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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n 24. 2021

육아에 정답이 어디 있어


햇살이 반짝반짝 좋은 날 우리 집 개들과 함께 잠시 여유를 즐기며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다. 바람도 없고 미세먼지도 없는 이런 날은 온 동네 아이들이 다 쏟아져 나와 놀이터마다 가득하다. 자전거를 타며 와르르 몰려가는 학생들과, 아장아장 걸음마 하는 아이들, 그리고 나처럼 개와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활기로 축제라도 하는 듯 왁자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기분이 한껏 말랑해진 나는 앞서 걷는 개들이 엉덩이를 발랄하게 흔드는 모습만 봐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잃었던 마음의 여유가 충만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20분쯤 걸었을까. 한 남자가 벤치에 앉아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가방은 유모차에 걸려있었고, 유모차 안에는 생후 6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가 누워있었다. ‘아휴.. 우리 하늘이도 저렇게 작을 때가 있었지..’ 1년 반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아득한 전생처럼 느껴졌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분유를 꺼내 젖병에 털어 넣고 신나게 흔드는 남자의 본새를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아빠랑 둘이 나들이 나와서 도시락까지 먹는 아기라니. 귀여워라.      


‘곧 아기는 유모차에서 나오겠지. 그리고 아빠 품에 안겨서 분유를 먹겠지. 쭙쭙쭙 귀여운 아기 입. 잇몸만 있는 아기 입. 오래간만에 보고싶다. 으흐흐흐흐.’     


나는 의도치 않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스리슬쩍 지켜보았다. (소심해서 가까이 가지는 못 하고 거리를 조금 두고 티 안 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분유를 다 탄 남자가 아기를 유모차에 앉힌 채로 젖병을 그냥 입에 꽂았다. ‘어라?’ 아기의 입과 젖병이 거의 90도였다. ‘어머나 저러면 아기가 어떻게 먹지?’ 나는 소리 없이 기함했다. ‘어머 저 아빠 아기 분유 안 먹여 봤나 봐. 어쩜 좋아~’ 내적 호들갑을 떨었다.      


멀리서 언택트로 안절부절못하는 나의 존재를 알 리 없는 남자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젖병을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유모차 손잡이를 기울였다. ‘으엣?’ 그리고 아기가 편하게 누워 분유를 먹을 수 있는 자세를 만들었다. 이제 아기의 입과 젖병은 약 170도 정도. 남자는 아기가 분유를 다 먹을 때까지 그 자세를 흔들림 없이 유지했다. 와우. 나는 그의 신박한 방법에 이마를 쳤다.      


제발 그만 서있고 저리 가자고. 저기서 고양이 똥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낑낑대는 개들에게 이끌려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생각했다.      


아이고 괜히 주제넘게 걱정했구나. 

역시 모든 일에는 각자의 방법이 있는 거구나. 

육아도 마찬가지구나!     


모르겠다. 아기 낳고 처음 병원에서 수유하는 법을 배울 때 거기 간호사 선생님은 말했었다. 나중에 단유하고 분유을 먹이게 되더라도 반드시 아기를 품에 안고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말도 건네면서 수유하라고. 아기가 엄마 냄새도 맡고, 엄마 체온도 느끼고 그렇게 엄마와 교감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아니 근데 이러면 허리랑 목이랑 어깨랑 다 나간...다고요…) 아무튼 그 관점에서 보면 남자는 잘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그 광경을 지켜본 내 마음속에서 다른 말이 들렸다. ‘저 남자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야. 세상에 단 한 가지의 정답만 있을 순 없다는 거 알고 있잖아?’ 아기는 아빠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신나게 뛰어노는 언니 오빠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온몸으로 전해지는 아빠의 근력을 느끼며(?) 충분히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생의 진리가 귓전에 울렸다.      


‘어이어이 남 걱정하지 마시고. 너나 잘하세요.’     


네네. 알겠습니다. 머쓱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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