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철수 엄마 말이야, 이번에 대치동에 있는 코딩 학원 설명회 다녀왔다더라. 초등학생 때부터 파이썬을 마스터해야 나중에 의대 가거나 개발자 돼서 살아남는대. 우리 애도 지금 다니는 태권도 끊고 거기 보내야 하나?"
퇴근 후 식탁에 마주 앉은 아내, 혹은 남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런 말을 건넨다면,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해주시겠습니까? 아마 십중팔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겁니다.
'남들은 벌써 저만큼 앞서가는데, 우리 애만 뒤쳐지는 거 아닐까?'
대한민국 부모라면 누구나 가진 원초적인 공포죠. 게다가 요즘 뉴스를 보면 더 혼란스럽습니다.
한쪽에서는 "이제 AI가 코딩을 다 짜주니 개발자는 끝물이다"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래도 AI를 지배하려면 코딩을 배워야 한다"라고 합니다.
영어는 또 어떤가요? 귀에 꽂기만 하면 실시간으로 통역해 주는 이어폰이 나왔다는데, 한 달에 200만 원이 훌쩍 넘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게 과연 현명한 투자일까요?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복잡하고 불안한 교육의 실타래를 풀어보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지금 유행하는 식의 '달달 외우는' 영어 공부와 '문법 위주의' 코딩 교육은 이제 유통기한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공부 안 해도 돼, 기계가 다 해주니까"라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합니다.
계산기가 발명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수학을 배우지 않는 게 아니듯, AI 시대에는 교육의 '방향'과 '목표'가 완전히 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인 우리가 이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의 방식대로 아이를 닦달한다면, 우리는 비싼 돈을 들여 아이를 'AI보다 못한 존재'로 키우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 시계를 잠시 10년 빠르게 돌려봅시다. 우리 아이가 사회에 나갈 2035년 즈음입니다. 그때의 사무실 풍경은 어떨까요? 지금처럼 영단어를 깜지 쓰듯 외워서 토익 점수를 따고, 코딩 문법을 암기해서 괄호 하나 빠뜨리지 않는 능력이 중요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건 무료로 풀린 AI 툴이 0.1초 만에 해치우는 일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주산'을 배우지 않는 것처럼, 단순 기능 습득은 경쟁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대한민국 사교육의 성역인 '영어' 이야기부터 냉정하게 해 보겠습니다.
"통번역기가 이렇게 잘 나오는데, 영어 공부 시킬 필요 있나요?" 많은 부모님이 묻습니다. 제 대답은 "네, 반드시 시켜야 합니다. 단, 목표가 달라졌습니다"입니다. 과거의 영어 교육이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말하기'를 위한 것이었다면, AI 시대의 영어 교육은 '검증'과 '정보의 선점'을 위해 필요합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챗GPT나 최신 AI 모델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이 똑똑한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영어'로 사고하고 학습합니다. 전 세계 데이터의 60% 이상이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데이터는 고작 1% 남짓입니다. 물론 번역 기능이 좋아져서 한국어로 물어봐도 찰떡같이 대답합니다. 하지만 깊이 있는 정보, 최신 기술 트렌드, 전문적인 지식으로 들어갈수록 번역의 뉘앙스 차이에서 오는 정보의 왜곡이 발생합니다.
더 중요한 건 '팩트 체크', 즉 검증입니다. AI는 가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합니다. 소위 '환각' 현상이죠. 만약 우리 아이가 영어를 전혀 모른 채 AI가 번역해 준 한국어 정보만 믿는다면, 그 정보가 진짜인지, 미묘하게 왜곡되었는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번역기가 "I’m losing my mind"를 "나는 내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어"라고 직역했을 때, 영어를 아는 사람은 "아, 미쳐버리겠다는 뜻이구나"라고 알아채지만, 모르는 사람은 시적인 표현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미래의 영어 능력은 '유창한 발음'이나 '복잡한 문법 지식'이 아닙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쓱 훑어보고 "어? 여기 번역이 좀 어색한데? 원문이랑 뉘앙스가 다르잖아?"라고 '잡아낼 수 있는 눈', 즉 '에디터'로서의 감각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원어민과 농담 따먹기를 할 수준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독해력과 문장 구조를 이해하는 '기초 체력'은 필수적입니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영어를 못하면 AI가 너한테 거짓말을 해도 속을 수밖에 없어. 네가 AI의 상사가 되려면, 걔가 보고한 서류가 맞는지 틀린 지 확인할 실력은 있어야지."
이것이 바로 AI 시대 영어 공부의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입니다.
다음은 뜨거운 감자, '코딩'입니다.
"국영수코(국어, 영어, 수학, 코딩)"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코딩 열풍이 거셉니다. 하지만 현직 개발자 친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학원에서 가르치는 '파이썬 문법 외우기'는 5년 안에 아무 쓸모가 없어질 거야."
실제로 최근 발표된 'Devin' 같은 AI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인간이 며칠 걸릴 코딩 작업을 몇 분 만에 해냅니다. 에러가 나면 스스로 고치기까지 합니다. 단순히 코드를 타이핑하는 '코더'의 설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코딩 교육을 시키지 말까요?
아닙니다. 여기서도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코딩 교육의 본질은 컴퓨터 언어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팅 사고력'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쉽게 말해, 복잡한 문제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작은 단위로 쪼개고, 논리적인 순서대로 배열해서 해결하는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것입니다.
