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살 막바지에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어제의 기운을 이어받아 오늘도 상쾌한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우리는 전 날 산을 타서 오늘은 비교적 짧은 거리인 16km 정도를 걷기로 했다. (내리막이 심한 것도 한몫했지만!)
아침을 먹으려 했는데 우리가 묵었던 알베르게에선 먹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마을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고, 예정보다 30분 정도 일찍 빨리 떠났다. 가파름이 심해 정말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그런데 그 가파른 길로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는데 큰 돌, 많은 자갈, 삐뚤삐뚤하게 정돈되지 않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전거로 이 길을 내려가는지 정말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멋있는 라이더 분들을 보며 조심스럽게 내려간 끝에, 우리의 아침식사를 책임져 줄 한 식당을 발견했다. 꽤나 구석진 곳에 restaurante(레스토랑)이라고 크게 써진 간판이 있었고, 그곳으로 올라가니 작은 마당이 딸린 아담한 카페가 나왔다.
마침 우리가 길을 올라가는 도중에 이곳에 빵을 납품하는 사장님도 만났었는데 이 분은 전에 친구들과 한국에 가본 적이 있다고 흥겹게 말을 건네셨다. 그리고선 몇몇 아는 한국어로 인사를 하셨는데, 별거 아닌 인사에도 아침부터 감동을 받은 나였다.
아침으로 따듯한 토스트와 카페콘레체를 먹었다. 빵은 따끈했고 속은 촉촉해 진짜 맛있었다. (내가 먹은 아침 빵 중에 최고였다) 정말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아침을 보내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접할 수 있는 것 중에 또 하나의 묘미는 바로 자연! 이 아닐까 생각했다. 유독 어제부터 오늘까지 걸은 거리들 중에 이쁘고 멋진 풍경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오늘도 역시 너무나 멋진 도로를 발견했다.
이 도로도 광고에 나올 법하다며 탁 트이는 풍경에 그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도, 조용한 이 길도 너무나 평온 그 자체였다. 이렇게 멋있는 풍경이 나올 때마다 사진도 열심히 찍었고 더욱 생생한 느낌을 담고 싶어 짧게 영상으로도 남겨두었다.
"순례길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그런 길이었다.
그러다가 만난 219KM의 비석에서 기념사진도 찍었고, 중간에 동화 속에 나올만한 정말 예쁜 마을에서 잠시 쉬며 충전도 했다.
MOLINASECA(몰리나세카)라는 이름의 마을이었는데, 골목길도 아기자기하게 잘 되어있고 바르도 있어 쉬기에 딱 좋았다. 걸어가면서 보니, 가족단위로도 놀러 온 사람들이 조금씩 보였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맑은 날씨 속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고 순례자들 중에서는 이 마을에서 하루 쉬고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N언니가 기다리고 있는 폰페라다까지 가야 해서,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몰리나세카에서의 아쉽고 짧은 휴식을 끝으로 다시 일어나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N언니가 기다리고 있는 폰페라다에 도착을 했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어서 무탈하게 갔으며, 몰리나세카와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이젠 거의 끝무렵인 이 순례길이, 걸어갈 거리보다 걸어온 거리가 많은 순례길이 점점 더 재밌어지고 흥미로워지는 하루였다.