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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 씨 Aug 31. 2022

여전히 쓸모있는 당신에게 (2)


*     

 처남이 말한 골목에서 두리번 둘러보니 과연 상가건물 2층에 회사 이름을 붙여 둔 창문이 보였다. 주식회사 튼튼주택관리. 다른 주택들보다 관리가 시급해 보이는 건물의 허름한 계단을 헐레벌떡 올라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머리에 청소용 두건을 쓴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있었고 처남(49세)이 화이트보드에 무어라 적어가며 말을 하고 있었다.

 -오셨어요? 거기 적당한 데 의자 펴고 앉으세요.

 -어어. 일 봐.

 맹현철, 임순애님. 오늘 상떼빌하고 현대빌라 가시죠? 예. 거기 주차장에 은행 밟아 터진 자국들 지워달라고 하니까 그것 좀 신경 써 주시고요. 예. 리민철, 령매화님. 여 있슴다. 오늘 청소하시다가 찌라시 발견하면 다 떼와 주세요. 그 빌라에서 찌라시 좀 못 붙이게 해달라는데, 염병 나보고 그걸 어떻게 막으라고. 하여간 갖고 와주시면 제가 전화 돌려 볼게요. 알갔습네다. 자, 그럼 오늘도 수고해 주세요. 형님,

 -형님!

 -응? 어어.

 -의자들 접어서 저쪽에 치워 주시고요, 다 치우면 제 방으로 오세요.

 -의자? 어어.

 기습적인 처남의 명령에 감히 매형더러 의자나 치우라고 시키다니, 생각할 틈도 없이 주섬주섬 의자를 접어 치우며 사무실을 일별했다. 그곳은 사무실이라기보다 강당에 가까웠는데 사십 평쯤 되는 공간에 책상 두 개만 휑뎅그렁 놓여 있었고, 책상에는 영양제 대신 고엽제를 맞았는지 새카맣게 갈변한 난초 화분들 틈 사이로 진한 속눈썹 문신을 한 아줌마가 얼굴을 한껏 옹송그린 채 키보드를 퍽퍽 두들기며 정열적으로 무언가를 입력하고 있었다. 처남은 방이라기보다는 곰팡이 자국이 눅진한 파티션을 둘러쳐 구분해 둔 공간에 있었는데, 방이라고 불러주기엔 도저히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처남이 선제적으로 ‘방’이라고 칭하였으니 일단 그렇게 불러주기로 하자.

 오봉춘이 처남의 방에 들어섰다. 다 치우셨어요? 어어. 거기 앉으세요, 미스 곽! 여기 커피 두 잔만! 잠시 뒤, 미스 곽이라는 여자가 속눈썹처럼 진한 믹스커피를 내왔다.

 -사무실이 멋지네. 잘 지냈어?

 -멋지긴요. 다 쓰러져 가는데요. 저도 힘든데 형님이 예전에 제게 도움 주신 기억도 있고, 누나가 하도 부탁해서 형님 모신 거예요.

 -아아, 그렇지. 옛날에 자네 힘들었을 때 내가 돈 해 준 적이 있었지. 역시 어려울 때 돕는 건 가족뿐이지. 고마워.

 -아뇨, 아뇨, 돈 해 주신 건 아니었고 이자 쳐서 다 받아가셨죠. 못 갚으면 죽여버린다고도 하셨고. 뭐, 그건 됐고요. 떼는 거 없이 한 달에 이백오십씩 드리기로 했는데 그 정도면 엔간한 중소기업 세후 월급은 될 거에요. 그러니 잘 좀 부탁드려요.

 -어어. 열심히 할게. 나 뭐하면 돼? 2020 비즈니스 플랜 있지? 주식회사면 그 정도는 있을 거잖아.

 -아뇨, 아뇨. 저희 그냥 이름만 주식회사고요, 그래서 그딴 요란한 문서는 없어요. 필요도 없고요. 형님은 그냥 열심히 빌라 다니면서 영업하고 수금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형님 엔지니어 출신이라면서요.

