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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록 (禁祭錄)] - 7화

경계선

by 돌부처


죽음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스팔트를 긁어내는 발톱 소리는 쇳가루를 귀에 부어 넣는 것처럼 날카롭게 울렸다.


네 발의 괴물이 어둠을 찢으며 질주했다. 그것의 속도는 물리법칙을 조롱하듯 빨랐다. 그것이 뛰었다 착지할 때마다 아스팔트가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아스팔트를 긁어내는 발톱 소리는 쇳가루를 귀에 부어 넣는 것처럼 날카롭게 울렸다. 그 소리는 단순한 마찰음이 아니었다. 영혼을 긁어내는 주파수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갉아 먹히는 듯했다. 발톱이 지나간 자리에는 검은 흔적이 남았다. 타르처럼 끈적한 액체가 흘렀고, 그것이 닿은 곳마다 현실이 썩어 들어갔다. 보도블록이 부서지고, 가로수가 시들고, 공기 자체가 독으로 변했다. 바람을 가르며 튀는 비말 속에서, 썩은 피와 유황 냄새가 섞인 기묘한 악취가 지운의 코와 폐를 마비시켰다.그것은 단순한 냄새가 아니었다. 죽음의 입김이었다. 천 년 묵은 무덤의 공기와 지옥의 유황이 뒤섞인,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독기였다. 그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세포가 죽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썩어 문드러진 고깃덩이를 억지로 삼키는 듯한 메스꺼움이 목구멍을 긁었다. 위액이 역류했다. 내장이 뒤틀렸다. 모든 장기가 그 냄새를 거부하며 경련했다.


지운의 시야는 좁아졌다. 주변의 빌딩도, 광장의 전광판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괴물의 목구멍으로 열리는 붉은 통로만이 남았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아니, 뛰고 있었으나, 그 박동이 전부 귀로 빨려 들어가 공포의 고막만 울렸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두 다리는 땅에 못박힌 기둥이 되었고, 팔은 공포라는 사슬에 묶여 있었다. 뇌의 모든 회로가 잘려나간 듯, ‘도망쳐야 한다’는 신호조차 근육까지 내려오지 못했다. 혈액이 역류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발가락의 감각이 사라졌다. 몸이 죽어가고 있었다. 공포가 그를 안에서부터 죽이고 있었다.


‘여기서 끝인가.’


괴물이 도약 자세를 취했다. 뒷다리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피부 아래서 뭔가 꿈틀거렸다. 아니, 근육이 아니었다. 더 작은 생물들이 피부 아래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여자가 움직였다. 그녀는 지운을 밀치지도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파수견을 향해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녀의 움직임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검은 치마자락이 나비처럼 펄럭였다. 창백한 손이 허공에 원을 그렸다. 지운은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도, 그녀를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딸랑-


손에 쥔 작은 방울이 흔들렸다. 소리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맑고 투명했다. 지옥의 한가운데, 유황 냄새와 죽음의 포효로 가득 찬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정한 물방울 같은 울림. 방울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파동이었다. 현실을 가르는 칼날이었다.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를 다시 세우는 주파수였다. 소리의 파동이 퍼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투명한 물결처럼. 그 물결이 지나간 자리마다 공간이 정화되었다. 타락한 공기가 맑아지고, 썩은 냄새가 사라지고, 어둠이 물러갔다. 파동이 괴물에게 닿았다. 순간, 괴물의 아가리가 찢어지듯 벌어졌다.


크아아아아악—!


파수견의 울음은 공기를 쪼개는 쇠톱처럼 광장을 찢었다. 비명은 귀에서 끝나지 않았다. 목 안으로, 장기 안으로, 뼛속 깊이까지 진동이 파고들었다. 달려오던 괴물은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나가떨어졌다. 아스팔트 위로 길게 미끄러지며 발톱으로 바닥을 긁었고, 불꽃이 튀었다.


