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레인 Jan 26. 2022

호주 시골에서 새로 사귄 친구네 집에 방문하다

내 인생에서 캥거루를 가장 많이 본 날..

나와 함께 일하게 된 그녀의 첫인상은 깔끔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었다. 전형적인 금발의 마른 체구의 유로피안이었기에 아마 개인주의가 강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내가 겪은 그녀는 정말 정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일하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녀는 모자란 내 영어를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었다. 여전히 지금도 천천히 그녀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낯선 시골에서 그녀와 함께 일하며 덕분에 웃음이 많아지고, 또 지식도 많아졌다.


호주 시골에서의 생활은 단조롭다. 일이 끝나면 5분 거리의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하거나 한참을 앉아서 풍경 감상을 하며 쉬고 오고는 한다. 백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껴있는 동양인인 나는 그녀들의 배려와 사랑, 이해심으로 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100%는 아니지만 어딜 가나 호주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는 참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러면 좋으련만.. 한국 사회의 잣대와 툴이 나에게는 아직 어렵더라.


호주 여인네들과 일을 하면서 이 단조로운 시골에서 어디가 놀러 가기가 좋은지, 혹은 맛집에 대해서 한참 모여서 수다를 떨고는 한다. 또는 우리가 일하고 있는 미술 분야에 대한 팟캐스트를 듣고 토론 아닌 토론의 장을 펼쳐보기도 한다. 뭐랄까, 시드니와는 다르게 나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세계였다. 확실히 사람들이 시드니에서보다 여유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점심을 먹으려면 카페까지 10분을 걸어가야 하는데 하필 이날은 엄청나게 유독 더운 날이었다. 마침 점심 도시락이 없던 그녀에게 내가 메밀 국수를 대접해주었다. 그저 내 점심을 부엌에서 만들면서 메밀면을 조금 더 삶아서 줬을 뿐이다. 호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호주 사람들에게 '음식'을 해준다는 것이 난 언제나 참 어려웠었다. 낯선 것들을 싫어하고 꺼려하는 사람들을 상당히 많이 봤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기에 매우 이해한다.

어쨌든, 그녀는 평소에 유독 나의 '음식'들에 대해 흥미가 많았고 질문이 많았기 때문에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음식을 해줬었다.


그녀는 처음 먹는 메밀국수를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그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입 짧을 것 같았던 그녀가 다 먹고 국물까지 후르륵 마시더라.


내가 호주 시골로 챙겨간 메밀차, 뻥튀기, 유자차를 참 신기해하고 좋아하고 탐내던 그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녀는 조용히 내게 다가와서 비밀 이야기 하듯이 만약 내가 시드니에 가면 한국 식품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과자들과 신기한 것들을 꼭 사다 달라고 내게 따로 부탁까지 했다.




시드니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날, 내 슈퍼바이저가 말해줬다.

"그녀가 네가 시드니에 가있는 동안에 네가 그립다고 자꾸 말하더라. 너를 아주 많이 좋아하나 봐."


다시 만난 그녀는 내 슈퍼바이저가 나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다고 말해줬다. 시드니에서 4시간 운전해서 오느라고 무척 피곤했던 날이었지만 그들 덕분에 기분 좋게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건 일을 더 많이 시키려는 슈퍼바이저의 고도의 전략인가?


어쨌든, 그녀는 내가 쉬는 날에 자꾸 본인 집에 놀러 오라고 말해줬다.


호주 시골에서 주주와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운전해서 20여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그녀의 집은 네비가 상당히 찾기 어려워했다. 그 이유는 그녀의 집에 가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을 운전해서 간 것이 매우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즉, 이곳에 내가 머무는 동안 의도치 않게 모두에게 연락두절인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나중에 이곳을 빠져나가고서는 수많은 메시지들을 따다다 다닥 받았었다.


산속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그녀의 집.


사진 속에 내가 본 저 광활한 풍경을 다 못 담아서 아쉽다. 진심 어디 유럽 알프스 산맥에 있는 줄 알았다. 일단, 공기가 너무너무 맑았다. 시드니랑 비교 불가이다.


