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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낙원

by 돌부처

쿠구구궁-!


땅이 비명을 질렀다. 아니, 건물 자체가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수조가 깨지면서 쏟아져 나온 붉은 액체가 바닥의 미세한 균열 사이로 스며들자, 지하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지맥 포식자가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한 것이다. 놈의 거대한 촉수들이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을 종잇장처럼 뚫고 솟구쳐 올라왔다. 2층 VIP 룸의 화려했던 대리석 바닥은 순식간에 붕괴되었고, 값비싼 가구들과 술병들이 아래층의 붉은 아비규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아아아악!”


마약과 환각에 취해 몽롱하게 누워있던 VIP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굵은 촉수에 휘감겨 끌려갔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른 채, 거대한 식충식물 같은 괴물의 입속으로 사라져 영양분이 되었다. 쾌락의 낙원은 순식간에 피비린내 진동하는 도살장으로 변했다.


“젠장, 이놈 덩치가 장난 아니야! 지난번 북아현동 놈은 애기였어!”


이강우가 단검으로 날아오는 촉수를 쳐내며 소리쳤다. 잘려 나간 촉수 단면에서는 검은 점액질이 산성 용액처럼 뿜어져 나와 바닥을 녹였다. 이번 괴물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만 센 것이 아니었다. 놈의 몸에서는 살을 썩게 만드는 독기와 저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진 씨!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요! 내가 여기서 놈의 발을 묶겠습니다!”


윤도진이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통증을 참으며 외쳤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워 들고, 촉수의 눈으로 추정되는 붉은 반점들을 향해 침착하게 사격했다.


탕! 탕! 탕!


총알이 박힐 때마다 괴물이 움찔거렸지만, 놈의 거대한 덩치에 비하면 모기에게 물린 수준에 불과했다. 상처는 금세 검은 살로 메워졌다.


“안 돼요! 형사님 혼자서는 무리예요! 같이 나가야 해요!”


하진은 옥 조각을 쥐고 푸른 방어막을 펼쳐 천장에서 쏟아지는 낙석과 괴물의 점액질을 막아냈다. 그녀의 눈은 필사적으로 출구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은 이미 무너져 내렸고, 엘리베이터는 뒤틀려 작동 불능이었다. 유일한 탈출구는 이강우가 뚫고 들어온 천장의 환풍구뿐이었다. 하지만 그곳까지 올라가기엔 너무 높았다.


[크아아아아!]


괴물의 본체가 바닥을 뚫고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건물 2층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수많은 인간의 팔다리와 얼굴들이 놈의 몸통에 흉물스럽게 박혀 있었고, 그것들은 제각기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거나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백면이 만들어낸 지옥도 그 자체였다.


“이런 미친... 저거 다 사람이야?”


산전수전 다 겪은 이강우조차 질린 표정을 지었다.


“놈의 핵... 핵을 찾아야 해요! 저 수많은 원혼들을 다스리는 중심점이 있을 거예요!”


하진이 소리쳤다. 그녀는 영적인 시야를 열어 괴물의 몸을 훑었다. 수만 개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바늘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찔러왔다. 어지러움을 참으며 시선을 집중하자, 괴물의 정수리 부분, 수많은 팔들이 엉겨 붙어 왕관처럼 솟아있는 곳에서 시커먼 빛이 맥동하는 것이 보였다.


“머리! 머리 꼭대기요! 저기에 백면의 기운이 응축되어 있어요!”


“머리라고? 젠장, 저기까지 날아가란 소리야?”


이강우가 투덜거렸다. 괴물의 촉수들이 쉴 새 없이 허공을 채찍질하고 있어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그때, 윤도진이 무너진 벽 쪽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샹들리에를 발견했다. 샹들리에는 괴물의 머리 바로 위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이강우 씨! 저 샹들리에 보입니까!”


윤도진이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저걸 떨어뜨려서 놈의 움직임을 막아야겠소! 내가 엄호할 테니, 당신이 저 위로 올라가서 고정 사슬을 끊으시오!”


“하, 형사 양반. 나한테 스턴트맨이라도 하라는 거야? 실패하면 나까지 샹들리에랑 같이 곤죽이 될 텐데?”


“당신이라면 할 수 있잖아! 돈값은 해야지!”


“쳇, 말이나 못 하면. 알았어! 엄호나 똑바로 해! 빗나가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이강우는 벽을 타고 재빠르게 기어올라갔다. 그의 움직임은 중력을 무시하는 듯 날렵했다. 괴물이 이강우를 눈치채고 촉수를 뻗었다.


“어림없지!”


윤도진이 정확하게 촉수를 향해 사격했다. 총알이 촉수의 끝을 날려버렸다. 괴물이 주춤하는 사이, 이강우는 천장의 철골 구조물에 원숭이처럼 매달려 샹들리에 고정 장치 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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