 -어어, 그랬지. 이십 년 전이긴 하지만.

 -뭐, 간단한 거니까. 빌라 전등이나 CCTV 고장 나면 그거 갈아주시면 돼요. 하실 수 있죠? 저도 하는데요 뭘. 그리고, 영업이나 수금 성과가 안 나오면 같이 일 못 하게 될 수도 있는데, 아, 협박하는 건 아니고요, 정말 어쩔 수가 없어서 그래요. 제가 원래 노인들하고는 일 안 하기로 다짐했는데, 예, 뭐 그럴 일이 좀 있었어요. 아무튼 누나 부탁이라 형님 모신 거니 잘 좀 부탁드려요.

 -내가 노인은 아니지.

 -아뇨, 아뇨. 은퇴 당했으면 노인이죠.

 여보, 동생이 경영관리를 좀 도와달래. 처남이? 비즈니스 매니지먼트를? 그거라면 내가 또 잘 알지. 아내의 말에 신이 나서 힁허케 달려왔는데 상상과 자꾸만 달라지는 상황에 당혹하고 처남의 말에 울컥했으나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오봉춘은 가만있었다. 그럼 나 뭐부터 하면 되나? 주차장에 가면 튼튼주택이라고 붙어 있는 차 있을 거예요. 그거 타고 관리 빌라들 쭉 돌아보시고 위치 좀 외워오세요.     

 오봉춘은 미스 곽이 뽑아준 목록을 들고 차에 올랐다. 서울에만 58년을 살아온 그였으나 가좌동은 도무지 경험이 없는 동네여서 그에게는 그저 낯선 고장일 따름이었다. 일방통행 길을 모르고 들어서다가, 주차를 잘못해서, 엉뚱한 빌라에서 기웃거리다가 부모와 조상 욕을 배 터지게 먹고 자신의 존엄을 의심하며 모처럼 긴 하루를 보낸 오봉춘이었다.     

 튼튼주택은 가좌동을 주 활동지역으로 인근 이백여 개의 건물들을 관리하고 있다. 이백여 개라고 해 봐야 건물 하나에서 나오는 관리비가 사십만 원 정도고 직원이 세 명에 스무 명의 청소부와 청소용품과 엘리베이터 관리 업체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 등을 제하면 확실히 빠듯해 보이긴 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과거 돈을 못 갚으면 죽여버린다고 했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오봉춘은 처남이 자신에게 괜한 용심을 부리며 구박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처남에겐 좀 억울한 측면이 있다.

 “형님, 미스 곽 어디 갔어요?”라고 물었더니 종일 보이지 않다가 해 떨어질 즈음 나타나 “처남, 여기.” 하며 미숫가루를 불쑥 내민 일은 고막의 노후화에서 기인한 사소한 헤프닝으로 귀엽게 봐 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수금을 부탁했더니 “밀린 관리비 이백 오늘 내로 입금 바랍니다. 입금 안 되면 청소 안 갑니다.”하고 히끈 끊는 바람에 처남이 찾아가 싹싹 빌어야 했다든가, 초정밀 설비 회사 엔지니어 출신이라고 으름장을 놓더니 전등을 갈다가 합선을 일으켜 두꺼비집을 태워 먹는 바람에 기십만 원을 배상한 것도 모자라 “아니, 이 집이 완전 부실공사라 그래요. 원래는 퓨즈가 나가야 되는데... 이거 감전사고 날 뻔한 걸 제 덕에 미리 발견한 겁니다.”라고 말하여 처남이 또 찾아가 싹싹 빌어야 했다든가 하는 사고들이 사흘 걸러 한 번씩 터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처남은 그의 입사 석 달 만에 누나에게 전화하여 그간의 하소연과 해고를 함께 통보했는데, “딱 한 번만 봐주라-”, 거절하려면 향후 가족 인연 관계의 전면 중단을 고려해야 할 것 같은 협박에 가까운 부탁을 시작으로, 누나가 꽁꽁 언 개울가에서 얼음 깨고 퍼낸 시린 물로 네놈 똥기저귀 빨아가며 업어 키웠는데...를 거쳐 마지막엔 앙앙 울어 젖히는 통에 결국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켜보고 안되면 진짜 그만.”이라고 어쩔 수 없이 말하며 해고를 유보했다. 이 모든 사정을 모르는 오봉춘은 그날 저녁 “종일 숨 가쁘게 일했더니 출출한걸, 치킨 시켜 먹어야지.” 히죽이며 배달앱을 켰다가 등짝을 후려 맞고 훌쩍이다 잠들었다.

