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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지 Jun 14. 2023

16주 하고 5일

D-163

조용한 입덧


아직 내 배는 조금 나와서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가끔 배가 세-하거나 쓱-하는 쌉싸름한 느낌이 아랫배를 감돌지만. 어제 브런치작가를 신청하고 나서 바로 다음날 선정될 줄은 몰랐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정만 갖고 생겨버린 일이 꼭 나의 임신 같다. 오늘은 16주 5일 D-163 일 째이다. 하루하루 숫자 하나가 줄어가는 것이 아직까진 느리게만 느껴진다. 꼭 어릴적 나는 언제 어른이 돼서 잠을 실컷 잘까 하는 미래를 모르고 하는 말들처럼. 


임신을 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역시 직접 해봐야 말을 꺼낼 수 있는 것 같다. 누가 내 머릿속에 심어놓은 이미지인줄은 몰라도 임신은 아름답고 편안하고 부드럽고 폭신한 베게 같았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저 낳아주신 엄마께 감사하다. 5주가 지나 병원에서 처음 초음파 사진을 한 장 줬다. 딸랑 사진만 주기에 이렇게 임신이 하찮은 일인건지 괜히 서운했다. 덜렁덜렁 사진을 들고 차에 탔다. 남편과 사진을 한참 보다가 “먹고 싶은거 먹으러 가자!” 라는 말에 괜히 입맛도 없었다. 이게 바로 입덧...? 드라마에서 보면 임신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입덧발싸!를 하지 않나. 나에게 입덧은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먹고 싶은게 없다니 내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입술이 다 부르튼게 보인다. 수분을 뽑아가기 때문도 있지만 안 그래도 울퉁불퉁한 감자가 껍질이 말려 더 못생겨지는 중이였다. 까실까실한 입술을 매만지며 콜라겐을 먹어야하나 싶다가도 임산부콜라겐 이라고 검색을 하다 그만 뒀다. 보는 사람마다 피곤해 보인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아마도 푸석한 피부와 입맛이 없어 살짝 빠진 볼살 때문이겠지. 하지만 먹고 싶은게 없는 거지 먹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안 먹으면 속이 뒤집어지고 먹으면 소화가 안 되지만 안 먹는 것 보단 먹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입덧이라고 해서 우엑-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 나의 입덧은 아주 조용하게 왔다갈 예정인가보다 라고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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