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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사랑한미술관 May 18. 2022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이교준 작가 &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뉴욕 소네트>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 Works on papaer | 이교준 작가 | 피비 갤러리 | 다큐멘터리 |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

https://youtu.be/kdVTeygOdio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최근에 정말 마음에 드는 전시를 봤는데 전시가 끝나기 전에 이번 영상을 통해 소개해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전시는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피비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교준 작가의 개인전 <Works on paper>로 이번주 토요일인 22년 5월 7일까지 계속됩니다. 사진과 영상으로는 작품이 제대로 담기지 않아서 여건이 되시는 분들은 전시가 끝나기 전에 꼭 방문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시작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전시를 보면서 종이, 연필, 물감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재료들로 단순하게 구성된 무언가가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고 연신 감탄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교준 작가는 종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2차원 회화와 3차원 조각 사이 어딘가에 있는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종이를 접거나 위에 한 겹을 덧붙여 입체감을 만들어 내는데 전자의 경우 종이를 접으며 생긴 입체감 때문에 회화로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여느 조각처럼 좌대 위에 올려져 있지 않고 액자 속에 들어 있다 보니 조각처럼 느껴지지도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후자의 방식은 덧붙여져 있는 종이의 네 모서리가 살짝 들뜨면서 작품을 2차원에서 3차원의 것으로 만드는데 이런 작은 요소로 인해 작품이 회화와 조각 사이 어딘가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재료는 연필과 물감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연필로 그은 선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선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젠가 연필로 선을 그었을 때의 촉감이 떠오르는데요. 진한 색의 연필은 무르고 부드럽게 그어지는 반면에 연필심의 색이 옅을수록 퍽퍽하고 거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 하나로 잊고 있던 촉감이 이렇게나 생생히 떠오른다는 게 놀랍습니다. 물감으로 채색한 부분은 물을 많이 타서 맑고 투명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검정 같은 색깔도 무겁거나 어두운 느낌이 들지 않더라구요. 미묘하게 다른 농도로 번져있는 자국이나 물감이 마른 뒤 그 위에 다른 색을 칠해 두 가지 색이 그대로 겹쳐 있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어떤 그림은 칸마다 미묘하게 다른 색이 칠해져 있어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액자입니다. 액자를 작품의 일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같은 작품이라도 액자에 따라 굉장히 다른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인데요.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액자들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각각 다른 색감과 나뭇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형태와 나무 본연의 색을 살린 액자는 간결하고 깔끔한 이교준 작가의 작업들과 잘 어울려서 액자도 작품의 일부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특히 이 벽면의 작품들은 조금씩 다른 액자의 색이 하얀색 종이로만 만들어진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듯했습니다.


전시를 보다 보니 오래 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영화 배우 에단 호크가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을 만나고 그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하다가 음악과 인생을 대하는 번스타인의 자세에 감명 받아 직접 제작까지 하게 된 다큐멘터리입니다.


저도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시모어 번스타인이란 사람을 처음 접하고 에단 호크처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큐를 보고 나서야 같은 악보, 같은 음도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연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피아노 레슨 중에 번스타인이 교정해주는 내용에 따라 학생들이 연주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바로 전의 연주와는 다른, 미세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느껴져서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호흡과 자세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고 피아노도 다 같은 피아노가 아니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번스타인이 에단 호크와 친구들을 위해 여는 연주회에 쓸 피아노를 고르는 과정을 보면 최상급 피아노 사이에서도 서로 소리가 미세하게 달라서 그중 제일 소리가 좋은 걸 고릅니다. 번스타인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듯이 피아노도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만들지만 나무의 개성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고 말합니다. 다큐를 보기 전까지는 음악에 이렇게 섬세한 면이 많은지 몰랐기 때문에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교정해가면서 완벽에 가닿고자 하는 번스타인과 그의 제자들의 노력이 너무나 대단하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번스타인의 삶은 연주와 작곡, 피아노 레슨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마저도 창작 활동과 수업에 더 집중하기 위해 50세에 가진 연주회를 끝으로 그는 공연 활동을 중단합니다. 번스타인은 57년째 뉴욕의 방 하나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침대도 따로 없이 접이식 소파를 침대 겸 쓰며 살고 있습니다. 물질적 부나 출세 같은 세속적인 욕망과는 거리가 있는, 연주회를 할 때마다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던 피아니스트의 삶이라고 하기엔 정말 소박한 삶을 살고 있죠. 스스로도 수도승과 비슷하다고 할 정도로 검소하고 고독하지만 그의 삶은 음악과 삶에 대한 열정으로 오히려 더 충만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교준 작가의 작품을 보며 시모어 번스타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떠오른 것은 이 둘이 비슷한 방식으로 아름다운 예술,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종이, 물감, 연필 등의 아주 기본적인 재료들을 가지고 단순하고 간결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교준 작가의 작품은 특별한 재료나 화려하고 복잡한 작업 방식이 아니더라도 예술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속적인 성공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음악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으로 충만한 시모어 번스타인의 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음을 보여주는데요. 이교준 작가의 예술과 시모어 번스타인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아름다움과 이들이 던진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습니다.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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