 다음 날, 처남은 오봉춘을 불러 ‘마지막 일’을 주문했다.

 -형님. 저기 우콰콰 하는 언덕빼기 쪽 아시죠?

 -알지.

 -거기 금호빌라랑 하여튼 거의 열 개 빌라에서 동시에 민원이 들어왔는데 그것 좀 살펴봐 주세요.

 -응. 뭔데?

 -아니, 청소를 다 했는데도 자꾸 빌라 주변에 쓰레기가 나뒹군다는 거예요.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를 해주는데, 청소하고 나서 누가 쓰레기를 버리고 도망가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럼 그놈을 잡아 족치든 청소를 똑바로 하든 알아서 하라는 거죠. 제가 청소하는 분들께 물어보니 분명 청소는 똑바로 했다고 사진까지 찍어 보내 왔고요.

 -그럼 누가 버리고 도망갔다는 건가? 일단 알았어. 내가 CCTV 찾아볼게.

 -예. 해결 좀 부탁드려요. 그러셔야 할 거예요.

 -응?

 -아니에요.     

 다음날, 빌라를 돌며 CCTV를 수거한 오봉춘은 사흘 밤낮 식음을 전폐하고 CCTV에 몰두했는데, 월급 좀 준다고 유세를 떠는 처남에게 배알이 꼿꼿했기도,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위협받는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했다. 결기를 다지며 CCTV만 노려본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차... 찾았다!

 -어, 형님. 찾으셨어요?

 오봉춘이 찾아낸 영상에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가 빌라 주민들이 내어놓은 분리수거 비닐봉투를 기웃거리다가, 빠루처럼 생긴 쇠막대기를 꺼내 들더니 별안간 날려 치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어익 씨, 깜짝이야. 엔간한 프로골퍼보다 과감한 샷을 날린 그녀는 찢어진 봉투를 꼬챙이로 쏘삭이며 박스나 캔, 고철, 유리병만 쏙쏙 골라 빼갔다.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는 터진 봉투에서 흘러나온 자질구레한 오물 조각들이 낭자했고 그녀의 개가 코를 킁킁대며 봉투에 다가가 얄궂은 동작으로 한 번 더 패대기치며 흩뿌리는 모습도 찍혀있었다. 볼일을 마친 그녀들은 다시 리어카를 끌고 사라졌다가 다음 빌라의 CCTV에 다시 나타났다.

 -맞지?

 -네. 맞는 것 같네요.

 오봉춘이 자, 나 밥값 했지? 하는 표정으로 고단한 눈알을 문지르며 처남을 쳐다봤을 때, 처남은 “이제 잡기만 하시면 되시겠네요.”라고 말하며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어? 아니, 내가 경찰도 아닌데 잡아서 어떻게 해. 어떻게 하시면 안 되죠. 잡아서 신원 확인하고 구청에 민원을 넣으시든 경찰에 경범죄로 신고하시든 조치를 해야죠. 저도 소화전에서 물이 쫙쫙 나오는지 확인해 달라는 둥, 엘리베이터 속도를 올려달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일들 해결하면서 여기까지 온걸요. 한 달에 이백오십씩이나 받으시는데 이쯤은 해결하셔야죠.

