이 치받치며 어금니까지 올라왔는데 강제로 눌러 삼켜 내렸다. 하지만 이미 역치를 건드린 메스꺼움에 입안에는 자꾸 신물이 고여갔다. 목과 피부가 없어진 소는 레일에 실려 그다음 공정을 향해 이동했다. 누군가 소의 엉덩이를 동그랗게 오려내었다. 영감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저건 육회용. 어이, 나르바랏! 쟤는 캄보디아에서 왔어. 영감이 나르바랏을 부르더니 자기 엉덩이를 툭툭 치며 고기를 썰어달라는 시늉을 했다. 나르바랏이라는 캄보디아인이 엉덩이 고기를 두 점 썰어왔다. 영감이 우적우적 씹더니 엄지를 치켜세웠고 나는 엄지를 접어주고 싶었다. 영감이 내게 한 점을 건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르바랏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기 입에 넣었다. 나르바랏과 한 조로 일하던 캄보디아인이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냈다. 꺼낸 내장을 물에 세척하여 백내장은 백내장대로, 적내장은 적내장대로 레일에 실어 보냈다. 백내장은 창자 따위를 말하고 적내장은 심장이나 간 등을 의미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고,

 “웩.”

 나르바랏이 방금 꺼낸 심장을 장난처럼 쥐어짰을 때 울컥 쏟아진 검붉은 피를 보고 결국 터져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토할 곳을 찾지 못해 입을 틀어막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덩치 큰 도부와 부딪혔고 날아가 팩 쓰러졌다.

 “야이 개새꺄. 조심 안 해?”

 엔간한 조폭보다 무시무시한 문신을 새긴 험상궂은 도부가 욕을 하며 주먹을 치켜 들었다. 아까 소의 목을 찌르던 도부였다. 내가 새로 온 도부인 줄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나동그라진 자리에 그대로 껌과 껌에서 나온 단물과 위액 따위를 게워냈다. 먹은 것도 없이 노상 구토만 해대니 나오는 것도 없이 목구멍만 홧홧했다.

 “아이, 씨벌 드럽게. 야! 빨리 안 치워?”

 영감이 나와 도부 사이를 가로막으며 평가사라고 소개를 하자 도부는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갔는데 나는 그런 것은 보지 못했고 오물을 어떻게 치워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난감했다. 결국 장갑을 빼고 맨손으로 토사물을 주워 근방에 있는 하수구에 갖다 버렸다. 장갑을 빼자 잠깐 차갑다 싶더니 금세 손가락에 감각이 사라졌다. 바닥을 냉기에 곱은 손으로 쓸다가 타일 조각에 벤 듯 피가 배어 나왔는데 그 또한 감각이 없었다. 빨리 치우지 않으면 아까 그 도부가 들고 있던 칼로 내 목을 따서 8초 안에 피를 빼낼 것 같았다. 허둥대며 치우고 있는데 영감이 소리쳤다.

 “그거 그만 치워도 돼요. 어차피 중간중간 물청소하니깐. 이리 와서 이거나 보세요.”

 화장실에 가서 입을 헹구려 했는데 문득 영감이 자신이 하는 일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끌고 갔다. 음, 수상쩍은데. 뭘 보여주려고… 영감이 제법 야성적인 얼굴로 체인톱을 손에 쥐더니 시동을 걸자 톱은 굉음을 내며 회전했다. 그때 보조하던 도부가 영감 쪽으로 레일에 걸린 소를 서슴없이 밀어 넣었고 영감이 어여차 기합을 넣으며 톱을 소에게 갖다 대니, 영감과 나의 얼굴에 예리하지 못한 톱날에 잡아 뜯긴 살점과 미처 다 빠져나가지 못한 핏물 같은 게 불꽃처럼 튀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오금이 후들거릴 지경이었는데 영감은 힘을 주느라 그런 것이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영감이 얼굴에 미소 비슷한 것을 희미하게 띠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영화 쏘우를 비롯한 갖가지 불온한 장면을 상상했으며, 그와 동시에 바깥으로 뛰쳐나가게 되었다. 첫날에 붙들었던 나무를 또다시 붙잡고 웩웩거렸는데 첫날 내가 쏟아 낸 토사물이 그대로 말라붙어 있어 그게 또 나를 메슥거리게 만들었다. 그러할 때, 속사정을 모르는 순돌이는 내가 반갑다며, 자신을 만져달라며 낑낑댔지만, 안타깝게도 그 순간 내게 순돌이를 살필 여력은 없었다. 영감이 하는 일은 머리가 뜯긴 소를 적확하게 반으로 가르는 것으로서 업력이 높은 고참 도부만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영감은 나름 자부가 있었으며 그런 연유로 나에게 자랑이 하고 싶어 굳이 달갑게 보여준 것이었다.


