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고향임을 확실히 느꼈던 어느 날의 기록
어릴 적부터 서울 종로의 한복판, 복작한 혜화동의 수많은 인파를 뚫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그 여정을 버거워 했었다. 고3때도 사람 없고 한적한 대학교를 가겠다고 해놓고는 술과 맛의거리로 유명한 2호선의 어느 학교에 입학했다. 임용고사를 준비할 때에는 당연히 서울을 선택했지만, 서울에서 일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사실 합격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없었어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지른 곳이 서울이었다. 삿포로에서 한 달 정도 체류했던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서 '시험에 낙방하면 일본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일본 기업 모집요강을 보고 있다가 합격 소식을 들었다.
합격한 후에도 탈서울을 향한 욕구는 계속되었다. 청주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까, 세종으로 갈까,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모든 마음을 헤아리는 친구가 있는 제주도로 갈까 고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서울은 답답하다고, 사람 많아서 복잡하다고 하소연을 했다.
언젠가는 서울을 떠나 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다짐하고 있었고, 그렇게 서울에 머물러 있었다.
인생의 큰 전환점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면서, 비로소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삭막하고 정 없고 분 단위 초 단위로 살아야 하는 메가시티를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살 생각에 설레고 들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살겠느냐며 걱정하고, 만류하고, 회유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를 고마워하고 귀찮아하며 즐겁게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끝내고 금요일 저녁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샀다. 문득 '이제 이사가면 교보문고도 이렇게 편하게 못 오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집에 오는 내내 울었다.
그 후부터는 내가 걷고 움직이는 일상의 모든 공간이 다르게 보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그동안 그렇게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단 한번도 교보문고가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나는 책을 읽고 싶을 때, 공부할 일이 생길 때, 문구류 쇼핑을 할 때마다 망설임 없이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그 수많은 인파와 교통체증과 초 단위의 삶을 사는 직장인들이 밀집한 빌딩숲으로 제발로 걸어 들어갔던 것이다.
쓸쓸한 마음에 '고향(故鄕)'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자기가 태어 나서 자란 곳', 그리고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친절히 알려주는 국어사전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헛헛했다.
나에게 서울은 큰 도시이고, 여유가 없는 삭막한 회색지대이지만 그 한복판에는 내가 언제든 갈 수 있고 가고 싶어 하는 마음 속 쉼터인 교보문고가 '당연하게' 자리한 도시이기도 하다. 는 것을 32년 만에 마음으로 느꼈다.
그렇게 서울은 나에게 도시가 아닌 고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