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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하늘구름그늘 Oct 28. 2020

기획서 한 장으로 대접이 달라진다

말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말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한 시간이라도 떠들어 댈 수 있는데 글로 써보라면 한 줄 쓰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글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려고 하면 짜장인지 짬뽕인지 맛이 구별이 안 가는 요리를 만든 것처럼 중언부언, 핵심 없는 단어만 나열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과 따로 노는 글쓰기 재주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말을 글로 표현해 전달하려고 하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결국 몇 글자 써 놓고 나머지 보충설명은 말로 하려고 덤빈다. 하지만 글로 되어있는 자료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을 듣지 않고도 내용을 충분히 알기를 원한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내용이 부족한 일부분에 대해서만 질문을 하려고 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고민에 빠지는 것이 보고서 작성하는 일이다. 그것이 기획서일 수도 있고 단순 보고자료일 수도 있다. 이미 선배들이 작성해 놓았던 자료를 참조해서 단어만 바꿔서 작성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난감할 뿐이다. 단순한 현황자료나 실적보고서라면 쉽게 따라 할 수 있지만, 만약 기획서라면 문제가 다르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글로 표현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라질 수 있다. 보고서도 기획서도 글로 되어있다. 문제는 그 글을 읽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결정권자는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기획서를 읽고 확신을 갖는다. 


  기획서를 작성하는 방법은 많은 자료를 참조하면 된다. 기획서를 잘 꾸미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런 책이나 자료에서 보고 배우면 된다. 하지만 그런 방법론이 성공적인 기획서를 만들지는 못한다. 말 그대로 알맹이가 필요하다. 기획서에 들어있는 글이 바로 알맹이다. 자신만의 언어와 표현방식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알맹이는 없는 수박 겉핡기식 표현만 나열할 뿐이다. 물론 어중간하게 선배들의 자료로 대충 끼워 맞추면 면피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면피용일 뿐이지 기획서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다. 아마 그런 기획서를 필요로 하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기획서를 꾸밀 수 있어야 한다.


  “본부장님한테 깨지고 왔습니다. 난 더 이상 자신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본부장님 마음에 드는 기획서를 만들 수 있을까요?”


  사무실로 찾아온 후배가 한탄하듯이 말을 꺼냈다. 얼마 전 영업본부 기획파트 스태프로 발령받아 기획업무는 처음 접하는 후배였다. 회사생활은 꽤나 오래 했지만 기획업무는 처음 접해 많이 힘든 모양새다. 나는 그 본부장과는 이미 경험을 해본 터라 아마 힌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왔다고 했다.


  “작년 자료 찾아보고 그 양식에 맞춰서 그냥 써. 뭐 그리 어려운 거 아니잖아”


  대수롭지 않게 말은 했지만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긴 회사생활에서 이런 거 한 번 안 하고 뭐했지?’하는 생각이었다. 


  “혹시 보고한 내용이 있으면 한번 보여줘 봐”


  그가 가지고 온 자료를 보고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에 깜짝 놀랐다. 본부장이 일을 더 잘 시키려고 혼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단숨에 알 수 있었다. 표지나 템플릿은 예전 자료를 그대로 사용했고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글로 표현한 부분은 장황하게 펼쳐 놓은 일기장 수준이었다. 나와도 관련이 있는 업무라 어쩔 수 없이 기획서 작성 요령을 설명해야 했다.


  먼저 기획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7가지의 기본적인 요령을 알아야 한다. 