레고 블록 놀이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아이에게 레고 설명서를 달달 외우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여기에 성을 쌓으려면 밑바닥을 어떻게 넓혀야 할까?", "지붕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기둥을 어디에 세워야 할까?"를 고민하게 합니다. 미래의 코딩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건 AI가 합니다. 우리 아이는 어떤 성을 지을지 구상하고, AI에게 "현관은 여기에, 창문은 저기에 만들어줘"라고 지시하는 '아키텍트'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 아이가 코딩 학원에서 문법을 틀렸다고, 재미없는 검은 화면만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게 하세요. 대신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과 접목한 코딩 교육을 통해 "내가 입력한 논리대로 세상이 움직이는구나"라는 원리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 백번 낫습니다.
"어떻게 코드를 짤 것인가"는 AI가 해결합니다.
인간의 몫은 "무엇을, 왜 만들 것인가"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자, 영어와 코딩에 대한 오해를 풀었으니, 이제 부모님들이 진짜 집중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역량'을 말씀드리겠습니다.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고,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희소성이 높아져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을 능력들입니다.
첫 번째는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챗GPT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질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하면 바보 같은 대답을 내놓습니다.
과거의 학교에서는 '정답을 맞히는 아이'가 우등생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는?" "1592년입니다!" 하면 칭찬받았죠. 하지만 이건 이제 검색창에 치면 1초 만에 나옵니다.
미래의 우등생은 '좋은 질문을 던지는 아이'입니다.
"선생님, 만약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AI가 그림을 그리면 저작권은 누구한테 있나요?"
이런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 AI로부터 창의적인 답변을 이끌어내는 열쇠, 즉 '프롬프트'가 됩니다. 아이의 질문을 막지 마세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문제집이나 풀어"라는 말은 아이의 가장 큰 무기를 꺾는 것입니다. 아이가 엉뚱한 질문을 할 때, 같이 챗GPT에게 물어보고 그 대답에 대해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나눠보세요. 그것이 최고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교육입니다.
두 번째는 '문해력', 그중에서도 긴 글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는 힘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 쇼츠나 틱톡 같은 1분 미만의 짧은 영상에 익숙합니다. 3줄 이상의 글은 읽기 싫어하죠. 이걸 '팝콘 브레인'이라고 부르는데, AI 시대에 이는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왜냐고요? 역설적이게도 AI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정보를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AI에게 업무를 시키거나 정보를 얻을 때, AI는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정리해서 보여줍니다. 이 텍스트의 행간을 읽고,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버려야 할 정보인지 파악하지 못하면 AI라는 슈퍼카를 타고도 목적지를 찾지 못해 뱅뱅 도는 꼴이 됩니다.
"책 읽어라"라는 잔소리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먼저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짧은 사설이나 칼럼을 읽고 "이 작가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너라면 여기서 어떻게 반박할래?"라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넣는 게 아니라, 텍스트라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지구력을 길러주는 훈련입니다. 문해력이 있는 아이는 AI가 내놓은 10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10분 만에 소화하고 핵심을 찔러 질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 능력과 휴머니티'입니다.
AI는 감정이 없습니다. 흉내를 낼 뿐입니다. "슬프시겠어요"라고 말은 하지만, 가슴이 아프지는 않습니다. 미래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사람들은 기계적인 완벽함보다, 인간적인 따뜻함과 연결을 갈구하게 될 것입니다.
의사를 예로 들어볼까요? 진단과 처방은 AI 왓슨이 훨씬 정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불안한 눈빛을 읽고 손을 잡아주며 "많이 걱정되시죠,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위로하는 건 인간 의사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는 '수술 잘하는 기계적 의사'보다 '환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간적 의사'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입니다.
마케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이터 분석은 AI가 합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미묘한 심리, 질투, 허영심, 감동 포인트를 읽어내고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카피를 쓰는 건 인간의 영역입니다.
아이에게 친구와 싸웠을 때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인성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생존 기술이 되는 이유입니다. 공부만 잘하고 싹수없는 천재는 AI로 대체되기 딱 좋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줄 아는 리더는 AI를 부리며 조직을 이끌게 될 테니까요.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부모님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해도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스스로 생각하고, 타인과 어울리며,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AI는 이 과정을 돕는 아주 강력한 도구일 뿐입니다.
옆집 엄마가 "우리 애는 코딩 학원에서 C언어 마스터했어"라고 자랑할 때, 기죽지 말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세요.
'우리 애는 어제 저녁에 챗GPT랑 기후 위기에 대해 토론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했어. 누가 더 미래에 가까울까?'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뺏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AI와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정답을 외우게 하는 대신, "넌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한 번 더 물어봐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기계는 절대 줄 수 없는 따뜻한 사랑과 지지를 부모인 여러분이 채워주세요.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그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AI에게 명령을 내리는 주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아이를 AI와 달리기 시합을 시키는 코치가 아닙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멋지게 서핑을 즐길 수 있도록, 균형 감각을 길러주는 든든한 서포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아이에게 학원 숙제 다 했냐고 묻는 대신,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아들, 만약에 숙제를 대신 해주는 로봇이 생기면, 넌 남는 시간에 뭘 제일 하고 싶어?"
그 대답 속에 우리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힌트가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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