 화장실에 가서 입을 헹구고 3층 사무실 입구에 웅크려 앉아있는데, 오전 두어 시간 만에 접한 일들이 몹시도 충격적인 바람에 나는 섬망이 든 환자처럼 중얼중얼 엉뚱한 말을 하다가 이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가 싶어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프면 병원비가 들 텐데라는 생각으로 귀결되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때 평가사 선배 언니가 구내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나는 마지못해 따라갔다. 거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한 음식이니 메뉴에는 반드시 고기가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선배 언니는 내 직속 사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은 회사의 선배가 밥을 먹자는데 제가 오늘 입맛이 좀 없어서요, 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출근 3일 차였으므로 따라가야 했다. 메뉴로는 역시 소고기 무국과 불고기가 나왔고 물론 먹지 못했다. 맨밥을 입에 넣고 단맛이 나올 때까지 우물거렸다가 조금씩 삼켜 목구멍으로 넘겼다. 선배 언니는 깨작거리는 나를 보며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엄청 좋아하거나 못 먹게 되거나. 보통 그래요. 우리 허선 씨는 성격이 좀 나이브하고 로맨틱해 보여서 걱정이 되는데, 뭐. 잘 해봐요. 파이팅.”이라고 말했다. 나는 나이브가 뭔지 몰라 나중에 영어 사전을 찾아봐야 했고 ‘순진무구한’이라는 뜻이었다.

 오후쯤 도축장 사무실에 들어온 사수 선배가 망자처럼 넋을 놓은 나의 얼굴과 피와 살점이 들러붙은 방호복을 보더니 “오늘은 그만 들어가요. 그리고 내일,”이라고 관대하게 말했는데 나는 그만 들어가요, 까지만 듣고 즉각 내빼버렸기 때문에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불을 펴고 그 위에 몸을 부려놓고 처참하게 잠들었다. 저녁 즈음 일어나 시장에 갔다. 순돌이 먹을거리를 사 들고 집에 돌아와 둥지 냉면을 하나 끓여 먹고 둥지에 깃든 새처럼 잤다.          

*     

 출근 나흘 차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비쩍 마른 편인데 구토를 하는 일이 타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날은 멀미약을 두 종류나 먹고 출근했다. 매운 껌도 단단히 챙겼다. 십장 영감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는데 처음엔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손을 맞잡았다가 별안간 영감의 모습이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레더페이스(leather face)와 겹쳐 보이는 바람에 엉겁결에 손을 뒤로 확 빼버렸다. 놀란 영감에게 아, 저기 손에 사이다가 묻어 끈적해서요… 라는 오전 여섯 시에 납득하기엔 어려운 변명을 했는데 영감이 대충 웃으며 넘어가 주어서 미안했다. 나르바랏도 나를 보더니 아는 체를 했다.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응응. 그래그래. 테이킷 이지. 오케이 땡큐, 라고 말해줬다. 오전에는 선배 언니와 냉동창고에 가서 등급판정 방법에 대해 배웠다. 학교에 있을 때도 배운 것들이지만 역시 실무는 그보다 몇 배는 까다로웠고, 등급을 낮게 매기면 농장주들이 난리를 부리고 등급을 과도하게 좋게 매기면 고기를 사가는 도매업자들이 마찬가지로 난리를 부리니 누가 봐도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정확하게 판정해야 된다고 했다.

 “자, 돼지는 일단 무게로 등급을 매기고요, 그다음엔 등지방의 비율을 봐요. 그리고 지방의 질, 그러니까 지방이 탱탱한지, 살코기와 잘 붙어 있는지 그런 걸 보는데, 나쁜 환경에서 자란 돼지는 지방에 구멍이 숭숭 나 있어.”

