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로플 Oct 10. 2023

중2담임 활동 기록 - 상벌점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어떻게든 긍정적인 습관을 만들도록 도와주고 싶은 담임의 고군분투 (1)


  상벌점제는 학생 인권이나 교육적 효과, 실효성 등으로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단점과 장점이 뚜렷하기에 교육 정책 또는 시류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수면 위로 급부상하기도 하는 제도이다.


  어쨌거나 지금 내가 재직 중인 학교에는 상벌점제가 남아 있다.

상벌점제를 학교 차원에서 시행하는 경우라면, 교육 공동체가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상점 및 벌점 기준이 정해져야 하며, 규정으로 정해졌다면 교육공동체 모두가 일관적인 기준으로 상벌점을 부여할 경우 교육적 효과가 크다.


  다만 현실적으로 위의 내용이 지켜지기가 아주 어렵다.


  학생 입장에서는, 1학년 때에는 벌점 받는 것 자체가 매우 스트레스이기도 하고, 상점을 잘 받으면 부모님이 뿌듯해하실 것이라는 기대감에 열심히 상점을 모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보통 공부를 잘하거나 체육을 잘하는 등 성과가 뚜렷한 아이들이 상점을 쉽게 받는다. 그리고 규칙에 순응하거나 꾸준히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과제를 달성하기 어려운 성향의 아이들은 수업 중 장난을 치고, 장난을 친 아이들은 벌점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장난기 많은 아이들은 '벌점을 많이 받는' 아이가 되어 친구들의 제보(신고) 대상이 되기도 하고, 무엇만 하려고 하면 벌점을 받으니 학교에 대한 미운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벌점을 많이 받는 아이들은, 보호자와 사이가 좋은 경우에는 상점을 받아 벌점을 상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1학기까지는 그 방법이 효과가 있다. 하지만 어른에 대한 불신이 높은 사춘기의 정점을 달리는 아이이거나, 또는 정말로 학교 밖 청소년이 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아이이거나, 이미 학교 밖 청소년이 되어버린 아이에게는 상벌점의 효과가 미미하다. 벌점을 받아서라도 반항하고 싶을 만큼 감정의 응어리가 크거나, 학교에서 상점을 많이 받아 모범생으로서 인정받을 수 없음을 인지하고 다른 방법으로 인정받고 싶어 학교 밖으로 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로는 벌점을 받지 않는 선에서 계속 교칙을 어기는 아이들이 있다. 벌점은 받고 싶지 않지만 장난은 치고 싶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경우에 해당하는데,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벌점을 받게 되면 부모님이 속상해하신다는 걸 매우 잘 안다. 그래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다는 강한 효심이 발동하여 선생님을 봐 가면서 장난을 치거나 교칙을 어긴다. 이 유형의 아이들은 화가 나서 유리창을 깨고 싶지만 그러면 크게 혼나는 걸 알기에 교실 문의 손가락 끼임 방지 고무를 뜯거나 방충망을 뜯는다. 치마를 짧게 입고 싶고 잔뜩 화장하고 싶지만 그러면 크게 혼나는 걸 알기에 이 아이들은 시험 기간에만 몰래 사복을 입고 등교한다. 담임교사의 입장에서는 이런 행동이 가장 얄밉고 화가 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어디다 화를 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크게 엇나갈 대범함도 없는, 그래서 아직은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하나뿐인 아들딸의 사춘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학교에서 벌점을 받았다는 문자를 받으면 갑자기 머리로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다. 보통 1학년 때 "보호자"로 등록한 학부모님(주로 어머님)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가는데, 계속 문자를 받는 학부모님은 학부모님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다른 보호자께서는 그 심각성(심리적 압박감)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아 상벌점이 가족 간 갈등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 아이들은 벌점을 받는 항목에서 계속 벌점을 받는다.


  장난기가 많은 아이는 '수업방해', 늦잠을 많이 자는 아이는 '지각', 외모에 관심이 부쩍 생긴 아이는 '사복 착용, (가끔은) 화장' 등으로 벌점을 받고, 학부모님께는 단문(SMS)으로 간략하게만 연락이 가기 때문에 학부모님은 '우리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나' 매일 궁금하고, 하지만 아이에게 물어보면 아이는 짜증을 내거나 별 거 아니라는 반응이고, 어떤 경우에는 '그 선생님만 벌점을 주신다'며 선생님 푸념을 하는 아이의 반응을 들어야 한다.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며 괜히 선생님이 미워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이가 집에서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매스컴에 보도되는 '일진', '문제아', '비행청소년'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을 느끼실 듯하다.



  교사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상점 또는 벌점을 주고 그것을 입력하고 지도하는 것 자체가 수업 외적인 업무로 다가온다. 그리고 청소년기는 아직 인지적, 심리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과정이기에 상벌점제를 통해 자신의 생활 습관을 성찰하기보다는 '벌점 없애기'에 급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벌점을 자주 받는 자유분방한 아이들은 벌점이 누적되면 교무실을 기웃거리며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겠다고 자청하거나, 상점을 잘 주시는 (너그러우신) 선생님들께 가서 일거리를 달라고 하는 편이다.)


  그리고 상벌점을 관리하는 업무 담당자는 아이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도 항상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사실 생활지도는 모든 교사가 조금씩 분담해서 할 때 가장 효과가 좋지만, 교사 한 명이 해야 할 자잘한 업무들이 많고 심리적 소진도 크다 보니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담임교사 또는 교과교사가 큰 마음을 먹고 아이들을 지도하려고 해도, 현실이 녹록지 않다.

  

  또한 아주 드문 경우지만 아이들과의 래포 형성이 어려운 교사들이 상벌점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경우 교사-학생 간 감정싸움의 방법으로 상벌점이 악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담임교사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잘못을 하긴 했는데 왜 억울해하는지 이해가 될 때도 있다. 그리고 담당 교사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느낌이 있으나 개선해야 할 부분을 지도한 것이고, 동료교사이기에 담임교사가 굉장히 난처함을 느낄 때가 많다.



  상벌점제를 사용하든 그렇지 않든, 잘못된 행동을 지도하려면 훈계를 해야 하고, 이로 인해 아이든 교사든 학부모든 감정적으로 속상함을 느끼는 상황이 생긴다. 그런데 이 '속상함'이 경우에 따라서는 아동학대(정서학대)가 되고, 학부모 민원의 소지가 되기도 하고, 교사 간 갈등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교사의 경우 정서학대로 신고만 당해도 직위해제가 될 수 있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학부모 민원 또는 동료교사끼리의 다툼의 소지가 발생하면 다른 아이들을 위해 수업을 연구하고 교육활동에 집중할 심리적 여유가 줄어든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 해도 지도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악성 민원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아이들의 생활 습관을 이 잡듯이 지도해 보려고 애쓴 적이 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너무 지쳐서, 나의 일상을 지키고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 소중히 하고 싶어서 분명히 지도해야 할 것도 못 본 척하고 넘어간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맡은 아이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긍정적인 생활 습관을 기르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기대감과 희망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방법을 강구해 보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