그것은 발작하듯 몸부림쳤다. 방울 소리가 닿은 얼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마치 강산(强酸)에 잠긴 듯 살갗이 검게 부풀더니 연기를 토하며 녹아들었다. 이빨이 떨어져 나가 바닥에 굴러다녔고, 혓바닥이 타들어가 검은 액체가 흘렀다. 맑고 청아한 방울의 울림이 그들에게는 독이자 불이었다.


여자가 방울을 든 손을 높이 들었다. 달빛이 방울에 반사되어 빛났다. 은빛 광휘가 퍼져나갔다.


"물러가라."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이중, 삼중으로 울렸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것 같았다.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괴물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방울의 결계가 그것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괴물들이 점점 지운과 그녀 주위로 다가왔다.


“뛰어!”


여자가 지운의 팔을 잡아챘다.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다급함에 젖어 있었다. 그제야 지운의 몸이 다시 제 것이 되었다. 두 다리는 마비에서 풀려나, 공포의 본능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다. 두 사람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길도 방향도 없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명령만이, 두 다리를 앞으로 밀어붙였다.


뒤에서 다시 포효가 터졌다. 괴물이 고통에서 벗어나 분노로 되살아났다. 바닥을 울리는 네 발의 충격이 심장과 발걸음을 동시에 옥죄었다. 지운은 등 뒤로 땅이 가라앉는 듯한 진동을 느꼈다. 마치 괴물의 발자국이 도로 전체를 움푹 움푹 파내는 듯했다.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30미터. 25미터. 20미터. 괴물의 숨소리가 들렸다. 풀무질 소리 같았다. 대장간의 화로처럼 뜨거운 숨. 그 숨결이 등 뒤를 스쳤다. 옷이 그을렸다.


“이쪽으로!”


여자가 지운의 손목을 거세게 잡아끌었다. 그녀가 향한 곳은 광장의 한편, 검은 입처럼 벌어진 지하철역 입구였다. 차가운 바람이 계단 밑에서 불어왔다. 차가운 공기는 구원의 손길 같았으나, 동시에 지하의 그림자가 그들을 삼켜버릴 듯 매섭게 다가왔다.


"지하는 위험해요!"


지운이 외쳤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면 안 된다고. 갇힐 것이라고.


"지상은 더 위험합니다!"


여자가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확신이 있었다. 무언가 알고 있었다. 계단을 미끄러지듯 뛰어 내려가는 동안, 지운은 흘깃 위를 올려다보았다.


광장 위에서,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은 무기 대신 이상한 부적이었다. 붉은 먹선이 얽혀 있어 멀리서 보기에도 불길한 기운이 흘렀다. 광장 중심에, 노인은 여전히 제단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장기판 위의 말을 움직이는 신처럼, 이 모든 추격과 사냥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이 붉었다. 아니, 검붉었다. 피가 섞인 하늘. 구름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거대한 눈이 있었다. 하늘 전체를 덮은 거대한 눈. 그것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올랐다. 숨이 잘려나가듯 가빠졌다. 철제 난간은 손바닥에서 미끄러졌고, 계단마다 비가 흘러내려 미끈거렸다. 발목이 삐끗할 뻔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뒤에서는 짐승의 숨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마지막 계단을 내딛는 순간, 여자가 돌연 뒤를 돌아서 손에 쥔 방울을 계단 위로 던졌다. 은빛으로 빛나는 방울이 호를 그리며 날았다.


쨍-!


방울이 깨져 산산조각이 났다. 은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런데 몇몇 파편들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공중에 멈춰 있었다. 붉은 실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불길은 계단 입구에 보이지 않는 막을 드리웠다. 붉은 장막이었다. 반투명한 붉은 벽. 그 안에는 문양들이 떠다녔다. 고대 문자들. 룬. 한자. 산스크리트. 그리고 더 오래된, 인류 이전의 문자들. 곧장 달려내려오던 파수견이 그 막에 부딪혀 날아갔다.


