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살 막바지에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22/11/14 월요일 Walking D+24 & Stayed 2(Logroño, Leon)
Vega de Valcarce (베가 데 발카르세) -> Triacastela(트리아카스텔라) 약 32km
아마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을 했었던 것 같았다.
내일 갈 것이냐, 안 갈 것이냐.
배낭을 메고 약 40km를 걸은 후, 바로 다음 우리의 목적지인 트리아카스텔라 까지는 약 30km가 넘었기에 나로선 매우 신중한 고민이 필요했었다. 다행히 넘어졌을 땐, 크게 다친 곳은 없었으나 발목이 살짝 아팠다. 그리고 조금 부어있었다.
결국 나는 이 구간을 뛰어넘기로 결정을 했고 N언니와 함께 내일 택시를 타고 트리아카스텔라까지 한 번에 넘어가기로 했다. 벌써 두 번째 택시를 타게 된 나는 약간의 속상함도 있거니와, 언니들과 같이 걷지 못한 아쉬움 또한 무척 컸었다. 하지만 다치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순례길을 걷는 게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 30km 구간은 쿨하게 쉬어가기로 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날씨에 K언니와 B언니는 출발을 한 모양이었다. 40km를 걷고 바로 30km를 걷는 게 참 쉽지 않을 텐데 나는 언니들과 같이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대단한 마음이 불쑥 동시에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깜깜했던 하늘은 맑게 개어 환한 아침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비가 와 바닥은 아직 축축했지만 밝은 날씨 덕분인지 알베르게에 걸려있던 만국기가 유독 눈에 잘 보이는 아침이었다. 우리는 택시를 불렀고 어제 저녁을 먹었던 곳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따듯한 커피와 작은 빵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니 택시가 금방 도착을 했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의자에 올라탔다. 순간 첫날에 택시를 탄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택시는 참 빨랐다. 휙휙 바뀌어가는 창 밖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택시 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뿐이었다. 그저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는 것. 내가 택시를 안 탔으면 걸어갔을 길이었지만, 후에 발목이 아플 게 뻔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택시를 탄 것은 잘 한 선택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조용히 택시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편안하게 트리아카스텔라에 도착을 했다. 알베르에게 들려 짐을 푼 후 점심을 먹기 전에 작은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항상 들리는 바르이지만, 각 마을마다 파는 음식과 커피는 비슷해서 정겨운 느낌이었다.
걷지 않으니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순례길에서 순례자는 걷지 않으면 딱히 할 게 없다. 하지만 그런 덕분에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 우리는 맑은 날씨 속에 푸르른 마을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작은 마트에 가서 초코유우와 간식도 샀던)
마을은 참 조용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들린 고풍스러운 느낌의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12유로의 메뉴델리아를 시켰다. 내가 택시를 탄 덕분에 세이브된 택시비로 N언니는 점심을 사준다고 했다. (늘 얻어먹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했던) 나도 언젠가 레스토랑에서 멋지게 계산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메뉴델리아 외의 사이드로 문어와 가리비 요리 그리고 화이트 와인까지 주문을 했다. 트리아카스텔라 지역은 갈리시아 지방에 속해 해산물 요리들이 많다. 특히 문어요리가 유명하다고 하며, 나는 이 레스토랑의 추천 음식인 갈리시아 수프도 시켰다. 순례길에서 정말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 같았다. 길거리에 아무 데나 앉아 과자로 끼니를 때웠던 것도,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사이드까지 시키며 든든하게 식사를 하는 것도 모두 다 순례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꽤 근사한 점심을 먹는 도중에 H오빠에게 연락이 와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H오빠가 합류하기 전에 N언니와 나는 진지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다양한 주제로 얘기를 했지만 그중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한 건 단연코 진로 얘기였다. 하고 싶은 게 없어도 문제이지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도 걱정이었다. 그중 1개만 택해서 하는 것 또한, 내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선택과 집중이었는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고 그 구체적인 것을 통해 근본적인 해답을 찾는 것.
결국엔 모든 것은 근본적인 것에서 파생된다는 얘기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 밀고 나가고 뭐든지 다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있으니 나중에 그게 다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밥을 먹으며 할 얘기치고는 무거운 주제였지만, 걸으면서 얻는 것과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던 대화였었다.
오후 6시가 넘어서 새벽같이 출발했던 언니들이 도착을 했다.
내가 그녀들을 위해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은 침대 시트를 미리 깔아 두는 것과 끝까지 걸어온 이들을 환영해 주며 샤워실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것이었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는 순례 26일 차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