 그리하여 오봉춘은, 사람 팔자 무애자재하다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스님들의 선문답을 상기하며 잠복을 하게 되었다. 사흘째 되던 날, 마침내 그는 할머니와 조우했다. 어! 찾았다! 저저! 또 저러네. 오봉춘이 뛰쳐나가 이제 막 봉투를 후려치려는 손목을 낚아챘을 때 그녀의 반응은 예상과 사뭇 달랐는데, 할머니는 순순히 손에 힘을 풀고 꼬챙이를 바닥에 얌전히 내려놓으며 씨익 한 번 웃더니 거기에 안심한 오봉춘이 마주 웃는 순간 개를 끌어안고 팍 주저앉아 악장을 치며 주변 대중들의 사랑과 관심을 촉구했다.     

 -으아악! 이 오사리 잡놈이 할멈을 죽이네! 우리 백구를 훔쳐 가네!     

 아무리 어수선한 시절이라지만 아직까진 부위자강, 장유유서 같은 유교적 가치 판단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 규범을 강박적으로 암송하며 성장한 세대가 청, 장년층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할머니의 악다구니는 유효했다. 사람들이 오봉춘에게 손가락질하며 야유했고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기운 좋아 보이는 청년 둘이 오봉춘에게 다가와 어깨를 잡으며 거, 어르신께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자신의 경우 바름을 과시하는 통에 그는 할머니를 그냥 보내야 했다. 아 어쩌지.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도통 방법이 떠오르지 않던 오봉춘은 어휴 한숨을 쉬고 흩어진 쓰레기를 하릴없이 정리하며 졸연히 희미해지는 할머니의 윤곽을 막막하게 좇았다.

 그날은 기상청 홍보 담당관이 예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더울 테니 각오 단단히들 하라는 보도자료를 무시로 살포하던 즈음으로 그저 덥다는 말로는 도무지 부족한, 작열하는 태양에 살갗이 뜨끔거리던 날이었다. 할머니와 잠시 부대낀 것만으로도 주체할 수 없이 땀을 뽑아내던 오봉춘은 자신의 그림자를 이고 가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 그녀가 에멜무지로 파지가 쌓인 묵직한 리어카를 끌고 자칫거리는 모습을 아득하게 바라보았다. 오전 두어 시간 동네를 종횡으로 휘청이며 폐품을 모은 할머니는 컨테이너에 양철지붕을 얹은, 집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폐지 상자처럼 보이는 그녀의 공간 앞에 리어카를 세우고 그 안에 폐품을 부려놓았다. 언제까지고 끈적일 것만 같은 수상한 액체가 진득하게 떨어지건 말건 그냥 쑤셔 넣었으니 집 안 꼴이 말이 아닐 것은 자명해 보였다. 할머니는 열사 가득한 집안에 쪼그려 앉아 임리하는 땀으로 간을 맞춘 맨밥에 물 만 것을 후루룩 자신과 개에게 급여하더니 다시 길을 나섰다. 아까 흘린 물기를 밟았는지 나오던 중 잠시 휘청였다.     

 어 참 힘들게 산다.

 어 진짜 불쌍하네.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동정하면 안 된다는 말들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멱살을 잡아끌어 네가 직접 한 번 봐라, 그 말이 곧장 안 나오나, 사뭇 한 소리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을까. 아, 난 회사에 있었지. 거기에 있다 보면 다들 회사원처럼 사는 줄 착각하게 되지. 파지 줍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 모두가 파지를 주우며 힘겹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래서 큰 싸움 없이 세상이 그럭저럭 굴러가는 건가? 방금 억은 그냥 넘어 보이는 차를 쿵짝거리며 지나간 새파란 놈을 봐도 내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런데 내가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닌데. 오봉춘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그녀는 우콰콰하는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으레 다니는 길이니 뭔가 요령이 있겠거니 생각했으나 그런 건 없었고 핸들이 고장난 팔톤 트럭처럼 좌우로 비틀걸음을 치다가 결국 전봇대에 사정없이 갖다 박더니 자빠져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어유, 저저. 오봉춘은 가까이 가지도, 떠나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다 다가섰다. 할머니는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늘켜 울고 있었다.

