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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01. 2022

저는 정리를 잘못합니다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06

    저는 정리를 참 못합니다. 횟수도 횟수지만 '잘'하지도 못합니다. 옷을 정리할 때 예쁘게 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싹 옷걸이에 걸어버리는 것이 더 나은 수준입니다. 어지간히도 정리를 못해서 손해 보는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뮤지컬을 보면서 생각 없이 티켓을 잡다 보니 취소 기한을 놓쳐서 취소수수료를 내거나 아니면 입금 기한을 놓쳐서 좋은 자리를 놓치거나 하는 일이요! 제발 정신 차리고 열심히 좀 하자 해서 이래저래 어플도 써보고 저만의 방식으로도 정리하는데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서 실패하고는 합니다. 쉽사리 습관이 바뀌지가 않더라고요. 물건 정리도 잘 못하는데 마음 정리는 오죽할까요.


    마음 정리도 참 못합니다. 처음 코로나가 터지면서 준비하던 일이 엎어졌을 때, 함께 일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모두 마음 정리를 켜켜이 해서 새로운 발걸음으로 나아갔는데 저는 정리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그냥 책상 위에 올려둔 물건 같이, 보이면 정리해야지 하는데 또 까먹고 있다가 순간 마주하면 아 정리해야 지하는 그런 순간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리를 끝내고 발걸음을 옮긴 사람들이 본인들의 길을 만들고 나아갈 때 저는 여전히 제 자리에 머물러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마음을 잘 정리해서 넣어두면 좋을 것을 자꾸 정리를 안 하고 가지고 있습니다. 물건 정리도 마음 정리도 못하는 것이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뻔히도 아는데 이 정리라는 게 저에게만은 참 쉽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옷은 그냥 옷걸이에 걸면 되는데 다른 것들은 어떻게 정리할까요? 아끼고 좋아하는 것들은 예쁘고 적당한 상자를 골라서 그대로 넣어둡니다. 뮤지컬 티켓들은 해리포터 틴케이스에 넣어두는 식으로요! 근데 참 정리를 못하는 사람인지라 그 정리해둔 것도 깜박하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발견하면 또 세상 소중한 것을 찾은 것처럼 들여다보고 반가이 열어보게 됩니다. 근데 그게 때때로 위로가 되기도 하고, 제 나름의 정리 방법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도피가 습관이 되었나 봅니다. 잠시 저에게는 닫아두고 묻어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잊고 있다가 다시 그것을 꺼내는 순간 그것이 힘들고 상처가 되는 순간일지라도 어쩌면 시간이 지난 후의 나는 그것을 비교적 쉽고 온전히 받아들일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의 버거웠던 마음을 또 한 번 저는 슬쩍 밀어 넣어 숨겨둬 봅니다.


    괜찮아요, 저는 원래도 정리를 못하는 사람인 걸요


22.09.30 작은 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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