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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사랑한미술관 Mar 23. 2022

인생의 모든 것을 기적처럼 여기는 방법

우민정 작가 <벌> &사샤 세이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인생의 모든 것을 기적처럼 여기는 방법 | 우민정 작가 |  | 갤러리 조선 | 사샤 세이건 |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https://youtu.be/kA-D1j93R9w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지난 2022년 2월 갤러리 조선에서 열린 우민정 작가의 개인전 <벌>은 제게 독특한 인상을 남긴 전시였습니다. 어떤 전시가 열리는 지도 모른 채 우연히 들어갔다가 예상치 못하게 인상적인 작품들을 만나게 됐기 때문인데요.


전시에 소개된 우민정 작가의 그림은 모두 2021년 작이지만 흙 위에 그려져 있어서 아주 먼 옛날 동굴에 그려진 벽화를 보는 듯합니다. 그림은 별, 행성, 구름 같은 우주적인 요소와 뱀이나 새 같은 신화 속에 나올 법한 동물들, 제사 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불이나 심장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 사이 사이에는 줄지어서 비슷하거나 연속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제물처럼 누군가에게 바쳐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앞서 언급한 소재들처럼 신화나 제사 같은 것들을 연상시킵니다. 초월적인 존재가 내려다보는 것처럼 사람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이 작게 그려져 있어서 더욱 그런 인상을 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먼 옛날부터 인류는 자신의 기원을 찾아 특정 자연 현상이나 동식물을 가지고 신화를 만들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기댈 곳을 찾고자 각자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올려왔습니다. 초자연적이거나 종교적인 것에 의지해 인간 존재의 근원을 찾고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며 더 나아가서는 유한한 인간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것이죠. 우민정 작가의 그림 중에서도 특히 이 작품이 인간의 그런 의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장대 높이 뛰기를 하듯 무언가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하늘색 외곽선으로만 그려져 있어서 얼핏 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림 하단에는 거대한 코끼리들이 있습니다. 우민정 작가는 고사성어 '안수정등'에서 차용한 '위기에서 만나는 가장 크고 강한 적'의 상징으로서 코끼리를 그렸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질문 중 하나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왜 태어났으며 어디로 가는가?’일텐데요. 이 질문의 관점에서 본다면 코끼리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안고 사는 인간이 그로 인해 낙담하고 허무주의에 빠지는 위험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겐 이 그림이 허무주의를 경계하고 신화나 종교의 힘을 빌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초자연적이거나 종교적인 것에 기대지 않고서도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심오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은 책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를 통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과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삶을 의미로 채워 나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종교나 초자연적인 것에 기대지 않고 순전히 엄청난 우연에 의해 탄생한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기적처럼 여기고 그 안에서 반복되는 계절의 변화나 인생에서 중요한 날을 기념하며 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샤 세이건은 어렸을 때 엄마와 금요일마다 빵을 사러 갔던 일이나 주말마다 종이 오리기 놀이를 했던 것을 회상하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식으로 나는 한 주를 끝내고 일에서 휴식으로 전환하는 때(당시 나에게는 일이라는 게 주로 색칠 공부였지만)를 처음으로 인식했다. 빵을 사러 가는 행위가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느끼는 한 가지 방법이었던 것이다. 시간은 파악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쉴새없이 흐르지만 느끼기는 어렵다.'


'종이를 어떤 모양으로 오렸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이 보낸 시간이 중요했다. (중략) 의식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했다는 것도 적절했다. 날마다 하면 너무 자주여서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시간도 너무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하면 너무 띄엄띄엄이어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리듬을 느끼기가 어렵다. 일주일에 한 번이 딱 적당했다.'


어린 딸에게 가지는 바램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매일 지식을 열정적으로 습득하는 일이 어떻게 인생과 세상에 대한 찬미로 이어질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방과후에, 주말에, 여름방학 때도 아이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를 알아내는 일을 집에서 날마다 수행하는 성스러운 의식으로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렇게 수많은 답을 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나 적다는 사실을 아이가 편안하게 받아들이게끔 되지 않을까.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 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중략) 영영 답을 얻을 수 없는 비밀도 있다. 우리는 아마 살아 생전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인류가 결국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얻을 수 있는 답도 있다. 지금, 아버지와 마루하는 내가 옛날에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하루 안에도 배우고 축하할 것이 너무나 많다.'


사샤 세이건은 여러 계절의 흐름 중에서도 1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에 주목하며 딸에게 동짓날 밤 우주의 신비를 설명해줄 날을 꿈꾸기도 합니다.


‘그림이나 지구의와 손전등을 이용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 기적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르쳐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한여름과 가장 짧은 밤을 즐기고 있을 남반구 사람들을 상상해보라고. 내일부터 그 사람들의 낮은 줄어들고 겨울이 천천히 다가올 테고 6개월 뒤에는 우리와 입장이 반대로 바뀔 거라고. 아이들에게 이것이 50억 년도 더 된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말해줄 날을 꿈꾼다.’


그녀의 책을 읽고 다시 우민정 작가의 그림을 보니 그림 속 요소들을 꼭 종교나 신화와 관련지어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종교나 신화를 떠올리지 않아도 우민정 작가의 그림은 충분히 신비롭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샤 세이건이 책에서 언급한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스피노자의 신' 즉 "존재하는 것의 질서와 조화로 나타나는 신"을 기리는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사샤 세이건처럼 종교나 초월적인 무언가에 기대지 않고도 우리가 속한 우주와 우리가 사는 인생을 찬미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만 같습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인데요. 머리로는 어느 쪽 길을 가야 할지 잘 알지만 자꾸 잊어버리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었는데 우민정 작가의 그림과 사샤 세이건의 글을 통해 그 길을 어떻게 가야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기적이라 여기며 그 중에서도 특별한 날을 고르고 저만의 의식을 만들어 나갈 생각을 하니 오랜만에 즐겁고 설레는 기분이 들었는데요. 다시 봄이 찾아오는 시기인 만큼 저도 여러분도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 것 같은 마음으로 가득 차면 좋겠습니다.


영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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