 -어어. 할머니 왜 우세요.

 -뭐여. 또 너여? 또 한바탕 하자는 겨?

 -아뇨, 아뇨. 할머니가 넘어져서 안 일어나니까 와봤죠. 왜 우세요.

 -아프고 괴롭고 서러우니까 울지 이 새끼야. 니가 해 봐라.

 할머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오봉춘은 그녀를 일으켜 놓고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편의점에 뛰어가 얼음 컵과 생수를 사다 건넸다. 할머니는 생수를 받자마자 꿀꺽꿀꺽 들이켜더니 하- 신음처럼 포만을 내쉬고, 나머지는 개에게 먹이고, 얼음 컵을 뜯어 얼음을 씹고, 그러고도 남은 나머지는 머리 위에 탈탈 털어 알뜰하게 다 썼다.

 -할머니.

 -왜. 봉투 찢지 말라고? 그럼 나는 어떻게 먹고살라고. 난 느리단 말이여. 잠깐 어물쩍거리면 다른 영감들이 다 쓸어가 버리는데, 그럼 나는 봉투 찢어서 나오는 거 말고 주울 게 없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겨.

 -아뇨, 아뇨. 그 말 하려던 거 아니고요, 그냥 이거 하루 종일 모아서 얼마 버는지 궁금해서요.

 -사람들은 나한테 물어볼 게 그것 밖에 없나벼. 복지사 아줌마도 그렇고 하여간 나만 보면 그걸 물어. 그게 궁금해?

 ...

 -키로당 사십 원. 내가 하루 종일 모으면 백오십키로. 깡통하고 이것저것 하면 한 칠천 원 벌지.

 -백... 오십키로를 짊어지고 다닌다고요? 이 땡볕에?

 -왜. 니가 대신 해 줄라고?

 -아... 아니요. 수고하세요. 조심하시고요.

 다음 날, 오봉춘은 처남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고 그녀의 딱한 사정을 읍소해 보았으나 처남도 답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그냥 두자고요? 그러다 거래 다 끊겨요. 그럼 어쩌지. 우리 회사에서 나오는 파지랑 세제 통 모아주고 하지 말라고 해 볼까? 그거 얼마나 된다고요. 음, 제가 한 번 만나볼게요. 그 할머니 다시 보시면 저한테 바로 전화 주세요.

 오봉춘은 다시 잠복하며 기다린 끝에 할머니를 발견했다. 어제 드러누워 낑낑 울던 모습과 또 다르게 봉투를 후려팰 때는 기운 넘치는 모습이 착종되어 잠시 헛갈렸지만, 일단 보자마자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할머니! 잠깐만요. 제가 오천 원 드릴 테니 오늘은 하지 마세요. 오봉춘은 그를 보자마자 날을 세우는 할머니를 오천 원으로 불식하고 처남을 호출했다.

 -이 분이에요?

 처남은 절망과 고단으로 절여놓은 장아찌 같은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얼굴을 숙고하더니 입을 뗐다.

 -할머니. 이거 하면 하루에 칠천 원 번다면서요.

 -그래서.

 -저기, 할머니. 이거 하지 말고, 아침에 저희 사무실 오셔서 청소도구 받아 가지고요, 제가 빌라 몇 군데 알려드릴 테니까 거기 청소하고 하나 청소할 때마다 만 원씩 받으시는 거 어떠세요? 부지런히 하시면 두 시간이면 끝날걸요? 한 달에 삼십만 원어치 일거리는 보장해 드릴게요. 일 안 하시는 날은 폐지를 줍든 쉬시든 상관없고요, 다만 이거. 봉투 찢는 거. 이건 그만하시는 걸로요.