2년여 전, 호주에서는 아주 크게 산불이 났었는데, 그때 그녀의 원래 집이 전부 다 타버렸었다. 지금은 자연이 많이 회복했지만 위의 사진 속의 거뭇거뭇한 나무들과 산불의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보험금으로 새로운 큰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 앞으로 손님용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할 공간에서 생활하며 시드니를 오가고 있다.



그녀는 밖의 나무에서 이파리 몇 개를 따와서 무심한 듯이 툭 뜨거운 물에 넣어서 차를 끓여주었는데, 세상에.. 내가 태어나서 먹어본 차 중에 가장 맛있었다. 분명 초록색 잎사귀인데, 레몬 맛이 났다. 굉장히 깨끗하고 상쾌한 자연적인 맛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취미 공간이다. 배우기도 전에 도자기 물레를 가장 비싼 것으로 2개씩이나 구입한 화끈한 그녀.. 왜 두 개를 샀는지 물어보았는데, 친구들이 놀러 와서 함께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나 더 구입했다고 한다. 저 여유가 진심 부럽다! 다행히 난 도자기에 친근한 사람이라서 그녀에게 몇 가지 기술들을 가르쳐줄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배웠다며 기뻐하는 그녀를 보면서 멈출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물레 돌리는 것을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다가 힘이 빠져버린 우리였지만 마음만은 아주 즐거웠다.


시골로 내려와서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느라고 작품을 만들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그녀의 배려로 그녀의 스튜디오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즐거운 일을 공유한다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산불이 나고 까맣게 탔던 자리가 2년 만에 저렇게 회복되다니.. 정말 자연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그녀는 어디에 뭘 짓고, 어떻게 농장을 만들 것인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내게 설명해주었다. 특히 조만간 알파카를 데려온다고 했는데.. 내가 눈이 동그래져서 너무 설레어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그녀가 말했다.


"알파카를 데려오면 가장 귀여운 애를 꼭 엘레인 알파카라고 부를 거야!"


그녀의 집 풍경은 완전 그림이었다. 전화도 안 터지는 이곳에서 그녀는 오히려 평화를 느낀다고 말했다. 나에게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지내도 좋다고 말해줬는데, 나는 냉정하게 거부했다. 응? 당시에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드라마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전화와 인터넷이 안되는 곳이기 때문에 안 그래도 조용한 호주 시골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광활한 정원에서 사는 캥거루들을 만났다.(월러비 아님.)

저 정원에 캥거루 가족 그룹들이 산다고 한다. 그녀의 이웃들 집에도 한 그룹씩 떼 지어서 캥거루들이 산다고 한다. 거짓말 안 하고 40여 마리를 본 것 같다.


캥거루들 외에도 그녀의 정원에는 여우, 웜벳, 오리, 딩고 등등의 여러 아이들이 산다고 한다.

정말 동물의 왕국이구나..


근육질의 몸집 큰 리더 격의 아빠 캥거루를 보았는데, 평소에 도망간다는 애들이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 나에게 가까이 오고 도망도 안 가서 순간 쫄았었다. 그녀도 캥거루가 사람에게 다가오는건 그녀도 처음 겪는 희귀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여튼, 캥거루들이 와서 나를 구경하더라..


나는 캥거루에게 만만한 인간인가 보다..

괜찮아, 너네는 귀여우니까.


그 혹독한 산불을 이겨내고 이렇게 살아남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더라.


그녀의 집에 와서 만난 남편은 내게 좋아하는 음악이 뭔지 물었다. 그녀가 얼른 대답했다.

"엘레인은 클래식을 좋아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집안에서 흘러나오는데, 뭔가 되게 민망했다. 내가 좋아했던건 저런 클래식이 아닌데..


