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금동이네 01화

금동이네 첫 번째 이야기

금동아 반가워

by 금동이엄마


금동이는 태명이다.


보통과 다르지 않던 어떤 날, 차 안에서 신랑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로 막힌 도로를 뚫고 지나가는 도중에 구수하고 포근하니 금동이라는 이름 좋지 않냐고 말한 게 태명이 되었다.


이후 우리 아기의 태명을 들은 주변에서는 전원일기에 나온 이름이다, 우리 시 아버지 성함이 금동이시다, 한 번 들으니 귀에 쏙 박힌다, 너네랑 진짜 잘 어울린다 라는 반응이었고, 인터넷에도 검색해 본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인터넷 사전에 등록된 단어였다. 금쪽같은 내 아이와 외둥이의 합성어라고 하는데 정말 우리 부부에게는 금쪽같은 아이여서 더 찰떡 같이 맞아떨어졌다.


사실 금동이는 여러 번의 아픔 이후 찾아온 참 특별한 아이다. 신혼 3년은 즐기고 아기를 가지자고 했는데 1년 만에 아기가 생겼었고, 그 이후부터 아기 욕심이 생겨서 노력했지만 자꾸 상처만 더 해질 뿐이었다. 더 이상 신혼도 못 즐기고 우리 이렇게 보내지 말자 결론을 내리고선 배란일을 알려주는 어플도 지우고 못 마셨던 맥주도 마시고 마음 편히 지낸 지 한 달 만에, 우리의 세 번째 결혼기념일에 선물처럼 와 주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처음 정했던 딱 3년째 되는 날이었다.


금동이는 큰 이벤트 없이 뱃속에서 잘 자라주었다. 그리고 나도 금동이랑 함께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기록하며 거대해졌고, 이대로 가다가는 금동이도 엄마도 힘들다고 해서 예정일보다 열 하루 앞당겨 금동이를 만나기로 정했다. 하루 전 날까지는 정말 실감이 안 나다가 당일 날 어찌나 떨리던지,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미리 와 있었던 친정식구들 앞에서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수술이 들어가기 전에 이것저것 적고 정하는 게 많았는데, 수술 중간에 잠깐 깨워줄 수 있다며 그때 아기를 볼 거냐고 물어서 나는 안 본다고 했었다. 신랑도 없이 그 수술실에서 나 혼자 눈을 뜨면 너무 무서울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참 후회스럽다. 수술이라 진통도 한 번 못 느껴보았는데 태어났을 때의 첫 모습도 못 봤으니 아쉬움이 남았다.


아주 잘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했지만 어지러웠고 많이 추워하며 눈을 떴는데 날 보고 울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신랑이 보였다. 고생했다 사랑한다 또 뭐라 뭐라 하는 것 같았는데 사실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신랑이 금동이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내가 보자마자 왜 이렇게 못생겼냐고 했었다. 태반이 덜 닦인 빨간 얼굴이 꼭 퉁퉁 불은 고구마 같았다.


이후 알게 되었지만 신랑이 회복실에서 찍었던 내 모습이 더 불어 터진 호박 같았더라.


고구마 같던 그날의 금동이, pm 12:12 그리고 3.42kg

그날 난 계속 누워있어야 했고, 나만 빼고는 모두 정해진 면회시간에 금동이를 보고 왔었다. 가족들이 찍어 온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자니 성에 차지 않아서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었지만 내 몸뚱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미처 난 몰랐다.


후배 앓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그리고 무통주사를 맞고 있어도 아프다고 말하면 진통제를 추가로 투여할 수 있다는 것도. 밤새 끙끙거리며 참아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그 말을 해주실 때 정말 똥 멍청이가 된 느낌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수술해주신 담당 선생님이 오셨고 미션을 주셨다. 걸어서 화장실 다녀오기, 그리고 소변보기였는데 그게 뭐 어렵냐고 당장 일어나려는데 진짜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다. 꼭 쌀 가마니 몇 포대를 등에 얹어 둔 것처럼 무겁고 진짜 무거웠다. 미션도 미션이지만 오늘 내가 못 걸으면 내일 금동이를 봐야 한다기에 정말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고 노력했고 처음으로 내가 엄마가 되긴 되었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1월이라 많이 추웠는데도 나는 더웠다. 우리 엄마는 뼈에 바람 든 다고 내복 입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쉬지도 않고 했지만 맨다리에 수면 양말만 신는 걸로 타협을 보았고, 미션을 받은 지 1시간 정도 땀까지 흘리며 내 몸과 씨름하다가 어기적 어기적 걷는 데 성공했다.


난 그렇게 하루 만에 내 아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첫 엄마의 모습은 예쁘진 않더라도 최소한 내 본모습이라도 갖추고 보여주고 싶었는데 워낙에 기름이 지는 머리카락인 데다가 얼굴이 터질 듯이 부어 눈도 반 밖에 떠지지 않아서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래도 면회시간 전에 거울 앞에 서서 20분이나 공들여 머리를 매 만졌다. 수액걸이에 의지하며 걸어가 신생아실 앞에 섰고 내 이름과 금동이 이름이 적힌 팔찌를 보고 신생아실 선생님께서 커다란 유리창 앞으로 금동이를 데려와주셨다.


그 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못생긴 표정으로 남 앞에서 목 놓아 울어버렸다. 신생아실 안에 있던 선생님들이 모두 놀라서 쳐다보셨는데도 나는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안녕 269일 만에 만난 내 금동이야, 내가 너의 엄마야


예쁘다 소중하다 라는 단어가 사람이었다면 금동이었겠구나 싶었다. 너무 예쁘고 작고 소중하고 내가 꼭 지켜내고 싶고 꼭 그럴 수 있는 힘이 어디선가 마구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금동이를 낳고 이틀 만에 도치맘 대열에 올라서는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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