콰앙!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하철역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에서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졌다. 벽에 균열이 생겼다. 괴물이 튕겨져 나갔다. 막에 닿은 부분이 불탔다. 진짜 불이었다. 푸른 불꽃. 영혼을 태우는 불꽃. 괴물의 앞발이 숯처럼 검게 변했다.


키에에엑-!


지하철역 전체가 흔들릴 만큼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그 비명에는 분노와 고통, 그리고...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괴물도 두려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짐승은 포기하지 않고, 발톱으로 막을 긁었다. 스크래치 소리가 났다. 칠판을 긁는 소리의 천 배쯤 되는 끔찍한 소음. 듣는 것만으로도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막은 버텼다. 붉은 불빛이 금속처럼 단단히 버텼다. 오히려 긁으면 긁을수록 더 밝게 빛났다. 더 뜨거워졌다.


“됐어요.”


여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다.


“잠시나마… 벌었습니다.”


그녀의 이마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흘러내렸다. 창백한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운은 등뒤 벽에 기대 숨을 고르며,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텅 빈 승강장. 형광등이 쓸쓸하게 깜빡이며 울렸다. 막차가 끊긴 지 오래, 철길 위에는 기름 냄새만 맴돌았다. 방금 전까지 지상에서 벌어진 광경이 악몽이었는지, 아니면 지금 이 지하가 악몽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저것들은 뭡니까.”


지운은 벽에 몸을 붙이고 물었다.


“그리고 당신은….”


여자는 방울 조각을 주워 들었다. 조각들이 그녀의 손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은빛이 아니었다. 푸른빛이었다. 달빛 같은 푸른빛.


“나는 길을 지키는 사람, 윤서화입니다.”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이 밝혀졌다.


“저것들은 ‘문’의 파편에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 산 자의 기운을 먹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감정이 없었다. 사실을 전달할 뿐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지운의 손끝으로 내려갔다. 빨갛게 달아오른 상처. 물웅덩이에 닿았던 흔적.


“당신은 그 문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산 자의 냄새가 지나치게 짙습니다. 그들은 이제 당신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서화가 한 발 다가왔다. 지운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말은 여전히 수수께끼 같았지만, 지운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보았고, 느꼈고, 겪었다.


쿵-!


쿵-!


계단 위에서 무언가 결계를 들이받는 소리가 울렸다. 파수견이 결계를 포기하지 않고 깨부수려 하고 있었다. 붉은 실이 푸석푸석 타들어가며 힘을 잃어갔다. 봉인이 약해지고 있었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다른 길은 없습니까?”


지운이 물었다.


“이곳은 이미 고립됐어요.움직여야 합니다.”


서화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리 위에서 굉음이 떨어졌다.


철커어어엉-!


지하철역 입구의 셔터가 무겁게 닫히는 소리. 화천회가 외부와 이곳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사냥터. 이곳은 이제 완벽한 덫이었다. 지운의 피부가 오싹해졌다. 덫 속에 들어온 쥐의 감각이 이럴까. 숨이 막히고 목이 조여왔다.


퍽-


승강장 저편의 형광등 하나가 꺼졌다. 정적.


퍽-


또 하나가 꺼졌다. 한 줄기 서늘한 기운이 등을 훑었다.


퍽. 퍽. 퍽-.


형광등들이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차례차례 죽어갔다. 빛이 사라진 자리를, 지상에서 보았던 그것과 같은 종류의 어둠이 채워 나갔다. 빛이 꺼질 때마다, 공기 속에서 이상한 울림이 번졌다. 사람이 입을 막은 채 웃을 때 새는 억눌린 소리 같기도 하고, 동물의 갈비뼈를 부러뜨릴 때 나는 파열음 같기도 했다. 승강장은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빛의 범위가 좁아지고, 그 틈새에서 그림자가 살아 움직였다. 지운은 숨이 목구멍에 걸려 미처 내쉬지 못했다. 가슴은 터질 듯한데, 폐는 닫혀 있었다. 어둠은 두 사람을 향해, 느리지만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윤서화가 아주 낮게 속삭였다.


“… 이곳까지 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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