이날, 의도치 않게 남의 집에 가서 요리를 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알고 보니 시드니에서 가장 유명하고 비싼 레스토랑들을 여러 개 소유한 오너이자 유명 셰프이다. 평소에 만났을 때는 농담 잘하고 잘 웃는 평범한 아저씨였는데, 그걸 알고나니 좀 대박이었다. 내가 이 사람들과 엮이다니.. 뭔가 굉장히 신기했다. 시드니에도 집이 있지만 이 곳에서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그들. 완전 이해한다.. 이 집은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그들의 새 집은 훨씬 더 아름다울 것 같다.


어쨌든, 앞으로 그 레스토랑 특별한 날에 예약 안되면 그녀에게 부탁하면 된다.. 응?


그녀가 그녀의 남편에게 내 이야기를 했는지 저번에 그녀에게 내가 해줬던 음식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녀가 너무 메밀국수를 좋아해서 그녀에게 봉평동 메밀국수와 메밀국수 소스를 따로 챙겨서 줬는데, 그걸 내밀며 나에게 요리해달라고 아저씨가 부탁했었다. 순간 멍했었다..


"저.. 저기..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제가 감히 유명 셰프에게 요리를 해줘도 될까요?!"


아저씨는 웃기지 말라며 내 옆에서 거들겠다고 뭐가 필요하냐고 했다. 그래서 파를 썰어달라고 했는데, 역시 셰프답게 칼질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나를 위해 치킨 스키니즐을 요리해줬고, 나는 옆에서 "제발 그들이 내 요리에 실망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백번쯤 기도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메밀국수를 삶고, 소스를 희석해서 국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 방문한 남의 집 찬장을 뒤져서 고추냉이를 찾아냈다. 역시 셰프의 부엌이라서 온갖 종류의 소스들이 많더라.


아저씨는 어디서 제천 김을 가져와서 씹어먹고 있었고.. (호주 울월스 아시안 코너에서 판다고 했다.) 내가 저번에 가져다준 종가집 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김에 밥을 싸서 김치랑 드셔보라고 아저씨에게 권유하기까지 했다. 아저씨에게 조만간 한국 식품점에서 광천김을 꼭 사드리리라고 다짐했다. 광천김이 얼마나 맛있는데..


아저씨의 치킨 스키니즐은 대박 맛있었다. 그렇게 육즙이 살아있는 스키니즐은 처음이었다. 역시 역시 역시! 아저씨는 셰프가 맞았다. 사실 음식 사진 너무 찍고 싶었는데, 혹여라도 촌스러워보이고 실례가 될까 봐 찍지 못했다. 그래도 조만간 또 갈 거니까!


아저씨는 나의 메밀국수를 먹고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온갖 칭찬을 다 쏟아내셨다. 그냥 국수 삶고 소스로 간 맞춰서 야채 좀 넣은 게 전부인데.. 부끄러웠다. 호주 최고 유명 셰프에게 고든 램지처럼 악평을 듣지 않은 게 감사할 따름이다.


정신 차려보니 다음번에는 그 집에 가서 월남쌈을 하기로 했다. 응?.... 셰프는 아저씨인데 내가 왜...


아시안 음식에 관심이 많은 아저씨는 그녀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한국 식품들을 다양하게 한번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조만간 한국 식품점에 가면 그녀가 좋아하는 유자차랑 유기농 녹차, 소고기맛 다시다, 과자 등등을 잔뜩 사가야겠다.


아저씨와 그녀는 내게 아예 그들의 집에서 묶으라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전화도 안 터지고 인터넷도 안되면 '옷소매 붉은 끝동'과 준호를 볼 수 없으니까.. 그것조차도 없으면 이 시골 생활의 저녁이 자신이 없다.



그녀의 작업실로 가는 길에 캥거루들이 또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주주에게 갖다 줄 해바라기 꽃을 몇 개 땄다. 나를 위해서는 예쁜 코스모스들을 땄다.



나에게 겁 없이 다가왔던 아빠 캥거루 녀석.

다음에 또 보자!


그녀의 집에서의 하루는 뭐랄까.. 힐링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 행복을 나눠준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너무 좋은 날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