 “나쁜 환경이 뭐에요?”

 “뭐, 엄청 더럽거나, 제대로 된 사료를 안 먹이고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거 먹여서 대충 키웠거나, 병에 걸려 아픈 데도 방치를 했다든가. 그러면 지방 색깔이나 질이 떨어져. 윽, 이거 봐. 얘는 막 고름이 묻어있네. 악취도 심하고 지방 때깔도 이상하고. 이런 건 뭐 그냥 등급 외지. 나 그냥 말 놓을게, 괜찮지?”

 “네. 저도 그게 편해요, 언니.”

 6년 차 오성희 평가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선배 언니는 무척 꼼꼼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는데, 이럴 바엔 사수 선배라는 사람은 뭐하러 있나 싶었지만 그가 나를 평가해서 팀장에게 보고한다고 하였으므로 어찌 되었든 그를 받들며 지시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긴 해야 했다. 성희 선배로부터 실무 설명을 들었던 나흘째는 다른 날보다 지내기가 좀 나았다. 집중할 거리가 생기니 동물들의 절명이라든가 피비린내라든가 어제 보았던 생명이 식어가는 구체적인 과정 같은 걸 얼마간 잊을 수 있었다. 오늘은 어쩐지 구토를 하지 않는 무사한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안일한 낙관이 스며들었을 즈음 사수 선배가 돌연한 바람처럼 휘리릭 나타났다. 선배는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소개를 시켜줄 테니 이번엔 잘 외우라며 나를 데리고 나왔다. 선배는 농장주와 도매상들만 잘 알고 지내면 된다고 했다. 도부나 발골기술자들은 자주 바뀌기도 하고 별로 엮일 일이 없으니 알아둘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걸 왜 이제… 도축장에 있는 나흘 동안 나를 가장 친근하게 대해준 건 텍사스 전기톱 영감님이었는데.

 “안녕하세요, 허선 평가사입니다. 이번 주에 입사했습니다.”

 “어. 너여? 여기저기 토하고 다닌다는 애가.”

 “예? 아… 예.”

 나는 대뜸 반말부터 내지르는 농장주가 못마땅해 표정이 구겨졌는데 사수 선배가 멋쩍은 듯 웃으며 나를 돌려세우고는 예예, 그럼 들어가세요, 하며 꾸벅 허리를 팍 굽혀 인사를 했다. 내가 알기론 우리 평가사들이 매기는 등급에 따라 농장주나 도매업자들이 울고 웃고 하기 때문에 도축장 내에서는 그다지 괄시받을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우리 눈치를 본다고 들었는데 그와 같이 행동하는 선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네? 뭐가요?”

 “아니 좀 지나치게 존대를 하시는 것 같아서….”

 “아, 뭐. 그냥 나이도 있고. 사실 무서워서.”

 “예? 무섭다니요?”

 “허선 씨. 여기 잘 한 번 둘러봐요.”

 나는 선배의 말에 따라 도축장을 빙 둘러보았다. 별다른 건 없어 보였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내게 선배가 말했다.

 “사람들 손을 보라고. 뭘 들고 있는지. 뭘 들고 있어요?”

 “칼… 톱… 쇠갈고리…요.”

 “그렇죠? 허선 씨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까지 굽신거릴 필요는 없어요. 없는데, 이 사람들 한 번 홱 돌면 위험해서 그래. 그러니까 가급적 피하거나 대충 맞춰주세요. 뭐, 그런 사고가 좀 있었어. 그렇다고 해서 등급판정이 흔들리면 안 되고. 그건 공정하고 정확하게. 단호할 땐 단호하게. 알았죠?”

 나는 선배의 주문이 모순적이라 머릿속이 몹시 헝클어졌지만, 그냥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다채롭게 위험한 업계다, 이곳은. 선배는 이어서 말했다. 오늘 회식 있어요. 어제 들었죠? 네? 못 들었는데… 어제 말했잖아. 오늘 네 시쯤 퇴근해서 같이 식사하고 들어갈 거예요. 여기는 새벽에 일을 하니까 일찍 먹고 일찍 집에들 가. 그럼 이따 봐요. 선배는 말을 마치고 서류 뭉치를 챙기더니 한 줄기 바람처럼 휘리릭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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