  첫 번째는 기획서를 작성하는 목적과 의도가 분명해야 한다. 기획서는 작성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기획서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명확히 전달하는 문구가 없으면 아이디어와 기획의도가 왜곡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제목에서부터 분명한 목적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영업전략기획서라고 한다면 ‘00년도 상반기 영업방향’과 같은 단순한 제목을 달기보다는 ‘00년도 영업인 소득증대를 위한 차별화된 판매 증대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달아본다. 영업인의 소득증대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출 수 있고 또한 과거와는 다른 차별화 전략이라는 점을 부각할 수 있다. 이미 제목에서 기획서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목차를 통해 기획서의 전반적인 내용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하면 더 좋은 기획서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목차에서 기획서의 흐름과 방향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읽는 사람은 그에 따른 기대감과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두 번째는 문제 제시와 현실성 있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 기획서는 기본적으로 성과향상이 목적이다. 회사의 측면에서 사원을 위한 제도, 영업방향, 동기부여, 마케팅 전개 등 다양한 기획서가 만들어진다. 그 모든 기획서의 최종 목표는 결국 회사의 성과향상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제안이어야 한다. 기존의 틀은 현재 상태이고 달성하고자 하는 것과의 차이가 문제가 된다.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대안이 된다. 사내 문서 전달을 위한 봉투에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 이름이 각각 하나만 있으면 그 봉투는 한 번 사용하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그런데 10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양식을 만들어 넣어도 그 봉투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지금은 모든 회사가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국내 한 대기업에서 제안서를 통한 기획으로 수천만 원을 절약할 수 있었던 사례다. 이 사례에서 문제는 명확하다. 문서 봉투가 너무 많이 쓰이고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문서를 받고 나면 봉투는 찢어버리게 된다. 그것을 재활용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문제의 발견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점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재활용할 수 있는지 해결방안을 찾지 못했다. 대안은 간단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여러 칸을 만들어 인쇄했다. 간단한 대안이면서도 현실성 있고 실행 가능한 방법이었다.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세 번째는 그림, 도표, 그래프를 넣을 때는 반드시 내용과 연결된 자료를 사용해야 한다. 기획서에는 자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자료가 숫자일 경우에는 도형이나 그래프로 표시해서 시각적인 이해도를 높여야 하고 특정 상황일 경우에는 그림을 통해 그 현상을 나타내야 한다. 그런데 기획서에 넣은 글을 설명하기 위한 첨가물임에도 불구하고 내용과 동떨어진 사진을 넣거나 이해하기 힘든 그래프를 사용하여 기획서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시각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넣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더 좋다. 그러므로 그림, 도표, 그래프를 활용할 때에는 반드시 사용한 문구와 연결된 내용이어야 하고 설명을 동반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네 번째는 참조하는 자료는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느낌이나 정황만으로 기획서를 작성해서는 안된다. 만약 예를 들어 매출 하락의 원인으로 ‘타사의 공격적인 판매전략으로 인해’ 혹은 ‘영업 현장의 실태를 보면 근태가 분명하지 않고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는다면 최악의 문구 선택이다. 이것은 사실에 근거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단지 정황만을 넣은 글이다. 이런 글은 피해야 한다. 반드시 명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작성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사용하는 단어는 함축적이되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기획서는 구체적인 양식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써도 상관없다. 손으로 노트필기하듯이 끄적거려 써도 무방하다. 단, 보는 사람이 납득할 수준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형식과 내용이 중요하다. 보통 PPT를 사용하거나 한글 Word를 사용해서 작성한다. PPT를 사용한다고 해서 작문식으로 사용하지 못한다거나 한글 Word로 쓴다고 해서 함축된 내용을 쓰지 않는 경우는 없다. 단지 함축된 단어로 표현하고 글과 그림, 도표 등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PPT를 쓰고 글로 표현하기 용이한 경우는 한글 Word를 사용하면 된다. 단, 글에서 쓰이는 문구만큼은 쉽게 이해가 가게끔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사원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시스템 제안’이라는 기획을 한다고 한다면 ‘사원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사원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파악해서 그에 맞는 교육시스템을 개발하고 일정기간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기간을 배정하고 그에 맞는 강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작성하는 것보다는 ‘사원이 필요로 하는 교육 파악, 적절한 교육시스템 개발, 교육기간 배정, 최고의 강사진 배치’라는 용어로 함축해서 문구를 끊어서 작성하면 훨씬 더 전달이 용이하고 이해가 쉽다.


  여섯 번째는 최소한 열 번은 고쳐야 한다. 기획서뿐만 아니라 어떤 글이든 고치면 가공력이 더해진다. 가공하고 또 가공하면 원석을 가공해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처럼 글이 예뻐진다. 특히 기획서는 단 한 글자 때문에 전체 기획서를 날려 먹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오탈자 하나 때문에 기획서의 수준이 확 떨어지기도 하니 수십 번을 고치고 또 고쳐서 완성해야 한다. 시간을 탓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은 한번 입에서 떠나면 고칠 수도 수정할 수도 없지만 글은 시간을 두고 고치고 또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그만큼 수준은 상상 이상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고칠 수 없을 때까지 고쳐보자.


  마지막 일곱 번째는 읽는 사람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기획서는 최종적인 결정권자의 눈에 들어야 한다. 그래야 실행할 수 있다. 그런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 기획서다. 그래서 그 결정권자의 성향이 매우 중요하다. 성향적으로 간단하고 강렬한 내용만으로 결정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구체적이고 세밀한 내용을 보고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 구구절절 모든 내용을 책 쓰듯이 쓸 수는 없겠지만 세부적으로 꼼꼼한 내용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기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반면에 감각적으로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간결한 문구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런 기획서를 내밀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차라리 앞장에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서 작성하고 나머지는 첨부하는 형태로 보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결정권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준비하는 것도 기획서를 잘 작성하는 요령이다.


  기획서는 직장생활을 하든 사업을 하든 꼭 필요하다. 글쓰기가 기반이 되어야 하고 양식을 잘 활용해야 한다. 양식은 어떤 방법으로든 구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글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연습이 필요하고 반복이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은 없다. 글을 쓰는 연습도 습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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