 한군데 청소에 이만 원씩 쳐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오봉춘은 이야, 처남 이거 개새끼네, 생각했지만 사장이 하는 일이고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었으므로 잠자코 있었다. 할머니는 고정 수입 삼십만 원이 생긴다는 생각에 안색이 단박에 환해지더니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처남 또한 자신의 미끈하면서도 서정적인 처사에 감동하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어... 다 잘 된 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오봉춘이 고개를 갸웃했다.

 청소를 잘 배우고 있는지 당분간 살펴보라는 처남의 명에 따라 오봉춘은 며칠 동안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관찰했다. 할머니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꼼꼼하고 야무지게 청소를 해냈고 처남도 만족하였다. 평소와 달라진 할머니의 진로에 개가 당혹해하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할머니. 허실 만하세요?

 ...

 -아니, 왜 우세요.

 -너무 좋아서. 내가, 요 앞 골목에서 파는 김치만두가 정말이지 너무너무 먹고 싶었는데, 그동안 못 사 먹었거든. 근데 어제 딱 사 먹은겨. 봉춘 씨 덕분에... 고마워, 봉춘 씨.

 -아니, 뭐 그런 걸로 우세요... 청소 잘 배워두세요. 꾸준히 잘하시면 점점 일거리도 늘려드리고 돈도 올려드릴게.

 다른 청소부의 절반 밖에 안 주고 힘껏 부려먹는 주제에 이런 마음을 함부로 받아도 되는 것인가. 오봉춘은 하늘을 우러러 몇 점 부끄러워하다가 종종 김치만두를 할머니의 집 문 앞에 걸어두고 달아나는 것으로 마음의 가책을 기탁하곤 했다.     

*     

 계절이 바뀌어 자못 선선한 바람이 간간이 섞여 불기 시작하며 파지를 줍는 일과 빌라를 청소하는 일을 비롯한 모든 고단한 것들이 조금씩 할 만해져 가던 즈음이었다.

 -형님, 요새 그 할머니 안 나오는 거 아세요?

 -어어. 안 그래도 찾아가 보려고 했어. 핸드폰 같은 거 없다고 했는데...

 -일단 청소 빵꾸 나면 안 되니까, 다른 분들 보내고 있거든요. 알고 계시라고. 설마 돌아가신 건 아니겠죠?

 -야, 넌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하냐.

 -지금 저한테 화내시는 거예요?

 -아니?     

 그날 저녁, 오봉춘은 김치만두를 사 들고 할머니의 컨테이너를 찾아가 문을 두들겼으나 침묵만 완강했다. 만두를 문고리에 걸어놓고 퇴근했다. 다음 날 다시 컨테이너를 찾아간 오봉춘은 걸어 둔 만두가 없어진 걸 보고 할머니가 말도 없이 청소 일을 그만둬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걸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컨테이너 밑바닥에서 비쩍 마른 개 한 마리가 불쑥 기어 나왔다. 오봉춘은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이 할머니 어디 갔니, 말을 걸었다. 그러던 중 개의 입가에 김치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컨테이너 밑을 살펴보니 잡아 뜯긴 만두 상자가 거기에 있었다. 그걸 본 오봉춘은 몇 가지 추측을 떠올렸는데, 자꾸 처남의 말이 상기되며 상상은 점점 불온한 쪽으로 내달렸고 급기야 울상을 짓더니, 문득 개를 번쩍 안아 들었다.     

*     

 집에 아무도 없는 것으로 착각한 오봉춘(63세)이 개를 업고 백구야, 백구야 하며 거실을 빙글 돌다가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들어온 그의 아내와 딱 마주쳤을 때, 아내는 차분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핸드폰을 꺼내 오봉춘의 사진을 찍은 뒤 장녀와 차남에게 전송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느이 부친께서 드디어 노망이 나셨다. 두 남매는 앞으로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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