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살 막바지에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22/11/15 화요일 Walking D+25 & Stayed 2(Logroño, Leon)
Triacastela(트리아카스텔라) -> Sarria(사리아) 약 24km
트리아카스텔라의 알베르게는 조금 독특한 구조의 숙소였다.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여러 개로 나뉜 방이 나오는데, 참 특이하게도 천장이 뻥- 뚫려있어 모두의 코골이를 들을 수밖에 없는 알베르게였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우리끼리만 묵을 수 있는 방을 배정받았는데 이층 침대 2개와 두툼한 담요, 개인 사물함이 딸린 방이었다.
늦은 밤, 2층에서 잠을 자던 나는 목이 계속 간질간질거렸다.(목구멍을 누가 살살 긁는 느낌이랄까)
그 간질거림 때문에 잠을 자는데 계속 잔기침이 나오는 거였다. 결국 방음이 취약한 숙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침대에서 자는 것을 포기하고 삐걱 소리를 내며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작은 공용거실이 있었다. 그곳엔 1~2인용의 소파와 담요 그리고 여러 권의 책이 놓인 테이블이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어서 내가 누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렇게 12시가 넘은 시각, 소파에 누운 채 두툼한 담요를 덮고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잠이 들랑말랑 할 때 밖에 비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순간, "내일 망했네."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하지만 비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가면 비가 많이 온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자니 "나름 낭만 있을지도..?"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나였다.
아무튼, 홀로 소파를 독차지한 채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숙소 근처 레스토랑으로 다 같이 이동했다.(어제 점심과 저녁을 먹은 곳이었던) 벌써 3번째 방문한 식당이었지만, 갈 때마다 손님들이 가득했었다. 알베르게와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순례자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이는 것 같았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드디어 출발을 했다. 비가 와서 우비를 쓰고 걸었다. 좋지 않은 날씨 때문에 걸음이 빠르지 않았지만, 꽤 신나고 재미있었다. 또한 키로수도 여유로워서 심적 부담도 훨씬 덜했다.
하지만 아마도, 그중 제일은 다 같이 걸어서 인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있을 때 누구보다도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지만, 이번 순례길을 통해서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즐거움을 배웠다. 이것이 아직까지도 큰 자산으로 내게 남겨져 있다.
사리아까지 가는 동안에는 비가 오다 안 오다 했다. 다행인 건 아스팔트 길이 제법 있어서 걷기엔 나름 수월했었던 것이었다. 아,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바로 비가 오면 사진을 많이 못 찍는다는 것이었다. 한번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으면 핸드폰 액정에 그대로 빗물이...^^(손에도 그렇지만요)
그래서 이 날도 비 오고 바람도 불어서 사진은 많이 못 찍었다. 이런 점은 참 아쉽지만, 그래도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 사리아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은 매우 뿌듯했다.
사리아에 도착할 때쯤 배가 고파서 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식당 내부는 꽤 깔끔하고 넓었으며 캠핑장을 겸용하는 듯했다. 비를 맞아 지친 상태 + 배고픔으로 우리는 큼지막한 고기를 주문했고 샐러드와 디저트까지 알차게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일어나는 건 참 쉽지 않았다. 하지만, 숙소까지 또 걸어가야 했기에 부지런히 우리는 움직였고 곧이어 넓고 깨끗한 사리아의 숙소에 도착을 했다.
씻고 좀 쉬다가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 와 저녁도 해 먹었다. 이때까지는 너무 문제없이 잘 지냈는데 숙소가 오래된 곳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 글쎄.. 세탁기가 말썽이었다.
보통 빨래방이 있으면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하고 건조까지 하는데, 이 숙소는 세탁기가 있어서 굳이 빨래방에 가지 않았다. 조그만 세탁기에 우리의 옷을 넣고 세탁을 하고 건조까지 돌렸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문이 안 열리는 거였다. (가뜩이나 외국어로 된 세탁기에 의지할 것은 조그맣게 그려져 있는 픽토그램뿐이었다)
날씨 때문에 오늘 빨래를 널어도 시원찮을 판에, 열리지 않는 세탁기 문이라니.. 정말 욕이 절로 나왔다.
인터넷으로 '세탁기 문 여는 법'을 수십 번 검색을 해본 것 같았다. 카드로도 해보고 고여있는 물도 빼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리는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전문가의 도움으로 인해 세탁물을 뺄 수 있었다. (세탁기 문고리 주변에 심한 스크래치가 많이 있었던 걸로 보아, 여러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고충을 겪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다음 날은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출발을 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도 있는 법.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순례길이었다. 무사히 해결이 되었고 많이 늦지 않게 떠날 수 있어서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난 아직도 사리아 하면 세탁기가 먼저 떠오른다..)
(*빨래는 위층에 따로 빨래 공간이 있어서 세탁과 건조까지 할 수 있었다. 정말 세탁만 3번은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